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률의 에베레스트 다이어리 13] 초모랑마, 과연 허락받는 사람만 오르는가?

입력 2014-09-26 10:06   수정 2014-09-26 10:06


세계는 지금 ‘등정주의(登頂主義)’에서 벗어나 ‘등로주의(登路主義)’로 가고 있다. 등로주의 즉 머머리즘(mummerism)은 “등정이라는 결과보다는 얼마나 어려운 등반 과정을 거치며 등반했느냐”에 참 뜻이 있다고 보는 등반 정신이다.

영국의 등반가 머머리(Albert Frederick Mummery)가 1880년 주창한 이 사상은 가이드를 앞세워 가장 쉬운 코스를 선택해 정상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등정주의(登頂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쉬운 능선을 따라 정상에 오르기보다는 절벽 등 어려운 루트를 직접 개척해 가며 역경을 극복해 나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에베레스트의 또 다른 전설인 라인홀트 메스너(Reinhold Messner)도 무산소, 단독, 연속 등정 등 3대 신과제를 들고 나와 그 자신이 1978년 에베레스트와 낭가파르파트를 오르고 극한등반의 새로운 길을 열었다.

이제 세계의 산악인들은 '세븐 서밋(Seven Summit / 7대륙 최고봉 등반) 8,000미터급 세계 14좌 등정, 산악그랜드슬램(Adventure Grand Slam / 히말라야 8,000m 14좌 등정, 세계 7대륙 최고봉 등정, 3극점 정복, 이 세 가지를 모두 달성하는 것) 등 새로운 목표에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머머리즘이나 극한등반이나 세븐서밋이나 모두 ‘정복주의’의 변종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고산을 오르고 나면 “산을 등정했다”라는 말보다 “산을 정복했다”는 표현을 쓰고는 한다. 자칭 타칭 세계최고의 산악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고산에서 일기가 급변하면 자기 목숨 하나 건사하기 힘든 것이 7,000 ~ 8,000미터급의 고봉인데 산 위에서 고작 흩날리는 작은 점에 불과한 사람들이 어떻게 그 높은 산을 ‘정복’한다는 말일까?

1996년 상업원정대의 가이드로 나섰던 당시 세계최고의 베테랑 산악인 중 한 명인 롭 홀(Rob Hall)과 스콧 피셔(Scott Fischer)도 정상을 등정하고 난 후 하산길에 눈보라를 동반한 강풍을 만나 백시현상(화이트아웃 또는 백시현상이라고도 한다. 주로 겨울철에 일어나는 현상으로 눈이 많이 내려서 모든 것이 하얗게 보이고 원근감이 없어지는 상태)에 맞닥뜨리게 되자 길을 잃고 모두 8명이 동사하고야 말았다.

과학이 고도로 발달하고 슈퍼 컴퓨터를 수 십 대 동원하여 히말라야의 일기예보까지 하는 오늘 날에도 날씨가 좋지 않으면 고산 등정은 포기해야만 한다. 

물론 2005년 5월 1일에 북극점에 도달함으로서, 세계 최초로 산악 그랜드슬램(Adventure Grand Slam)을 달성한 박영석 대장이나 세계의 고봉인 히말라야 8,000m 14좌를 세계에서 8번째로, 2007년 5월 31일에는 로체샤르까지 등정하여 세계 최초로 14+2좌를 완등한 엄홍길 대장이 있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7월11일 히말라야 낭가파르밧(8125m) 등정을 마치고 하산하던 여성 산악인 고미영 대장의 사망은 무리한 등정주의가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있다.

불과 2년 8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8000m급 11개봉 연속 등정 기록을 세우면서 ‘세계최초 여성 14좌 등정’ 타이틀을 눈 앞에 두고 있던 고미영. 그는 결국 히말라야에서 한떨기 꽃잎처럼 저버리고 말았다.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14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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