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15) 인수봉 패시길 / 빅월 등반을 향한 큰 꿈, 인수에 새기다

입력 2014-09-25 15:58  


[김성률 기자] 화창한 주일 아침. 보름만의 등반을 위해 변함없이 하루재를 오른다. 하루재를 넘어 100 미터 내려가면 인수봉이 한눈에 바라다 보이는 포인트가 있다. 오전 9시경 이곳에 서서 인수를 바라보는데 지난주의 인수가 아니다. 이미 대부분의 바윗길에는 클라이머들이 새까맣게 달라붙었다. 게다가 한 인터넷산악회에서 30~40여명이 졸업등반을 하는바람에 등반을 하는 내내 코스마다 고함소리가 이어졌다. 

이날 등반에 나선 길은 패시길이다.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무언가 세련된 분위기가 물씬 나는 이 길은 인수 동면 오아시스 왼쪽 윗자리에 자리하고 있다. 패시길 바로 왼쪽에는 봔트길이, 다시 그 왼쪽으로는 우정 A가, 우정A의 위에는 검악B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고 패시길의 바로 오른쪽에는 산천지길이 위치하고 있다.

패시길을 가다보면 바로 옆길을 가는 클라이머와 같은 위치에서 확보를 하기도 하고 등반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게도 된다. 그래서 등반경력이 오래된 클라이머들은 서로서로 안면이 있다. 오른쪽으로 산천지길 너머로는 의대길이 보이는데 큰 소리가 들려 혹시나 하고 유심히 보니 아는 클라이머이다. 서로 손을 들어 수신호를 하고는 카메라에 모습을 담아 본다.

대슬랩의 왼쪽 오버행이 보이는 곳에서 패시길은 시작된다. 첫째 마디는 난이도 5.7에 20미터 거리의 크랙과 슬랩길이다. 난이도로 보자면 바위꾼들이 흔히 하는 말로 "그냥 걸어가는 길" 정도인데도 보름만의 등반이라 그런지 바위가 나를 자꾸 밀어내는 듯한 느낌이다.

골프에도 주말골퍼라는 말이 있지만 아무래도 주말 클라이머의 한계가 아닌가 싶다.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빠지지 않고 바위에 매달리면 자신감이 붙고 기량이 조금씩 늘어나는 듯하다가도 그만 보름이 넘어버리면 등반이론만 머리 속을 맴돌 뿐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골프격언 중에 "하루 연습을 하지 않으면 내가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캐디가 알며, 사흘 연습하지 않으면 갤러리가 안다”는 말이 있는데 암벽등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전날 음주를 하거나 육체적으로 무리를 해서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쉬운 길도 어렵게 느껴지고 나의 불편한 오름짓을 함께 등반하는 동반자들이 알아차린다.

천천히 첫째 마디를 올라 확보를 하고 나니 오버행 구간이 더욱 뚜렷하게 바라다 보인다. 오버행의 가운데 봔트길을 넘어가는 클라이머의 몸놀림이 간절하다. 패시길을 넘어가는 선등자는 아마도 패시길이 처음인듯 긴장된 자세로 어렵게 넘어간다.


둘째 마디 역시 슬랩과 밴드로 이루어진 난이도 5.9 구간이다. 잡을 것이 없는 슬랩은 언제 마주쳐도 반갑지가 않다. 발끝을 대고 발목에 힘을 주어서 꺾어 디뎌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다행히 난이도가 높지 않아 깔끔하게 올랐다.

드디어 셋째 마디 오버행 구간이다. 선등자는 좌향 크랙을 타고 올라 중간 볼트에 자일을 통과시킨 후 오버행 바로  밑에서 캠을 설치해야 한다. 그 다음 몸을 일으켜 오버행 위쪽의 볼트에 퀵드로를 걸고 자일을 통과시킨다. 이어서 두 손으로 홀드를 잡아 몸을 올려 세운 다음 연이어 오른발을 바위 턱에 올려 힘을 주면 오버행을 넘어가게 된다.

봔트길도 그렇지만 패시길 셋째 마디 역시 근력이 약한 남성이나 여성 클라이머에게는 다소 힘이 든 것이 사실이다. 난이도는 5.10c로 사실상 패시길의 크럭스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마디를 넘으면 이번에는 크랙과 슬랩으로 이어지는 난이도 5.10c의 짭짤한 바윗길이 버티고 있다. 넷째마디다. 특히 막판의 슬랩길은 오르기가 결코 쉽지 않다. 바위결은 비교적 살아있는 편이지만 거의 서있다시피 한 경사도는 두 손과 두 발끝으로 내 체중을 지지하며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기 힘들게 만든다. 여기에서 부끄럽게도 퀵드로우도 한번 잡고 볼트를 딛는가하면 짧은 슬랩을 두세 번이나 먹은 다음 어렵게 완등을 하고 말았다.


다섯째 마디는 5.6 또는 5.9의 슬랩구간이다. 다섯째 마디는 관련자료마다 난이도가 달리 표기되어 있는데 5.6은 너무 낮고 5.9로는 조금 쉬운 구간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4월 셋째 주 일요일. 시즌을 맞은 인수봉에는 클라이머들이 넘쳐났다. 위에서 아래를 바라다보면 마치 놀이기구를 탈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확보하여 매달려 있는 모습이 앙증맞기조차 하다.

집에서 아침 6시반에 나와 도선사주차장을 출발한 것이 아침 8시 30분경이었는데 앞팀의 완등을 기다려 등반을 하고, 이렇게 기다림이 되풀이이 되는 동안 시간은 자꾸 지체되어 갔다. 따뜻하던 날씨가 기다림에 어느덧 쌀쌀해지고 해가 뉘엿뉘엿 기울 때는 한기까지 몰려왔다. 4월의 인수는 아직도 차다. 60자 두 줄 하강을 세 번하고 인수대슬랩으로 하강을 완료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다 되어 있었다.

북한산국립공원사무소에서 제작한 인수봉 등반 루트 안내판을 보면 패시길은 모두 139미터의  다섯 마디로 이루어져 있다. 첫째 마디는 크랙과 슬랩으로 이루어진 20미터, 난이도 5.7의 구간이다. 둘째 마디는22미터의 거리에 난이도 5.9의 슬랩과 밴드로 이루어졌다. 셋째 마디는 슬랩과 크랙으로 이루어진 거리 35미터 난이도 5.10c의 구간. 넷째마디는 거리 32미터 5.10c 난이도의 크랙구간. 마지막 다섯째 마디는 거리 30 미터 난이도 5.9의 슬랩구간이다.

패시길은 중급자 2인1조로 약 2시간이 소요되는 코스로 알려져 있지만 요즘같이 인수와 선인의 모든 길이 등반인파로 몰리는 주말에는 이 시간 내에 등반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대기시간이 그만큼 길다는 말이다.


패시길은 1983년 곽효균 씨를 주축으로 개척된 길이다. 최근 <요세미티 엘캐피탄 동남벽 아메리칸월 ‘세 마리 해마 트리 시 호스 코스 개척등반보고회>라는 다소 긴 이름의 보고회를 연 그는 자신의 표현대로 일찍이 ‘대자연으로 출가’한 타고난 바위꾼이다.

1967년 숭실고등학교 산악반을 창설하면서 본격적인 암벽등반가로서의 삶이 시작됐다. 남측슬랩 A, B를 비롯해서 알핀로제스, 뱀길, 빌라길 상단 등의 코스를 초등반한 화려한 경력을 갖고 있다. 1977년부터는 설악산 울산암, 남벽, 번개길 개척 초등반을 시작으로 적벽 A, B, C코스 또한 초등반 했다.

1960년대부터 히말라야 빅월등반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패시(PASI/Professonal Assosiation Sports Instructors)를 운영하면서 비로소 인수봉 남벽에 패시길과 나그네길 개척등반을 한 것이다.

그는 1984년도에 한국알파인가이드협회에서 꾸린 네팔 샤르체(7,459m) 원정대에 참가해 등정을 마치면서 동상에 걸려 발가락 일부를 절단했다. 이후 1985년부터 미국에서 활동해왔다. 한편 곽효균 씨는 올 여름시즌 요세미티 대암벽 빅월등반 안내가이드를 준비하며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다.

지난 4월19일 오전 10시경에 곽효균 씨와 전화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패시길 개척 당시의 동기가 있다면?
1981년도에  PASI라는 스포츠, 레저 스쿨을 열었습니다. 이곳에서 암벽등반, 빙벽등반, 윈드서핑, 스키 등을 가르쳤죠. 패시길은 제가 리딩을 하고 당시 '오이지'로 유명했던 전준수(사망), 박병원(뉴욕 거주), 하관용 등과 함께 개척한 길입니다. 1970년대에는 오버행을 넘을 수 없었지만 당시에는 이미 캠이 나와 있었기 때문에 개척 당시 사용했습니다.

개척당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패시길은 원래 크랙이 전혀 없던 길입니다. 나무와 풀, 흙 밖에 없었어요. 이것들을 피켈과 호미로 다 파냈습니다. 그런데 장마가 오고 비가 계속 오다보니 비로소 바윗길이 된 거죠.

개척 당시에는 암장운동이란 것도 없었고 자신이 그렇게 특출한 클라이머라는 생각도 하지않았다는 곽효균 씨는 이제와서야 당시의 일들이 대단했다고 여긴다고 한다.

이번에 한국에 오게 된 동기는?
"제가 미국에 갔을 때도 프로산악인으로 갔고 결코 만만한 곳이 아닌 앨캐피탄 요세미테에 트리 시 호스 길을 냈습니다. 요세미테가 생각보다 등반이 힘든 곳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쟁쟁하다는 분들도 완등을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는 이분들을 무상으로 도와드렸지만 이제는 보다 많은 한국의 산악인들이 이 길을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습니다"


곽효균 씨는 미국에서 '사가르마타'라는 브랜드의 등산복 제조업을 하고 있다. 대중적이라기 보다는 전문가를 위한 제품이라고 한다. 또 내일은 곧 인수봉에 올라서 나그네길을 포함해서 정리되지 않은 길들은 마무리 하겠다고 했다.

곽효균 씨는 “개척자가 낸 길이 바뀌어서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또 원래의 길이 다른 길과 이어져서 사용되는 풍토는 바윗길의 역사를 바꾸는 일이므로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며 미국 같으면 상상도 하지 못할 현상”이라고 일침했다.

인수와 적벽에 숱한 길을 낸 베테랑 산악인인 곽효균 씨와 당시의 에피소드를 나누며 앨케피탄을 오르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번 기회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곽효균 씨 연락처 : 010-5717-2888, 미국 0011-213-258-5026)

평범해 보이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고, 불가능할 것도 같지만 굳세게 오르는 바윗꾼에게는 이내 오름짓을 허락해 주는 길. 무언가 끓어오르는 도전정신이 바위에 그대로 표현된 것과도 같은 바윗길. 이미 30년 전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저 멀리 미국 앨캐피탄에 형제와도 같은 바윗길을 꿈꾸었는지도 모를 바윗길. 1980년대초, 빅월등반을 꿈꾸며 인수에 새긴 패시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바위꾼들의 사랑을 받는 한국의 바윗길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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