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2위 부동산 업체 헝다가 채무 이행이 어렵다는 자료를 공개해 파산 가능성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헝다는 지난 3일 심야를 틈타 홍콩 증권거래소에 기습적으로 디폴트 위기 상황을 공시했다.
헝다는 공시를 통해 2억 6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075억 원의 채권자로부터 채무 보증 의무를 이행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상환이 어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다만 회사 측은 관련 채무가 무엇인지, 상환 데드라인이 언제까지인지 등 구체적인 사항은 언급하지 않았다.
발표된 내용에 비춰보면 이 채무는 헝다 관계사인 홍콩의 쥐샹(Jumbo Fortune)이 발행한 달러 채권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쥐샹은 지난 10월 만기가 도래한 2억 6천만 달러 규모 채권을 상환하지 못했다. 헝다는 이 채권에 보증을 서 채권자들이 헝다에 대신 채무 상환을 요구할 수 있다.
지난 10월 당시 헝다가 해당 채권자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상환 기간을 내년 1월까지 3개월 연장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온 바 있었다.
만일 헝다가 실제로 이 채무를 갚지 못하면 공식 디폴트가 선언되고 이는 다시 대규모 연쇄 디폴트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현재 만기가 남은 헝다의 달러 채권 규모는 192억 3,600만 달러, 약 22조7천억 원에 달한다.
이렇게 상황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지만 달러 채권 문제는 전체 헝다 사태에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헝다 유동성 위기 과정에서 달러 채권 문제가 특히 부각되는 것은 그나마 이 문제에 관한 동향이 가장 투명하게 시장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난 6월 말을 기준으로 헝다의 총부채는 1조 9,665억 위안, 약 365조 원에 달한다.
헝다의 부채는 중국 내 은행 등 금융권, 위안화 채권, 그림자 금융 상품, 달러 채권 등에 걸쳐 있다.
헝다가 디폴트 직전 위기 상황에 내몰리자 중국 당국도 간밤 긴박하게 움직였다.
헝다 사태의 일차적 관리 책임을 맡은 광둥성 정부는 전날 쉬자인 회장을 긴급 소환해 면담하고 직접적인 위기 관리에 나섰다.
하지만 중국의 부동산 억제 정책의 여파로 헝다의 사업 정상화를 기대하기 힘들어 결국에는 디폴트 상황으로 떠밀려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비관적 관측이 여전히 많다.
중국에서 파산은 남은 자산을 모두 처분해 채권자에게 나눠준 뒤 해당 법인을 없애는 파산 청산 절차와 채무조정 및 추가 투자를 통한 파산 구조조정으로 크게 나뉜다.
만일 회사의 존속 가치가 크다고 판단되면 청산 대신 구조조정 절차를 밟게 된다.
업계에서는 파산을 통해 세 개 회사로 쪼개진 하이난항공(HNA)그룹의 파산 구조조정이 헝다에 선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하기도 했다.
중국 당국도 헝다의 경착륙에 대비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중국의 핵심 금융당국인 인민은행, 은행감독관리위원회, 증권감독관리위원회는 미리 대비를 한 듯 전날 밤 일제히 발표한 성명에서 헝다 사태를 `개별 사건`으로 규정하면서 자국의 경제 안정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취지의 메시지를 내놓았다.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전날 심야에 발표한 성명에서 "헝다 위기의 주요 원인은 스스로 경영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맹목적인 확장을 추구한 데서 비롯됐다"며 "국제 달러채 시장에서 투자자들은 비교적 성숙하고 관련 문제를 처리할 명확한 법적 규정과 절차도 존재한다"며 "단기적인 부동산 기업의 위험이 중장기적으로 시장의 정상적 융자 기능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헝다 사태로 중국 부동산 시장의 위축 현상이 더욱 심해지면서 중국 경제의 하방 압력이 더욱 거세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거의 30%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부동산 산업의 위축은 철강, 시멘트, 엔지니어링 같은 직접 연관 산업뿐만 아니라 가구, 인테리어, 가전제품 등 수 많은 산업에도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중국의 주택시장 침체는 중국의 성장률을 둔화시키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세계 경제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의 아시아 연구 책임자인 루이스 퀴즈는 최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와 인터뷰에서 중국의 심각한 부동산 침체가 계속 이어진다면 내년 4분기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3.0%까지 떨어지고 이는 세계 경제성장률을 0.7%포인트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김현경 기자
khkkim@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