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적극적으로 입법을 요청한 이른바 '법관 증원법'(판사 정원법 개정안)이 폐기될 위기에 놓였다.
법원 내에서는 중점 입법 목표가 사실상 좌절된 것에 대한 실망감과 함께, 사법부에 '재판 지연' 해결을 주문했던 국회의원들이 정작 이를 해결할 법안 통과에는 소극적이라는 불만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5년간 법관 370명을 순차 증원하는 내용의 판사 정원법 개정안은 지난 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통과한 뒤 후속 절차를 밟지 못하고 계류 중인 상황이다.
이날 오후 2시로 예정된 마지막 본회의에 상정되려면 법사위 전체 회의 의결이 있어야 하는데, 법사위는 회의 일정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법관 증원법과 동시에 논의되는 검사 증원법을 두고 의원들 사이에 이견이 있는 데다 '채상병 특검법' 재표결, 국민연금 개혁 등 쟁점 법안의 처리를 놓고 여야가 대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전해졌다.
여야가 전향적으로 타협하지 못하면 법관 증원법은 임기 만료로 자동 폐기된다.
법원은 최근 몇 년간 사건 처리 속도가 느려지면서 국민들이 겪는 각종 송사에 제때 판결을 내놓지 못한다는 비판에 시달려왔다.
코로나19와 사건 난도 증가, 법관 이탈 현상, 직장 문화의 변화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작년 10월 대법원과 각급 법원의 국정감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는 여러 차례 지적됐다.
국민의힘 법사위원인 전주혜 의원은 "재판 지연이 심각하다는 것 (판사들도) 다 알고 계실 것"이라며 "재판 지연을 막고 법원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 법사위원 송기헌 의원도 "수도권 지역의 형사지방법원을 보면 처리 기간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며 "처리가 너무 지연되지 않도록 고려해달라"고 요청했다.
이 같은 의원들의 문제 제기는 지난해 12월 취임한 조 대법원장의 인사청문회에서도 마찬가지로 이어졌다.
청문위원들의 지적에 조 대법원장은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재판) 지연 문제는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며 "특히 법관 증원 문제는 굉장히 시급한 현안이다. 저희로서는 국회에서 적극, 긍정적으로 해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재판 지연'을 지적했던 법사위가 법관 증원법 통과를 위한 전체 회의 일정에는 합의하지 못함에 따라 법원은 당장 내년 신규 판사 임용부터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대법원 법원행정처는 내년 신규 임용 대상자 명단을 올해 10월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늦어도 6월 말에는 선발 규모를 확정해야 한다. 22대 국회에서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시기를 놓치는 셈이다.
현행 판사 정원법에 따른 정원을 지키려면 최대 109명까지 선발할 수 있지만, 정원이 늘지 않으면 실질적인 선발 인원은 100명 미만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법원행정처의 설명이다.
판사의 정원이 법으로 정해져 있어 이를 초과하면 위법한 만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여유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통상 매년 신임 판사를 130명 수준으로 선발한 것과 비교하면 30∼40명이 줄어드는 셈이다. 평년 대비 75% 수준이다. 최근 몇 년 사이 퇴직하는 법관이 증가하는 추세인 것도 법원으로서는 불안 요소다.
신임 법관들이 충원되지 않으면 법원에서는 기존에 운영하던 재판부를 폐부하는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재판부가 줄어들면 재판 지연은 더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수도권 법원의 한 판사는 "휴직자, 퇴직자까지 고려해서 신규 법관을 선발해야 하는데 (현행 정원에 따른 선발 규모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라며 "이대로라면 법원이 이루 말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국경제TV 디지털뉴스부 조시형 기자
jsh1990@wowtv.co.kr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