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삼성 컬처혁신> 그들이 꿈꾸는 자율형 조직문화는

입력 2016-03-27 09:31  

사장에 스스럼없이 '프로' 호칭…업무 이메일 용건만 간단히비효율적 회의ㆍ보고, 눈치보기 야근ㆍ잔업 모두 퇴출 대상

미국의 한 정보기술(IT) 업체를 방문했을 때 이곳 관계자는 삼성전자와의 협업을 진행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때때로부딪혔다고 전했다.

이메일을 주고 받을 때 용건을 직접적으로 가장 먼저 언급하는 자신들과 달리삼성전자[005930] 담당자는 불필요하게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고서야 마지막에 '슬쩍' 용건을 집어넣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 않나. 게다가 서로 원하는 바가뚜렷한데 때로는 이메일을 보면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고토로했다.

삼성전자의 수직적 조직문화 역시 이해하기 힘든 점 중 하나였다고 한다.

자신이 삼성전자 실무자와 이메일과 전화로 중요한 부분에 대해 얘기를 나눈 뒤막상 결정에 들어갈 때면 삼성전자 임원이 나타나는데 그 임원에게 처음부터 다시모든 것을 설명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글로벌 기업인 것은 분명하지만 분명 일하는 방식은아직까지는 글로벌 스탠더드와 거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스타트업 컬처혁신 선포'는 글로벌 IT 업계의 선두주자 중하나인 삼성전자의 외형에 걸맞은 조직문화를 갖추기 위한 소프트웨어 혁신의 시발점으로 평가된다.

'스타트업'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 삼성전자는 이번 컬처혁신을 통해 미국실리콘밸리에 있는 신생 벤처기업처럼 자율성과 창의적 사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춰나간다는 복안이다.

삼성전자는 구체적으로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생산성 제고, 자발적 몰입강화 등을 Ɖ대 컬처혁신 전략'으로 내세웠다.

수평적 조직문화를 구축하고 조직원 스스로가 집중해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업무 생산성은 자연히 올라가는 선순환 구조가 가능해진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컨설팅기업 맥킨지와 함께 국내 기업 100개사 임직원 4만명을 면밀히 조사해 펴낸 '기업문화 종합진단 보고서'를 보면 삼성전자가 조직문화 혁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명확해진다.

보고서는 한국형 기업문화를 심층진단해 점수화한 결과 가장 심각한 문제로 '습관화된 야근'을 꼽았다.

비효율적 회의, 과도한 보고, 소통없는 일방적 업무지시 등도 문제로 지적됐다.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와 상명하복의 불통문화 덕분에 야근은 이어지지만 야근을 할수록 생산성이 떨어지는 역설에 빠진다는 분석도 나왔다.

삼성전자 내부의 인식과 진단 역시 대한상의 보고서에서 지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권위주의 문화와 수직적 조직체계에서 비롯된 비효율적인 회의와 보고문화가 잔업이나 특근으로 이어지고 이는 다시 임직원들의 생산성을 떨어뜨려 회사 전체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삼성 고위층에서도 이같은 문제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가 GE를 거쳐 다시 돌아온 최치훈 삼성물산[028260] 사장은지난 7월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과의 인터뷰에서 삼성 문화에 대한 솔직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최 사장은 "우리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 특히 '구세대삼성맨'들이 글로벌이라는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은 매우 글로벌한 인물이고 그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외국계 기업에서 일하는 전직 삼성맨은 "삼성은 서열 중시 등 한국 문화에 기반한 로컬기업의 속성을 벗어나지 못했다"면서 "공식·비공식 자리를 가리지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내라고 하면서도 '윗분'의 맘에 들지 않으면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말한다'는 타박이 돌아오니 다들 침묵하고 마는 비효율이 반복된다"고지적했다.

문제의 원인이 분명하다면 개선을 위해 나아갈 방향 역시 명확해지는 법.

삼성전자는 이같은 문제 의식과 임직원 집단지성 플랫폼인 모자이크(MOSAIC)에서 제시된 의견을 토대로 '글로벌 인사혁신 로드맵' 수립에 들어갔다.

오는 6월 중 발표될 로드맵은 ▲ 직급 단순화 ▲ 수평적 호칭 ▲ 선발형 승격▲ 성과형 보상 등 4가지 방향을 골자로 한다.

'현재진행형'인 만큼 구체적인 세부내용이나 제도변화에 대해 예측하기는 쉽지않다.

다만 직급단순화와 관련해 현재 경영지원·일반관리·기타 스태프 직군에서 사원·대리·과장·차장·부장의 5단계인 직급 체계를 단순화하는 한편 팀장 체제를확대 구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모자이크에서도 현행 직급 체계를 축소하거나 단순화하고 동료나 선후배를부르는 호칭을 개선해 수평적인 조직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삼성그룹 내 계열사인 제일기획[030000] 사례도 참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제일기획은 2010년 3월부터 신입사원을 포함한 사원부터 사장까지 호칭을 모두'프로'로 통일했다. 명함에는 직급을 명시하지 않고 '프로'라고만 적는다.

사원·대리·차장·국장·수석으로 이어지는 수직 직급체계는 'C1으로 단순화했다. 이 직급체계는 사실상 인사카드에만 분류돼 기록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에서 쓸일은 거의 없다.

제일기획은 광고업 특성상 이직이 많다. 경력사원이나 신입사원이 입사해 조직문화를 익혀야 하는 부담은 물론 기존 직원들의 직급을 몰라 호칭할 때 신경쓰거나실수를 하는 일이 많다. 그러한 부담을 없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나눌 수 있도록하겠다는 취지였다.

프로 호칭을 도입한 지 만 6년. 제일기획 직원들은 연차나 나이를 떠나 서로를스스럼없이 프로라고 부른다.

제일기획 관계자는 "업종 특정상 부서별로 혹은 타 부서와 회의를 하거나 협업할 일이 많다"며 "직급과 연차 등 순서에 신경쓰지 않고 특히 젊은 사원을 중심으로편안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분위기가 자리잡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가 컬처 혁신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향후 삼성전자를 이끌어갈 20∼30대 젊은 글로벌 인재들에게 삼성전자의 기존 문화가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이들이 구애받지않고 일할 수 있는 조직문화를 만들자는 것이 이번 컬처혁신 선포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인사혁신 로드맵에는 현행 포인트에 기초한 승격 방식을 개선하는 방안도 담길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승진이나 승급 심사를 할 때 현 직급을 갖게 된 이후의 기간 등을 기준으로 하되 일부 예외적인 '특진'을 인정하는 방식이었지만 앞으로 연차나 체류 기간에 구애받지 않는 선발형 승격제도가 도입될 것으로 전망된다.

보상 방식에도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대대적인 컬처혁신 선포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은 엇갈린다.

삼성전자에 재직 중인 한 과장급 사원은 "실제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분위기가뿌리내린다면 크게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전례를 봤을 때 '조직문화 혁신'을 위한 태스크포스(T/F) 등 각종 조직이 구성돼 조사와 회의, 보고서 작성 등의 사이클을 반복하다가 결국에는 유야무야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반응도 나온다.

다만 문제를 직시하고 전사 차원에서 이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한다는 점에서는 다들 공감하고 박수를 보내는 분위기다.

삼성 계열사의 한 직원은 "단기간에 달라질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어쨌든 문제를 인식하고 자율성을 중시하는 쪽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큰 방향성을 제시한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말했다.

pdhis959@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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