현대차는 16일 부산항을 통해 스위스 수소저장 기술기업인 GRZ테크놀로지스 및 한 유럽 에너지솔루션 스타트업에 수소연료전지 시스템 4기를 수출했다고 발표했다. 이들 업체는 1년간 성능을 검증한 뒤 2022년부터 본격적으로 수소연료전지를 구매할 예정이다.
이번에 수출한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에 장착되는 모델이다. GRZ테크놀로지스 등은 수소연료전지를 활용해 비상 전력 공급용 및 친환경 이동형 발전기를 제조할 계획이다. 현대차는 이들 업체 외에 20여 곳과 수소연료전지 판매 협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수소연료전지 시스템은 선박, 열차, 도심용 항공기는 물론 빌딩, 발전소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2018년 12월 충북 충주에서 열린 현대모비스 수소연료전지시스템 제2공장 기공식에서 한 말이다. 당시 일각에선 “정말 가능할까”라는 말이 나왔다. 수소전기차의 성공 여부도 불투명한 상황에서 수소연료전지 판매를 다른 분야로 확장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의미였다.
현대차가 16일 수소연료전지시스템(사진)을 해외기업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다. 수소연료전지시스템을 수출하겠다던 정 부회장의 공언은 채 2년도 되지 않아 현실이 됐다.
수소연료전지의 활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우선 지게차나 선박, 철도, 항공 등 대부분의 ‘탈 것’에 적용할 수 있다. 수소트램과 수소드론, 수소지게차 등은 조만간 상용화될 전망이다. 빌딩과 발전소 등에도 쓸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이 지난 7월 한국판 뉴딜 국민보고대회에서 “수소를 이용한 전기 생산은 미래 친환경 에너지 솔루션이자 미래 핵심 산업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강조한 배경이다.
현대차그룹은 수소사업 분야에 2030년까지 약 7조원을 투자하고, 5만여 개의 신규 일자리를 창출할 계획이다. 안정적으로 수소를 생산하고 운송하는 기술에 대한 투자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수소가 미래 핵심 에너지로 자리 잡으려면 생산 및 운송 기술의 뒷받침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대차는 지난달 호주 국책연구기관인 호주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 세계 4위 철광석 생산업체 포테스큐 등과 수소 생산기술을 공동 개발하기 위한 협약을 맺기도 했다.
스위스 외 독일과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 다른 유럽 시장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2022년엔 세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 공략에 나선다. 중국 쓰촨공장에서 수소상용차를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자동차업계는 장거리 이동이 필수적인 상용차 시장에선 수소전기차가 전기차보다 더 각광받을 것으로 전망한다. 전기트럭이 기존 디젤트럭 수준의 주행거리를 확보하려면 배터리 용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화물 적재 공간이 줄어 효율은 떨어진다. 충전에 걸리는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수소전기차는 충전 시간이 전기차의 10~30%에 불과하고 차량도 가볍게 만들 수 있는 게 강점이다.
최근 시장에서는 미국 수소차업체 니콜라의 기술력을 둘러싼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차가 발빠르게 움직이면 미국 중국 등 주요 시장에서 큰 성과를 낼 수 있다. 현대차 수소트럭에 대한 신뢰가 상당한 만큼 미국 시장에서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는 얘기도 나온다.
정용진 신한금융투자 수석연구원은 “현대차그룹은 수소 승용 및 상용차 시장에서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다”며 “라인업을 보강하면 미국 수소상용차 시장에 적극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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