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경제> ③ 삼성발 자율 빅딜…재계 판도변화 신호탄

입력 2015-12-14 08:01  

방산·화학부문 사고팔고 계열사 떼고 붙이고…선제적 구조조정한화·롯데·SK 사업 재편 골몰…원샷법 통과시 합종연횡 가속화

기업의 영속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설명할 때마다 등장하는 것이 바로 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의 보고서다.

맥킨지는 1935년 90년에 달하던 기업의 평균 수명이 1975년에는 30년으로, 1995년에는 22년으로 단축됐고 2015년에는 15년에 불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또다른 자료도 있다.

1975년 매출을 기준으로 한 국내 기업 순위에 삼성이나 현대차 그룹 계열사는단 한곳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나 40여년이 지난 현재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다른 기업들과 격차를 벌리며앞서 나가고 있다.

LG경제연구원은 한 보고서에서 "생존이 점점 어려워지는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기업들은 살아남기 위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변신을 꾀하고 있다"며 사업재편과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재계의 이같은 움직임이 과거와 차별화되는 것은 선제적·자발적이라는 점에 있다.

과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망가진 사업을 헐값에라도 넘기기에 급급한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 아래 흑자 사업이라도 선제적으로 매각하는 사례가 많다.

비주력 사업을 마냥 안고 과거와 같은 선단식 경영을 지속했다가는 국내에서는몰라도 글로벌 경쟁에서는 뒤처질 수 밖에 없다는 위기감이 깔려 있다.

◇ 삼성 화학사업 팔고 계열사 간 '떼고 붙이고' 자발적 사업재편의 선두주자는 재계 1위 기업집단인 삼성이다.

삼성그룹은 지난해 말 삼성종합화학과 삼성토탈을 비롯해 방산·화학부문 4개계열사를 1조9천여억원에 한화그룹으로 매각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17년 만에 성사된 대기업 간 빅딜이었으며 순수 민간 주도의 대단위 기업 매각 작업으로는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삼성은 불과 1년도 채 지나기 전인 지난 10월 말 삼성SDI 케미칼 사업부문과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등 나머지 화학계열사를 롯데그룹에 매각하는 '제2의 빅딜'을 전격 단행했다.

이에 따라 삼성은 화학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전자·금융을 양대 축으로 하는 사업구조로 재편됐다.

한화그룹으로 넘어간 삼성종합화학이나 롯데에 매각된 삼성정밀화학 등이 지난해 영업적자를 기록하긴 했지만 대부분 회사들은 흑자 계열사라는 점에서 삼성의 선제적 사업재편이 재계에 던지는 충격은 컸다.

삼성그룹의 사업재편은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만큼 전격적이고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9월에는 옛 제일모직과 옛 삼성물산이 합병한 통합 삼성물산이 공식 출범했다.

삼성물산이 상사와 건설 등 기존 사업에서 구조적 저성장 국면에 진입하자 미래성장을 위해 제일모직과의 결합을 추진한 것이다.

통합 삼성물산은 패션과 식음, 건설, 레저는 물론 바이오사업에 이르기까지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 갖추고 미래 성장을 꾀하고 있다.

이밖에 삼성종합화학-삼성석유화학 합병 발표(2014년 4월), 삼성중공업[010140]-삼성엔지니어링 합병 발표 및 무산(2014년 9월·11월), 삼성SDS 유가증권시장 상장(2014년 11월), 제일모직 유가증권시장 상장(2014년 11월), 삼성SDI-정밀화학 사업부문 양수 및 양도(8월), 에스원 자회사 시큐아이 지분 삼성SDS에 매각(9월) 등 삼성 내부적으로도 크고 작은 사업재편이 잇따랐다.

그룹의 축을 이루는 전자 계열사도 예외는 아니어서 삼성전기는 지난 6월 HDD(하드디스크드라이브)모터 사업에서 손을 뗐고 이후 파워·튜너와 전자가격표시기(ESL) 사업을 분사했다.

이른바 한계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소재와 다층박막성형. 광학기술 등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삼성그룹 전체 구조조정 전략이 전자 계열사에도 적용된 것이다.

◇ 한화·롯데·SK 등 주요 대기업도 사업재편 골몰 삼성발 빅딜은 삼성 뿐만 아니라 전체 재계 지도에도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한화그룹은 모태인 방위산업 부문에서 삼성테크윈과 삼성탈레스를 인수, 매출규모가 2조6천억대로 불어나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섰다.

한화의 석유화학 부문도 종합화학과 토탈의 가세로 매출 규모가 19조원으로 커져 국내 석유화학 시장 정상을 놓고 다툴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한화그룹 전체적으로는 자산 규모가 37조9천500억원에서 50조5천700억원으로 증가했고 재계순위도 10위에서 9위로 상승했다.

삼성으로부터 나머지 화학사업을 물려받게 된 롯데그룹도 마찬가지다.

석유화학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 석유화학부문 계열사들을 인수하면서 기존 LG화학 외에도 한화와 롯데의 석유화학사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규모로성장했다"고 평가했다.

롯데는 비단 이번 삼성과의 빅딜 외에도 인수·합병(M&A) 시장에 가장 적극적인기업집단으로 꼽힌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지난 2010년 1월 이후 국내 30대그룹의 M&A 현황을 분석한 결과 롯데그룹이 21건, 7조6천377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롯데는 지난 2011년 신동빈 회장 취임 이후 공격적 전략을 펼쳐 하이마트(1조2천481억원), 현대로지스틱스(5천999억원) 등 굵직한 M&A를 성사시켰다. 올해도 더 뉴욕 팰리스 호텔(9천475억원), KT렌탈(5천56억원)에 이어 삼성의 화학사업을 인수했다.

이같은 M&A에 힘입어 2010년 87조2천억원이던 롯데의 자산은 지난 10월 말 기준117조3천억원으로 35%가량 급증했다.

SK그룹도 사업 및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지난 2007년 4대 그룹 중 LG에 이어 두 번째로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SK그룹은 지난 6월 '옥상옥' 구조로 비판받던 SK C&C를 지주회사인 SK㈜와 합병시켰다.

지배구조 개편은 물론 SK㈜의 자금력과 SK C&C의 글로벌 사업기회를 합쳐 정보통신기술(ICT)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SK는 또 주력 계열사 중 하나인 SK텔레콤을 통해 CJ그룹으로부터 CJ헬로비전을인수하는 한편 양측의 핵심 역량인 콘텐츠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구축했다.

돈이 되지 않거나 비핵심 사업의 문을 닫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부터 그룹 전반에 걸쳐 고강도의 재무구조 개선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포스코는 이달 초 손자회사인 포스하이알의 파산 절차에 돌입했다.

포스코 계열사가 파산하는 것은 1968년 창립 이래 이번이 처음이다.

동국제강 역시 수익성 악화에 빠진 포항 1·2 후판 공장의 가동을 중단하는 등철강경기가 나빠지면서 관련 기업들이 빠르게 구조조정에 돌입한 모습이다.

◇ '원샷법' 통과 시 합종연횡 가속화될 듯 현재 임시국회에 계류 중인 기업활력제고특별법, 이른바 '원샷법'이 통과되면기업 간 합종연횡은 보다 가속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원샷법의 핵심은 선제적이고 자율적이며 정상기업을 대상으로 한 구조조정이라는 점이다. 기존 기업구조조정촉진법이나 통합도산법이 사후적 타율적 구조조정을지원하며 부실기업이나 워크아웃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것과 차별화된다.

원샷법은 신용등급이 A등급이나 B등급인 정상기업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사업재편을 추진하면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5년 한시적으로 특례를 주는 것이 골자다.

과잉공급 해소를 위해 사업을 재편하는 기업, 기술변화나 소비자 선호 변화 등으로 수요가 급감하거나 국제적으로 원가 경쟁력을 잃어가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최근 어려움을 겪거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업종은 물론이고 건설업과 유통업, 금융업 등 내수산업 경쟁력 강화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석유화학업계는 자발적 사업재편을 위해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민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민간 주도라는 태생적 한계로 인해 구체적인 실행에는 이르지못하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서 원샷법이 통과되면 돌파구가 마련될 것이라는게 업계 관측이다.

실제 기업들은 일단 원샷법 제정을 지켜본 뒤 사업재편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신중한 입장을 보이는 곳이 많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대기업 150개사, 중소·중견기업 350개사 등 500개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10곳 중 8곳인 80.8%는 '(원샷법의) 지원혜택 등 조건에 따라 사업재편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한때 국가 근간산업 역할을 하던 철강과 조선 등이 글로벌경기 침체와 공급 과잉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등 우리 기업들이 선제적 자발적으로고강도 개혁작업을 진행하지 않을 경우 글로벌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면서 "고통스러운 과정이지만 당분간 한계사업을 정리하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작업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pdhis959@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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