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 깊은 부실> 힘은 당국이, 책임은 채권단이?

입력 2016-06-02 06:05  

조선업을 중심으로 한 기업부실 사태와 채권단 주도의 구조조정 실패 사례가 잇따르면서 부실 책임 소재를 두고 논란이 가속화되고 있다.

4조원대의 채권단 자금지원을 받은 STX조선해양이 법정관리를 받게 되면서 금융당국 책임론이 부상하자 당국은 채권단이 주관한 일이라며 발을 빼는 모양새다.

하지만 부실 가능성이 제기되던 STX조선해양에 당국의 동의 없이 수조 원대의국책은행 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금융계의 공통적인 지적이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책임을 명확히 묻는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국책은행이 채권단과 정부의 연결고리 구조조정은 시장에서 선제적으로, 자율적으로 이뤄지는 게 가장 이상적이다.

특정 기업에 자금을 빌려준 채권단이 해당 기업의 경영이 악화되거나 그 기업의업종 상황이 나빠지면 기업과 논의해서 기업의 자산, 고용, 사업 규모, 채무 등을구조조정한다.

채권단으로서는 기업 대출의 부실을 사전에 막을 수 있고 기업은 구조조정을 통해 정상화에 필요한 채권단의 지원을 얻을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도 정상화되지 못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되면 법적 절차를 거쳐 청산된다.

가장 초기 단계의 구조조정 절차로는 자율협약(채권단 공동관리)이 있다.

기업이 돈을 빌린 금융사(채권단)에 자금 지원을 요청하고 자구노력을 하는 것을 말한다.

기업과 은행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구조조정을 신청하고, 자구노력 방안을 내놓기 때문에 '자율'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현대상선[011200]과 한진해운[117930]이 자율협약 단계에 있고 법정관리 수준을밟게 될 STX조선해양도 자율협약 단계였다.

자율협약보다 강도가 한 단계 센 구조조정 방법으로는 워크아웃이 있다.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에 따른 것으로, 법적 구속력이 있다.

채권단 범위가 1금융권(은행)에서 2금융권까지 넓어지고 대상 기업의 경영권은채권단이 갖는다.

채권단은 기업의 정상화를 위해 인원 감축, 자산 매각 등을 요구하고 기존 경영진을 해임하고 새로운 관리인도 임명할 수 있다.

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모두 채권단 중심으로 구조조정이진행돼 당국의 개입 가능성이 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채권단에 국책은행이 포함되면 얘기가 달라진다.

해운, 조선 등 '중후장대' 산업에 대해서는 대출 규모가 크고 위험 부담이 있기때문에 일반은행은 대출을 꺼리는 게 현실이다.

국책은행의 자금은 국민의 세금으로 조달되고 최고경영자는 정부가 임명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국책은행이 중심이 된 채권단의 경우 정부 입김에서 벗어나기가 쉽지않다.

◇ 채권단 의사결정에 당국 지침 '결정적' 실제 최근 법정관리에 돌입한 STX조선해양 구조조정 사례를 봐도 국책은행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2013년 4월 자율협약 돌입 당시 STX조선의 채권 은행은 산은과 수출입은행, 농협은행, 정책금융공사, 우리은행[000030], 외환은행, 신한은행, 무역보험공사 등 8곳이었다.

이들이 보유한 STX조선에 대한 위험노출액(대출+선수금환급보증+파생상품)은 산은이 1조4천669억원(33.9%)으로 가장 많았고, 수출입은행과 농협은행이 각각 8천407억원(19.4%)과 8천164억원(18.9%), 정책금융공사 5천223억원(12.1%), 우리·외환·신한은행 1천억∼2천억원대, 무역보험공사 1천583억원 순이다.

정부가 대주주인 우리은행을 제외하더라도 정책금융기관의 보유 지분만 합쳐 70%에 육박했기 때문에 이들의 의사결정이 채권단 결정을 주도했다.

통상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과정에서 자금지원 등 주요 의사결정을 할 때 채권액 기준으로 75% 이상의 동의가 있으면 가결된다.

정책금융기관의 채권액 비중이 높은 만큼 주요 대기업 구조조정에 관한 의사결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사실상 절대적이다.

실제 STX조선해양의 채권단 지원을 앞두고서 장관급 경제정책 당국자들이 참석하는 비공개 경제현안회의(서별관회의)가 열려 채권단 지원 여부를 결정했던 것으로알려졌다.

정부 고위 당국자들이 STX조선해양에 채권단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비치자 추가 부실 가능성이 크다고 봤던 홍기택 당시 산은 회장이 사후 손실보전 및 면책을 요구했다는 사실은 금융권에 공공연하게 알려진 상황이다.

정부 지분이 없는 일반 시중은행이라고 해서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지 않는 것은아니다.

금융당국이 각종 인가권, 제재 권한을 가진 상황에서 당국의 눈 밖에 나는 행위를 하기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주채권은행의 결정이 곧 당국의 방침인 경우가 대부분인상황에서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혼자 튀는 결정을 하기란 쉽지 않다"며 "시중은행이 주채권은행 결정에 반해 반대매수청구권을 행사하는 경우는 정말로 '밑 빠진독'이 분명하다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말했다.

◇ 부실 커지면 '나 몰라라' 반복…"정부도 책임대상 포함돼야" 문제는 금융당국이 이처럼 자율협약이나 워크아웃 과정에서 채권단 결정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도 정작 문제가 발생한 뒤에는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잦다는 점이다.

STX그룹의 경우만 예를 들더라도 금융감독원은 지난 2014년 STX그룹 부실대출과관련해 산업은행 직원 2명에게 징계를 내린 바 있다.

금감원은 주채권은행인 산은이 STX[011810]의 재무구조개선약정 미이행 사실을알고도 필요한 후속 조처를 하지 않았고, STX조선해양의 분식회계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여신을 3천억원 확대한 점을 문제 삼았다.

이와 관련, 당시 산은은 기업 구조조정의 주요 결정이 사실상 당국과의 공조를통해 이뤄졌는데도 징계를 내렸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최근 STX조선해양이 3년간 4조5천억원에 달하는 채권단 지원을 받고도 법정관리에 돌입한 것을 두고도 금융위와 금감원은 "기업 구조조정은 채권단 중심으로 추진하는 것"이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당국의 개입이 지속되는 반면 부실 지원을 둘러싼 책임은 제대로 지지 않는 일이 반복되면서 19대 국회에서는 워크아웃의 법적 근거를 제공하는기촉법의 연장을 반대하는 목소리가 야권을 중심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최근 구조조정이 이슈화하면서 책임 규명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커지고 있다.

김광두 서강대 명예교수 등 교수 10여명은 최근 구조조정 현안과 관련해 성명을내고 "부실에 책임이 있는 주체에 대해 응분의 법률적 책임을 묻고 합당한 자구노력을 요구하는 법제도와 관행이 확립돼야 한다"고 말했다.

pan@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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