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로 전 기업은행장 "옥석 가리는 상시적 구조조정 필요"

입력 2015-11-29 07:00  

'리더의 자리' 출간…"미루면 어느 순간 문제 터지기 마련"

윤용로(60) 전 기업은행장은 민관의 요직을 두루 경험한 금융인이다.

옛 재무부와 재정경제부, 그리고 금융감독위원회 등에서 30여 년간 공직자의 길을 걷다가 2007년 말부터 작년까지 기업은행장과 외환은행장을 지냈다.

윤 전 행장은 최근 '리더의 자리(티핑포인트·380쪽)'라는 비교적 두툼한 책을펴냈다.

주로 기업은행장 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책이다. 평소 메모하는 습관이 몸에 밴 그는 이 책에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 기업은행을 이끌면서 경험하고 생각했던 것들을 자세하게 녹였다.

그는 지난 27일 연합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수십 년간 정부에서 일하다가 공공기관 성격의 기업은행에서 근무하니 초반에는 다소 어색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나 은행의 장이 꼭 은행 전문가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을 고쳐먹으면서 비교적 어렵지 않게 적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은행에는 넓게 보는 사람도, 깊이 아는 전문가도 있어야 합니다. 제가 은행의세부적인 업무는 잘 몰랐지만 금융시장 동향, 세계 시장의 방향성을 읽는 '눈'은 있었죠. 글로벌 위기가 다가올 때 기업은행이 증자를 빨리 해 위기에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그와 무관치 않습니다." 은행 CEO는 미시적인 지식도 중요하지만 경제 전반을 볼 줄 아는 안목이 더 중요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임기 중 발생한 글로벌 금융위기에 맞서 기업은행이 취한 선제 조치는주목할 만하다.

은행들이 부실채권이 늘 것을 우려해 중소기업 대출에 몸을 사릴 때 그는 정부를 설득해 자본금을 확충, 중소기업 지원에 적극 나섰다.

"은행 내부에서도 위기시에 섣불리 자산을 늘리다가 부실화되면 그 책임을 다지게 된다며 걱정하는 임직원이 많았죠. 나는 그들에게 책임은 내가 질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신감이 있었던 거죠." 그는 다른 은행들이 거의 문을 걸어 잠그는 상황에서 유망하지만 어려움에 처한기업들을 엄선해서 도와주면 부실화할 가능성이 낮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고 했다.

그의 뚝심에 힘입어 기업은행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부터 2010년말까지 은행산업 전체 중소기업대출 순증액의 90%를 홀로 담당했다.

그럼에도 기업은행의 부실자산은 커지지 않았다.

그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옥석을 가리는'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다고강조했다.

"IMF 위기 때 구조조정을 몰아서 했어요. IMF 위기가 우리에게 준 교훈은 구조조정을 상시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못했죠. 요즘 좀비기업이 많이 거론되는데, IMF 사태 후 10여 년이 지나니까 또 그런 부실기업들이 쌓인겁니다. 은행도 기업도 다 구조조정을 하기 싫어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미루다가는어느 순간 문제가 터지기 마련이죠." 국내 은행의 경쟁력은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에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 많다.

심지어 한국 금융의 경쟁력이 우간다보다 떨어진다는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이에 대해 윤 전 행장은 은행의 경쟁력을 키우려면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처방을 내놓았다.

아울러 성과주의를 도입하는 것도 일정 부분 은행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성과배분이 조금 신축적이어야 합니다. 우리는 고정비적 성격의 생활수단으로서 '월급'에 방점을 찍는 경향이 있는데, 선진국은 성과 쪽에 치중합니다. 조금 더선진국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국내 금융이 후진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낮은 수수료 문제를 언급했다.

은행을 "공공서비스"라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아 수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은행들은 주로 예대마진에 의존하는데 요즘 같은 저금리 기조에서는구조적으로 이익을 내기 어렵고, 게다가 행장 임기가 3년에 불과해 장기적인 발전계획을 세워서 실천해 나가기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지적이다.

"3년 임기 안에 해결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저금리 구조에서 수익구조를다변화하려면 비은행부문을 확대하고, 해외진출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은행장은 임기가 유한하더라도 조직은 무한하다는 생각으로 일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일단 선임자가 큰 그림을 그려놓으면 후임자가 하나씩 완성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뒷사람이 전임자의 치적을 무시하면 늘 원위치요, 모래성일 수밖에 없어요." buff27@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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