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례ㆍ결혼ㆍ졸업식서 빚독촉…비정한 채권자 많다>

입력 2013-08-22 06:01  

가이드라인에 불공정 추심 사례 명시

금융감독당국이 채권추심 가이드라인을만든 것은 최근 경기 불황으로 빚더미에 앉는 서민들이 늘어나면서 추심의 고통에허덕이는 이들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구체적인 추심 기준을 정하지 않은 현행법을 어기지 않으면서 서민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안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한데 이런 사례를 가이드라인에 명시해 방지하겠다는 뜻이다.

◇추심관련 민원 한해 3천건…"빚진 자도 '권리'는 있다" A씨는 지난해 말 집으로 걸려온 채권추심회사 직원의 전화를 받고 딸인 B씨가빚을 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놀란 A씨가 딸의 빚을 대신 갚겠다고 말하자 이 직원은 B씨의 채무내용을 모두알려줬다.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은 '엽서에 의한 채무변제 요구 등 채무자 외의 제3자가 채무사실을 알 수 있게 하는 행위'나 '채무자 외의 사람에게 채무자를대신해 채무를 변제할 것을 반복적으로 요구하는 행위'를 불공정 추심으로 보고 있다.

나중에 이 일을 알게된 B씨도 억울한 마음에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추심회사 직원이 먼저 A씨에게 채무내용을 고지한 것도, 반복해서 변제를 요구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명확하게 '불법'은 아니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처럼 명백한 위법 행위가 아니지만 채무자의 권리가 침해당하는 경우는 적지않다.

금감원에 점수된 채권추심 관련 민원은 2011년 2천857건, 2012년 2천665건이었다. 올해는 1월부터 6월까지 1천554건이 접수돼 연말에는 3천건에 육박할 것으로 보인다.

민원은 대부분 B씨 사례처럼 채무사실을 제3자에게 고지(38.0%)하거나 전화 또는 우편으로 과도하게 독촉행위를 하는 경우(21.7%)였다.

모호한 '법의 테두리' 안에서 채무자가 권리를 지나치게 침해당하는 사례가 적지 않은 셈이다.

◇사례 세분화해 '교묘한 불공정 추심' 막는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과 업계는 머리를 맞대고 실생활에서 흔한 추심 사례 가운데채무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유형을 조목조목 가이드라인에 반영했다.

모호한 법규 대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통해 '빚진 자의 권리'를 다소나마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가이드라인이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금감원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감독·검사대상인 채권금융회사와 채권추심회사가 이를 내규에 반영하도록 지도하고 있다.

추심업체 직원은 우선 B씨 사례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채무자의 소재를 파악하면서 채무 내용을 알려서는 안되고, 채무자 외의 제3자에게 채무를 대신 변제하라고해서도 안된다.

'부모한테 알리기 전에 빨리 빚 갚아라'라는 식으로 다른 이에게 채무 사실을알리겠다고 협박하는 것도 금지된다.

봉투에 혐오감을 주는 붉은 색 글씨나 진한 검은색 글씨를 이용해 독촉 내용을짐작할 수 있게 하는 행위, 채무자가 집이나 회사에 없다고 인근에 추심 관련 안내장을 붙여놓는 행위도 금지된다.

현행법이 명시하지 않은 채권추심 횟수도 구체화했다.

직접 찾아가 추심을 하는 것은 주 2회까지만 허용되고 전화, 이메일, 문자메시지를 통한 독촉(단순 안내 제외)은 채권 종류별로 금융사가 일정횟수를 정해 이 횟수 이내로 하게 된다.

채무자나 가족의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추심 행태도 금지된다.

채무자의 외모나 지능, 또는 수입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되고 채무자가상을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화해 빚 독촉을 하는 행위도 할 수 없다.

채무자 본인이나 자녀의 입학·졸업식장, 결혼식장을 찾아가 공개적으로 빚을갚으라고 요구하는 행위, '아이들 학교 못 다니게 하겠다' 또는 '아이들 등하교길조심하라'며 가족을 들먹여 협박하는 것도 가이드라인에 어긋난다.

채무자가 집에 없는 것을 알면서도 근처에서 장시간 서성거리며 가족들을 불안하게 해서도 안된다.

채무자가 국민행복기금에 채무조정을 신청하거나 신용회복위원회에 신용회복지원 신청한 경우 등 채권추심을 할 수 없는 경우도 가이드라인에 포함됐다.

금감원 관계자는 "(추심 과정에서) 명확하게 법을 위반한 것은 아니지만 채무자가 현실적으로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사례를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에 넣음으로써 불공정 추심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resident21@yna.co.kr cindy@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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