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평화ㆍ삼강오륜 논하라…韓銀 승진시험 화제>

입력 2013-09-10 06:05  

'문사철' 논술문제, 폐쇄적 조직문화 바꿀 수 있을까

'오리엔탈리즘과 옥시덴탈리즘(反 서구주의)의차이를 논하고 세계교역의 확대가 세계평화에 미치는 영향을 쓰라.' 승진시험 문제지를 받아 든 한국은행 최모(31) 조사역은 당황했다. 마지막 장에실린 '일반논술' 문제를 보고서다. 일반논술은 전체 300점 만점인 승진시험에서 가장 많은 비중(60점)을 차지한다.

최 조사역은 "시험에 문학·역사·철학(문사철) 관련 이슈가 나올지는 알고 있었다"면서도 "이런 유형이 출제될 줄은 전혀 예상을 못했다"고 털어놨다.

한은의 승진시험이 화제다. 중앙은행의 업무와 동떨어진 논술 문제 때문이다.

마치 프랑스의 대입시험인 '바깔로레아'를 연상시킨다는 평가도 있다.

10일 한은에 따르면 지난 6일 37명의 과장진급 대상자들은 두 가지 일반논술 문제를 받아 들었다. 하나가 '오리엔탈리즘…'이었고 다른 하나는 '인간의 이기심과탐욕의 차이를 서술하라'란 질문이었다.

이들은 두 문제 중 한 문제를 제한시간 내에 써내야 했다. 이날 시험을 본 또다른 조사역은 "답을 쓰긴 썼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며 "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해 승진시험에서는 '삼강오륜의 현대사적 의미를 논하라'와 '대중문화와 현대예술의 바람직한 관계를 논술하라'란 문제가 응시자들의 혼을 빼놓았다.

그래선지 지난해 승진에 실패한 사람은 전체 응시자의 20%나 됐다. 100점 만점에 60점만 넘으면 되는 절대평가임을 고려하면 과거보다 탈락률이 굉장히 높아졌다고 한다.

한국의 환율·금리·물가를 관리하는 중앙은행이 왜 이런 문제를 낼까.

조강래 한은 연수총괄팀장은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에 새로운 패러다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직원들의 유연하고 창의적인 사고 능력을 길러보자는 취지"라고 말했다.

한은의 대졸 공채 직원 중 절반 이상이 경제학 전공자다. 대부분은 명문대를 나왔다. 그러다 보니 늘 사고의 다양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나왔다. 한은이 외부와스스로 고립돼 자기들 생각에만 집착하는 '갈라파고스'나 '절간'으로 불리는 이유다.

조 팀장은 "인간의 행동을 기반으로 경제·사회현상을 분석하는 능력을 기르고미래 경제예측에 인문학적 통찰력을 강조하자는 의도도 있다"며 "이는 김중수 총재가 계속해 강조해온 점"이라고 덧붙였다.

김 총재는 지난 2010년 취임 이래 한은의 경직된 문화를 비판하며 '문사철'을바탕으로 한 사고를 주문해왔다. 경제·경영 전공 등으로 한정됐던 신입사원 지원자격을 전(全) 전공으로 넓히는가 하면 "한은의 목표가 물가·금융안정이라고 해서 세상 돌아가는 일에 '나 몰라라'해선 안 된다"며 간부들을 질타하기도 했다.

막상 시험을 봐야 하는 직원들은 난색을 나타냈다. 준비하기가 어렵단 것이다.

작년에도 일부 응시자들이 '사회관계망(SNS)의 의미'와 같은 논술주제를 연습했지만'삼강오륜' 문제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그러나 한은 한 국장은 "한은이 그간 자기만의 세계에 갖혀 '우물 안 개구리'처럼 굴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불만이 나올 순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김 총재가 추진하는 방향이 맞다고 본다"고 전했다.

banghd@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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