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CEO> 28년만에 청문회 불려나온 재벌 총수들

입력 2016-12-10 10:00  

'맹탕 청문회' 평가 속 베일에 가린 총수들 면모 볼 기회도

이번 주 재계의 가장 큰 이벤트는 단연 국정조사 청문회였다. Ƌ공 청문회'가 열렸던 1988년 12월 이후 28년 만에 재계의 총수(오너)들이 다시 한 번 대거 청문회 자리에 선 것이다.

6일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국정조사 특별위원회1차 청문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 부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손경식 CJ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등 9명의 재벌 총수가 출동했다.

재벌을 출석시킨 청문회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원래는 '비선 실세' 최순실씨에 의한 국정농단의 진상을 밝히기 위한 자리였지만 국민에게는 평소 베일에 가려져있던 재벌 총수들의 화법이나 면모를 엿볼 기회가 됐다.

◇ 이재용 부회장, '돌려막기 재용' 빈축 샀지만 "미래전략실 해체" 약속도 총수 청문회의 스포트라이트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쏟아졌다. 국정조사 특위 위원들 질의의 67%가 이 부회장에게 집중됐다. 사실상 '이재용 청문회'였다는 평도 나왔다.

삼성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해 가장 많은 의혹을 사고 있기 때문이지만 삼성이한국 재계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상징성도 한몫했다.

특히 이 자리는 국내 재계 서열 1위이자 한국의 대표적 글로벌 기업인 삼성의경영권을 승계할 이 부회장이 처음으로 일반인에게 모습을 드러낸 자리이기도 했다.

이 부회장은 작년 5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 대국민 사과를한 적이 있지만 이번 청문회처럼 오랜 시간 카메라 앞에 모습을 드러낸 채 자신의견해와 생각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 부회장은 이날 의원들의 날 선 추궁에 대해 "죄송합니다.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같은 발언을 가장 많이 되풀이했다.

그다음으로는 "제가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앞으로 좋은 기업이 되기 위해 더많이 노력하겠습니다"처럼 사과하고 다짐하는 말을 연거푸 쏟아냈다.

이를 두고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별명 하나를 주겠다"며 '사지선다형 돌려막기 재용'이라고 칭했다. '모르겠다'와 '기억 안 난다', '제가 부족하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4개 답변을 번갈아가며 반복하는 것을 비꼰 것이다.

이 때문에 삼성전자의 오너로서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는 반응들도 나왔지만 그는 이날 청문회에서 굵직한 약속 두 가지를 내놨다.

하나는 그룹 사령탑이면서 탈법적 로비의 창구 구실을 했다는 의혹을 받는 미래전략실을 해체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부회장은 "(삼성 미래전략실은) 창업자이신 선대 회장께서 만드신 것이고,회장께서 유지해오신 것이라 조심스럽지만, 국민 여러분에게 이렇게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면 없애겠다"고 말했다.

이 약속이 실천으로 이어지면 삼성 그룹의 조직과 의사결정 구조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그는 또 삼성이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탈퇴하겠다고도 선언했다. 최태원 SK그룹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도 탈퇴 뜻을 밝히면서 전경련은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다만 구본무 회장이 전경련의 대안으로 미국 보수 진영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 모델을 제시하면서 해체가 아닌 위상 변화의 여지는 남았다.

세간의 관심은 다소 엉뚱한 곳으로도 튀었다. 청문회 뒤 인터넷에서는 '이재용립밤'이 인기 검색어가 됐다. 이 부회장이 청문회 도중 입술에 바른 립밤 제품은 온라인 직구 쇼핑몰에서 인기 상품이 됐다.

◇ 구본무 회장은 '국회가 준조세 요구 법으로 막아달라' 구본무 회장은 정부가 대기업들에 요구하는 준조세 성격의 출연금에 대해 "국회에서 입법으로 막아달라"고 말해 화제가 됐다.

안민석 의원이 재벌들에게 "앞으로도 뭐 좀 내라고 하면 또 들어주고 청문회 나오겠느냐"고 다그쳐 물은 데 대한 응수였다.

그는 또 "기업 입장에서는 정부 정책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는 발언으로 재벌들의 미르·K스포츠재단에 대한 출연이 강압에 의한 것이었음을 시사했다.

대가성이 없었다는 얘기다.

대기업 모금 창구였던 전경련 회장 자격으로 청문회장에 나온 허창수 회장도 "정부 요청이 있으면 기업이 거절하기 힘든 게 한국적 현실"이라고 거들었다.

손경식 CJ그룹 회장은 청와대로부터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에 대한 퇴진 압력이있었다고 증언했다. 손 회장은 "조원동 전 경제수석이 '이미경 부회장이 자리를 비켜줬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요구의 배경에 대해 "경솔하게 추측할 수는 없고 조 수석이 확실히말해야 하는데 말하지 않아서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최순실씨의 측근인 고영태씨의 친척에 대한 인사 청탁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조 회장은 또 평창동계올림픽 조직위원장 자리에서 물러나라는 사퇴 통보를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부터 받았다고 밝혔다.

◇ 정몽구·구본무·손경식 등 고령 총수들은 조퇴 일흔을 훌쩍 넘긴 고령의 총수들은 건강에 대한 우려가 나왔지만 다행히 별 탈없이 끝났다. 다만 정몽구 현대차[005380] 회장은 오후 6시 50분께 청문회가 정회하자 준비된 차를 타고 서울성모병원으로 이동해 진료를 받았다.

정 회장은 그 뒤 심장질환 전문의의 진단을 받아야 한다는 진단서를 국조특위에제출하고 다시 청문회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정 회장은 심장병 수술 전력과 고혈압 등으로 평소 지병을 앓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역시 고령인 구본무 회장과 손경식 CJ그룹 회장도 밤 8시 반을 넘기면서특위 위원들의 양해를 받아 다른 총수들보다 일찍 청문회장을 뜰 수 있었다.

이날 청문회는 국회의원들의 맹탕 질문에 총수들이 모르쇠 답변으로 응수하면서별 소득이 없었던 청문회라는 평가를 남겼다.

그럼에도 한편으로는 평소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재벌 총수들을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이례적인 자리였다.

sisyphe@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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