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조정에 애타는 금융위원장, 난감한 채권단

입력 2016-05-01 12:00  

성공해도 좋은 조건 기대못하는 용선료 협상에 목매

정부와 채권단이 기업 구조조정의 전면에 나섰지만, 시작부터 어려운 형국이다. 해운과 조선업종이 주요 대상이라는 점을 지정하는 데까지는 왔으나 이를 어떻게 구조조정할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고있다.

정부가 구조조정 자금을 조기확충 하겠다며 이리저리 방안을 찾고 있지만, 한국은행과 야당의 반대 속에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고 해운업체가 해외 선주들과 벌이는용선료 협상은 '턱없이 높은 용선료'를 '조금 덜 턱없는 수준'으로라도 깎아달라며매달리고 있는 모양새로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 실무책임자인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29일 언론사 경제부장단과간담회를 갖고 최근 이루어지는 구조조정 협상에 대해 정부의 의지와 진행방향 등을설명하면서 언론의 이해를 구했다. 임 위원장은 "현재 현대상선이 선주들과 벌이는용선료 협상은 해운업종 구조조정의 1차 관문으로, 이것을 통과 못 하면 법정관리로가는 수밖에 없다. 시한은 5월 중순"이라면서 나름의 강력한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나 진행의 앞뒤 과정을 살펴보면 의지만 갖고 위기업종의 구조조정이 원활히 이루어질지는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애타는 용선료 협상…성공하면 탄탄대로? 현재 현대상선은 해외 주요 선주들과 용선료 협상을 벌이고 있다. 즉 배를 빌려쓰는 값을 깎아달라고 하는 중이다. 국내 해운사들은 외환위기 시절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라는 정부의 강력한 지침에 따라 부채를 대폭 줄여야 했고 빚을 내어배를 사서 운용하던 해운사들은 배를 팔아 부채를 상환했다. 그 후에도 사업은 계속해야 하니 없는 배는 빌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용선료를 매우 높게 책정해서 계약했다. 지금 시세로 따지면 정상의 5배 수준이나 된다. 지금은 이를 30∼35%가량 깎아달라며 협상에 나선 것이다.

이 할인 폭은 물론 협상 상대방의 사정도 감안해서 제시한 것이겠지만 최고 35%를 깎는다 쳐도 시세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선주들이 이를 수용해서 협상이 타결돼도 엄청나게 비싼 용선료를 선주들에게 계속 '갖다 바쳐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가격으로 재협상이 이루어지면 해운사들이 앞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의문이 든다. 임 위원장은 "용선료 협상에 성공하면 그다음에 사채를 깎고 은행부채도 깎아야 한다. 이 역시 동의를 받아내면 해운사들의 부채비율이 400% 이하로 떨어지고 그다음에는 정부에서 나서서 해운사들이 요즘 경쟁력 있는 대형선박을 사서 사업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둔 펀드를 동원해 지원한다는 방침"이라고 밝혔다.

따져보면 외국의 선주들이 일부 깎아주는 것(깎아줘도 시세의 3배 이상) 말고는국내 채권단이나 사채권자의 채권할인, 정부 지원 등은 모두 국민 세금에서 나와야하는 것들이다. 시장 예측을 잘못해 사업이 어려워지고 정부나 채권단이 이를 적절한 시기에 구조조정하지 못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 결국은 또 국민의 막대한 부담없이는 살아날 길이 요원한 모양새다.

그나마 협상이 안 되면 한때 잘나가던 해당 업체는 법정관리로 가게 된다. 이경우 살아날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 필요한 자금마련 방안, 여기저기서 퇴짜 구조조정에 필요한 자금 마련 노력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해운업체 위험노출액(익스포저) 대부분을 가진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에 자본확충을 해주어야 하는데 정부는 한국은행을 압박하는 반면 한국은행은 딴 데 가서 알아보라는 식이다.

임 위원장은 "한국은행이 지금 상황에서 나설 상황이 아니라며 재정을 통해 하라고 하는데 정부는 계속 한은을 압박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각각 장단점이있지만 한은을 통하는 방식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털어놨다.

정부 재정을 통해 하려면 추경을 편성해야 하는데 절차도 복잡할뿐더러 시기적으로도 올해는 힘들고 내년 예산에나 가능할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그나마 야당이 찬성해주어야 추경안이 국회를 통과하는데 거대해진 야당은 이것도 반대하고 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도 추경안에 대해서는 자신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정부는 한은에 대한 압박만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고 대통령까지 나서서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한국은행의 윤면식 부총재보는 지난달 29일 "한국형 양적완화는 국민적 합의 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야 한다"면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물론 뒤늦게 한은 총재가 나서서 이 방안도 논의해볼 수 있다며 한발 물러서기는 했지만 총재와의 의견조율없이 부총재보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의견을 말했을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한은의 속내는 익히 짐작할만하다.

금융위는 법 개정이 필요 없는 수은에는 한은이 먼저 출자를 하고 산업은행은조건부 자본증권(코코본드)을 발행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 잠 못 이루는 금융위, 질타는 한몸에 정부의 실무부처가 금융위이다 보니 구조조정과 관련한 지적은 금융위가 한몸에받고 있다. 위기에 빠진 해운업체들은 환자 취급을 받고 있고, 산업은행을 비롯한채권단은 정부 눈치만 보면서 몸을 낮추고 있으며, 결국 국민 여론을 가장 의식할수밖에 없는 정부는 속만 타들어 가는 형국이다.

임 위원장은 "직원들이 며칠씩 집에 못 들어가며 일하는 건 다반사"라면서 최근의 어려운 상황을 이야기했다.

정부는 이번 구조조정의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지만 직접 전면에 나서는 건 여러면에서 힘들다.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가능성이 늘 있는 데다 실제로 각 기업의사정을 채권단만큼 잘 알기도 어렵다. 함부로 나서면 정치권의 개입을 불러와 일을그르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느슨하게 추진하면 당장 모럴해저드가 발생할 수 있고 특혜시비도 나온다. 정부가 손 놓고 뒤로 빠져있다는 질타도 쏟아진다.

임 위원장은 "경제부장단 간담회를 하는 것도 구조조정에 대한 결기를 보여주려는데 목적이 있다"면서 "국책은행의 자본확충 규모, 방식 등에 대해서는 기재부와,한은 등 관계기관들과 내주부터 논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는 "재정이나 한은출자 방식 등을 고려할 수 있으며, 한은 출자의 경우 필요하면 산은법 개정 등을 통해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협상을 하면서 빅딜 가능성을 배제한 것도 잘못된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 "과거 외환위기 이후 추진했던 빅딜에서 가장 중요한 반도체, 자동차, 전자부문은 실패했다. 빅딜이라는 게 그만큼 어려운 것"이라면서 "지금 정부 주도로 인위적인 기업 빅딜을 하기는 곤란하며 업계에서 자율적으로 사업재편, 인수합병(M&A) 등을 추진할 경우 정부는 이를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satw@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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