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공백 사태가 길어지면서 치료받을 병원을 찾아 헤매다가 목숨을 잃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 점검 등을 통해 자세한 사망 원인을 더 따져봐야 하지만, 환자들 사이에서는 '응급실 뺑뺑이'가 사고의 한 배경이 된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된다.
정부가 진료보조(PA) 간호사의 업무 역량을 높이는 등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한 대책을 시행하는 가운데, 의료계는 전공의 이탈을 부른 의대 증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외치고 있다.
◇ 의료진 부족해 진료 거부…환자 사망사고 잇따라
18일 연합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달 31일 오후 4시 9분께 경남 김해 대동면에서 밭일을 하던 60대 A씨는 가슴에 통증을 느껴 119에 신고했다.
당시 소방당국은 경남지역 등에 있는 병원 6곳에 10번가량 연락을 했지만, 의료진 부족 등을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
A씨는 당일 오후 5시 반이 가까워진 시각에야 부산의 한 2차 병원으로 옮겨진 뒤 각종 검사를 거쳐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았다.
이에 긴급 수술을 할 수 있는 병원을 30분가량 알아본 끝에 부산의 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같은 날 오후 10시 수술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숨졌다.
A씨의 딸은 "어머니가 빨리 수술받았다고 해서 무조건 살았을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으나 이번 의료 공백으로 인해 혹시 모를 생존 가능성을 저버린 것은 아닌지 원통할 뿐"이라고 말했다.
이달 11일에도 부산에 사는 50대가 급성 대동맥박리 진단을 받은 뒤 병원 10곳 이상에서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수용을 거부당한 끝에 사망했다.
대한응급의학회는 대동맥박리 사례를 두고 "흉부외과는 20년째 전공의 지원이 적은 탓에 전공의에게 의존하지 않은 지 꽤 됐다. 전공의 사직 사태와 아무 관계가 없다"며 '응급실 뺑뺑이'로 볼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지난달 충북 보은군에서는 도랑에 빠진 33개월 아이가, 충북 충주시에서는 전신주에 깔린 70대 여성이 병원을 돌다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이번 의료공백 사태가 각 사망 사례의 직접적인 원인인지는 더 확인해야겠지만, 의정 갈등 사태를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와 의사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 정부, PA 간호사 역량 높여 의료공백 메운다
의료 공백이 길어지면서 정부는 의사의 일부 진료업무를 하도록 한 진료보조(PA) 간호사들의 업무 역량을 높이기로 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날부터 PA 간호사 대상 교육에 들어간다.
교육 대상은 새로 배치될 예정인 PA 간호사, 경력 1년 미만의 PA 간호사, 그리고 이들의 교육 담당 간호사 등이다.
복지부는 이날부터 대한간호협회와 협력해 교육 담당 간호사 대상 8시간 교육, PA 간호사 대상 24시간 교육을 시범 실시한다.
이후에는 표준 프로그램을 개발해 수술, 외과, 내과, 응급·중증, 심혈관, 신장투석, 상처장루, 영양집중 등 8개 분야에 걸쳐 80시간(이론 48시간+실습 32시간)의 집중 교육을 한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번 교육은 시범사업으로, 향후 8개 분야 80시간의 표준 교육과정을 개발해 다음 달부터 정규 교육과정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PA 간호사들이 양질의 교육훈련을 받고 의료 현장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또 의료개혁 정책 토론회의 하나로, 이날 오후 3시부터 대한간호협회와 함께 '필수의료 강화를 위한 간호사 역량 혁신방안' 토론회를 연다.
토론회에서는 필수의료 분야 간호사 역량 강화 및 전문간호사 활성화 방안 등을 논의한다.
정부는 앞서 간호사가 할 수 있는 진료행위를 대폭 늘린 데 이어 PA 간호사의 수도 늘린다.
복지부에 따르면 상급종합병원 47곳과 종합병원 328곳을 조사한 결과, 활동 중인 PA 간호사는 3월 말 현재 8천982명이다.
복지부는 여기에 향후 2천715명을 증원해 PA 간호사를 총 1만1천여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의사단체들은 의료 공백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대책을 내세울 게 아니라 정부가 증원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17일 제8차 성명서를 내고 "의료계의 단일안은 처음부터 변함없이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라고 주장했다.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이날 브리핑에서 "현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분은 대통령으로, 의대 정원 증원을 멈추고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기구에서 새로 논의할 수 있도록 방침을 바꿔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전공의들이 돌아오지 못하면 내년에 전문의 2천800명이 배출되지 못한다. 의사 수의 7%인 전공의가 빠지면 시스템이 붕괴할 것이기에 더 심각하게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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