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41) 인수봉 취나드A길 / 인수봉과 이 땅에 영원히 남은 그 이름, 이본 취나드

입력 2014-09-25 16:24   수정 2014-09-25 16:24


[김성률 기자] [인물 1] 1968년, 이 사람은 훗날 에스프리와 노스페이스의 설립자가 되는 더그 톰킨스(Doug Tompkinsard)를 포함한 모두 4명의 친구들과 6개월간 남아메리카로 여행을 떠난다. 이들은 북미에서 남미 리마까지 이동하면서 서쪽 해안에서는 서핑을, 칠레의 화산에선 스키를 타는 등 모험을 만끽하다가 결국 남미 파타고니아 산군의 피츠로이(3450m)를 등반하게 된다.

그러나 히말라야의 고산에 비교하자면 야트막한 언덕(?)에 불과한 파타고니아의 벽들은 날씨의 변화가 극심하여 등정 성공률이 매우 낮은 곳이다. 또한 세상 끝의 오지로 손꼽히는 곳이어서 일단 조난을 당한다면 구조의 손길 또한 미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취나드를 비롯한 5명의 클라이머들은 60일에 걸쳐 남극에서 불어오는  폭풍설을 피하고 짙은 안개, 저온, 화이트 스노우 등을 극복하기 위해  설동을 파고 벽에서 비박(Bivouac 일체의 침구 없이 예정되지 않은 장소에서 잠을 자는 것)까지 감행해간 끝에 신루트를 개척하며 정상에 오른 것이다. 이 과정은 마운틴 오브 스톰(Mountain of storms)이라는 다큐 영화로 만들어져 전 세계의 모험 마니아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된다.

이 사람은 이 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훗날 세계적인 암빙벽 전문장비회사를 차린다. 그는 누구일까?

[인물 2] 파타고니아라는 회사가 있다. 2007년 기준 매출액 2억 7천만 불, 전 세계에 매장을 가지고 있는 이 회사는 미국의 아웃도어 브랜드로 남미 칠레와 아르헨티나 국경지역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이 회사의 모든 면소재 의류는 3년간 화학농약을 사용하지 않은 토양에서 유기비료를 사용해 수확한 면인 100% 유기농면으로 제작되고 있다. 세계최초로 플라스틱 병을 사용하여 옷을 만들기도 했고 낡고 오래된 제품을 수집해서 새로운 제품으로 만들어내는 '에코서클'이란 친환경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 아웃도어 의류 매출액 1위, 매출의 1%로 지구캠페인 실시. 이 회사는 여러 가지 환경 캠페인과 보호 운동을 벌여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기업이다. 이 회사를 만든 사람은 누구일까?

[인물 3] 그는 공부를 아주 못했다. 프랑스계 캐나다 태생으로 어릴 때부터 정규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다가 결국 15살에 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을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학력이 전부인 그는 미국의 국립공원이자 전 세계 암벽등반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인 요세미테와 엘캐피탄 등에서 본격적인 프로 등반가 생활을 시작하여 수없이 많은 초등을 비롯해 등반사에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붙인 암벽과 빙벽 장비로 성공할 수 있었다. 공부는 못했지만 그의 아버지가 대장장이였던 탓에 타고난 손재주가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당시인 1963~1965년도에는 자신이 사용할 장비를 쌍림동 대장간에서 손수 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자신만의 노하우를 지키고 싶었던 듯 그가 중요한 합금 작업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들을 모두 대장간 밖으로 쫓아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그는 한국의 인수봉에 바윗길 2개를 개척한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한국의 산악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바윗길 들이 되었다.

인물1과 인물2와 인물3은 동일인이다. 그의 이름은 이본 취나드(Yvon Chouinard).


1938년 11월9일 카나다에서 태어나 현재 우리나이로 치면 74세가 된다. 그를 대표하는 수식어는 파타고니아 사의 회장이지만 뛰어난 클라이머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그를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그가 바로 대한민국하고도 북한산 인수봉에 멋진 바윗길을 개척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본 취나드와 인수봉 취나드B길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한국의 바윗길을 가다 22편 인수봉 취나드 B길 / 국경 없는 알피니즘, 인수에서 꽃피우다>에서 이야기 했거니와 그가 취나드길을 개척하게 된 스토리는 이렇다. 

주한미군으로 근무하던 이본 취나드는 어느 날 인수봉과 만나게 되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꾼인 선우중옥 씨를 찾아간다. 영어를 잘 못했던 선우중옥 씨는 이 미군이 하는 말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암벽등반을 같이 하겠다는 의사를 그럭저럭 읽게 되어 그를 데리고 인수봉으로 갔다.

선우중옥 씨는 취나드가 암벽의 초보자인줄 알고 인수봉 밑에서 자일 묶는 법부터 가르쳤고 취나드는 묵묵히 그의 가르침을 따랐다고 한다. 그러나 취나드가 누구인가? 이미 15세 때부터 학교를 중퇴하고 암벽등반에 매진하던 미국의 정상급 클라이머였다. 함께 등반을 하면서 서로가 탁월한 능력을 가진 바위꾼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강오 씨 등과 함께 의기투합하여 바윗길을 개척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길이 바로 '인수봉 귀바위 크랙코스'라고 불리던 취나드A와 취나드B길. 1963년 9월의 일이었다.


GI의 신분이던 이본 취나드는 그러나 마음대로 시간을 낼 수가 없었다. 결국 이본 취나드는 감방을 갈 각오로 상관의 책상 위에 가부좌로 앉아 등반할 시간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돌입한다. 결국 상사가 내린 결정은 보일러병으로 발령 내는 일이었다. 다음부터 취나드는  아침에 보일러에 기름을 가득 채워놓고 하루 종일 등반을 하다가 돌아오는 일을 계속 했다고 한다. 20대였던 당시부터 그의 뚝심과 바위에 대한 열정이 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본 취나드는 국내의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인수봉엔 클라이머가 몇 명 보이지 않았고 기존의 코스로만 등반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새로운 바윗길을 엄청나게 많이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도 했다. 휴전이 된지 10년 밖에 되지 않은 그 때 장비가 부족하여 취나드는 미국에서 로프와 카라비너와 같은 등반장비를 붙여 와서 당시로서는 초장거리 크랙길인 취나드a길을 개척했다.

취나드와 같이 바윗길을 개척한 선우중옥 씨는 그 후에 어떻게 되었을까? 이본 취나드는 의리 또한 깊은 사람이었다. 그는 1964년 주한미군에서 제대하고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 1971년 선우중옥 씨를 초대한다. 함께 일을 시작한 중옥 씨는 나중에 취나드 이큅먼트사의 공장장까지 역임을 하고 부인 선우영옥도 이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게 된다. 선우중옥 씨는 멀리 타국에서 온 바위꾼을 만나 인생이 바뀌게 된 셈이다. 그것도 멋지게.

등반 전부터 이본 취나드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나누던 등반팀은 인수봉 대슬랩에서 우측으로 돌아 인수 남동면의 취나드A, 벗길, 심우길로 진입하는 어프로치 등반을 한다. 짧은 어프로치 크랙 등반을 수월하게 끝내면 바로 그곳에서 인기 있는 세 개의 바윗길들과 만나게 된다. 왼쪽으로부터 벗길(5.10d), 취나드A(5.10b), 심우길(5.10a)이 그것이다.


개성 있는 세 개의 길들은 난이도로만 보았을 때 중상급인 벗길만 제외하면 웬만한 중급 클라이머라면가 선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럴까? 심우길 둘째 마디 트레버스 등반은 만만치 않은 힘과 밸런스가 필요하다. 벗길은 또 어떤가? 둘째 마디 작은 테라스를 넘어서는 구간은 벗길의 크럭스로 난이도가 5.10d가 나올 뿐 아니라 밸런스를 잡기가 쉽지 않다. 뿐만 아니라 추락시 발목골절 등의 사고가 우려되기 때문에 극도로 신중한 등반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불구하고 발빠른 클라이머들은 왕왕 아침 일찍 이곳에 도착해 세 바윗길의 크럭스 구간을 모두 등반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심우길이 오른쪽에서 그리고 벗길이 왼쪽에서 호위하듯 굵고 길다란 크랙을 차지하고 있는 취나드A는 어떨까? 취나드A는 전 루트가 크랙으로 이루어져있어 적지 않게 힘을 써야 하는 바윗길이다. 그래서 흔히 ‘노가다길’이라고 부른다. 노가다길이란 중노동을 하듯 힘든 등반을 해야 하기 때문에 붙여진 바윗길들을 자조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 선등을 맡은 함기철 대장은 "취나드A가 노가다길로 불리는 것은 취나드와 선우중옥님과 같은 개척자들에게 대단한 실례"라고 지적한다.

“노가다길을 정확하게 선을 그어서 설명하기는 좀 어렵습니다. 높은 등급의 슬랩과 페이스 등반은 힘이 들더라도 깔끔하게 등반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크랙등반의 경우 손끝에서 손목까지만, 발끝에서 발목까지만 이용하여 깔끔하게 오를 수 있는 코스는 힘이 많이 들어도 노가다길이 아닙니다"

함 대장은 또 "노가다길의 본래의 뜻은 최고등급의 클라이머라도 어쩔 수 없이 팔뚝, 어깨, 등 배, 허벅지, 무릎, 등을 써가며 올라야 하는 침니와 재밍을 할 수 없는 넓은 크랙들을 등반을 하고 나면 온몸에 흙먼지가 묻고 긁히기도 하고 옷도 상하고 바지에 구멍도 나고 땀범벅이 됩니다. 이 모습이 육체노동을 하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노가다길이라는 용어가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클라이머들은 힘이 많이 드는 코스는 노가다로 판단을 하는 것 같습니다”라고 지적한다. 

그의 말에 의하면  “취너드A 길은 크랙이 길고 넓은 크랙이 있어도 근지구력과 등반기술이 충분한 클라이머라면 깔끔하고 재미있게 즐기면서 등반을 마칠 수 있지만, 충분한 등급의 클라이머가 아닐 경우 등반도중 체력과 기술부족으로 자세가 흐트러지면 온몸을 다 써서 등반을 하게 되고 노가다길 등반을 완료했을 때와 같은 결과가 된다"며 "찌질찌질 올라가기보다는 손과 발을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가면서 경쾌하게 멋지고 박력 있게 오를 수 있는 멋진 취너드 길을 노가다길로 부르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말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기자와 함 대장과는 벌써 다섯 번째 등반을 기록하고 있다. 인수봉 건양길, 고독길, 인수B길을 함께 등반했다. 그와의 등반이 조금 특별한 이유는 바윗길들의 유래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고 20여 년 전 산악계의 풍경을 줄줄이 꿰고 있어 예전과 오늘의 등반을 바라볼 수 있는 스펙트럼이 생기기 때문이다.


20여 년 만에 처음 취나드A길을 등반한다는 함대장이 조금 걱정스럽기도 하다. 젊은 클라이머들의 힘도 쏙 빼놓는 것이 바로 취나드A길 선등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날은 귀바위 인공등반까지 약속된 상태였다.

20여년도 더 된 암벽화를 신은 함 대장이 전과 다름없이 굵은 슬링중에 프렌드, 트라이캠, 퀵드로우를 줄줄이 달고 신중하게 첫발을 뗀다. 약 3~4미터 지점에 캠을 설치하고 크랙을 따라 한발 한발 등반을 이어가는 함 대장. 그의 발걸음에는 오랜 세월에서 묻어나오는 신뢰감이 있다.

취나드A의 등반은 대개의 경우 첫째와 둘째, 셋째 마디까지를 이어서 등반한다. 예전에는 주로 40미터 자일로 등반했기 때문에 세 마디로 나누었던 것을 최근에는 대부분 60미터 자일을 사용하기 때문에 생겨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첫째 마디 등반을 50미터나 이어가게 된다. 난이도는 5.8에 불과하지만 중간중간에 만만치 않은 홀드들이 있기 때문에 모든 홀드들이 손에 익기 전에는 선등에 특히 신중을 기해야만 한다.

첫째와 둘째 마디에서 크랙을 뜯으며 바위를 마음껏 즐기다보면 편하게 앉아서 선등자의 등반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아늑한 확보지점이 나온다. 이 곳은 막힌 바위굴 모양을 하고 있어 확보줄을 풀고도 두 명 정도는 앉아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다시 넷째 마디가 시작된다. 바로 위로 오버행 크럭스가 나타난다. 이곳은 기본적으로 두 손 재밍을 하고 발재밍을 해야 일어설 수 있는 크럭스 구간이다.


과연 함기철 대장은 이곳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까? 20여년만의 선등이 부담스러웠을까? 한두 번 재밍에 실패한 함 대장은 결국 재빨리 발재밍을 하고 일어서는 데에 성공한다.

등반후에 그는 이렇게 이야기 한다. “취너드A 길 등반을 하면서 오래전의 추억을 생각하고 올랐습니다. 40m 자일을 사용할 때에는 마디구간을 선등자가 등반을 하면서 좋은 장소를 찾아서 확보물을 설치하고 빌레이를 보던 장소와 흔적을 찾아보았지만 거의 다 없어지고 변형이 되었네요. 크랙의 넓이가 많이 넓어지고 흔적도 없이 떨어져 나가고 상단의 레이백을 하던 날개부위는 조금 남아있었습니다”

20여년도 더 된 일인데 그는 어떻게 크랙의 넓이와 날개의 크기까지 고스란히 기억을 하고 있었을까? 그의 말에 의하면 “오버행 진입구간 크랙의 넓이가 벌어져서 주먹 재밍이 어렵게 변형이 많아졌으며 둘째 마디 크랙 넓이가 30년 전보다 많이 넓어져서 레이백 자세를 취하기가 힘들었다”고 하는데 그런 것을 보면 바윗길도 세월의 흐름에 따라 많은 변형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수 많은 등반자의 발길이 닿은 바윗길들은 더욱 미끄러워지고 그래서 난이도가 점차로 높아져가기도 한다.

오버행을 넘어선 함대장이 잠시 큰 숨을 몰아쉬고 넷째 마디 등반을 이어간다. 넷째 마디는 난이도로만 보면 5.10b에 불과(?)하지만 밸런스가 잘 나오지 않는 구간이 있어 등반이 쉽지 않다. 이 마디를 선등하려면 그야말로 손과 발을 이용한 재밍과 스태밍 등 크랙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등반 기술을 총동원해야만 한다.


인수봉에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정도로 힘든 크랙길인 취나드A 넷째 마디는 약 40미터의 거리. 그래서 '진땀크랙'이나 '똥크랙'이란 말까지 듣게 된다. 천금같은 볼트는 모두 3개가 박혀있다. 마지막 20미터의 수직 크랙 구간은 당연히 고정확보물 없이 등반하게 된다.

예전에 두 여성 클라이머가 “취나드A의 개념도만 보고 등반에 나섰다가 죽을 뻔하다가 겨우 살아났다”는 블로그 글을 본적이 있는데 암장운동 등급이 5.11이나 5.12급이라고 해도 쉽게 선등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바윗길인 것이다.

기자도 넷째 마디를 출발한다. 취나드A가 정말 '노가다'에 속하는 길인지 아니면 멋진 바위와 크랙의 자연스러운 선을 살려 만들어진 아름다운 바윗길인지는 몸으로 붙어보는 수밖에 없다. 

오버행 직전까지는 큰 무리가 없다. 오버행 왼쪽 위에 볼트가 하나 있다. 이곳에서 굳이 재밍이 아니더라도 레이백을 이용하면 오버행을 돌파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다. 넷째 마디의 크럭스는 오버행이 아니라 그때부터 펼쳐지는 장대한 크랙을 온몸으로 올라야 하는 것이다.

홀드도 제대로 없는 크랙길에서 힘들게 온몸을 움직여 등반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리 속을 스쳐 지나간다. “도대체 이 길을 어떻게 단번에 개척했단 말일까?” “함 대장은 어떻게 이 길을 선등했을까?” “어느 정도의 실력이 되면 이 길을 선등할 수 있을까?” 고정 볼트가 나오면 잠시 쉬며 긴호흡을 하면서 다소 힘겹게 등반을 하다보니 어느덧 고대하던 쌍볼트, 넷째 마디 확보점이 나타난다. 등반을 마치고 나니 그제서야 참 재미있는 크랙이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니 '인간이란 참으로 망각의 동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넷째 마디 등반을 마치고 귀바위 등반을 위해서 다시 다섯째 마디를 넘어간다. 확보점에서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돌아 어렵지 않은 크랙길을 올라가니 드디어 귀바위의 장관이 펼쳐진다. 그 어느 곳보다도 귀바위를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사방으로 펼쳐지는 전망도 시원하다. 오른쪽으로는 고독길이 왼쪽으로는 귀바위 테라스가 그리고 동쪽으로는 도봉산과 서울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펼쳐진다.

인공등반으로 오르는 귀바위는 등반도 등반이지만 장쾌한 하강과 더불어 아름다운 사진을 남길 수 있어 인기 있는 곳이다. 그러나 등반인원이 적지 않았던 탓에 등반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고 어느덧 저 멀리 땅거미가 몰려오고 있어 아쉽게 등반을 접어야만 했다. "오늘 등반을 하지 못했다 해서 귀바위가 어디로 갈 것은 아니"라고 자위하면서 가을하늘을 닮은 하늘을 만끽하며 하강을 서두른다. 힘들게 올랐던 홀드들과 오버행과 바위결들이 눈앞에 다시 펼쳐진다. 전망은 아름답고 마음은 행복하다.

이본 취나드의 마음은 어땠을까? 젊은 시절 바로 이 바윗길을 등반하던 이본 취나드는 멋진 모습을 드러낸 귀바위와 저 멀리 아득하게 펼쳐져 있는 마루금 그리고 도심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혹시라도 보일러에 불이 꺼져서 상관에게 혼이 나면 어떻게 할까 초조했을까?

아니다. 적어도 그의 머리 속에는, 클린 크라이밍을 주창하고 누구보다도 앞서 환경운동을 주창한 그는 이 아름다운 바위와 바윗길이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을 것이다.

이본 취나드는 취나드A와 취나드B길에 자신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고 한다. 바윗길의 이름은 첫 선등자가 붙이게 되어 있지만 이본 취나드는 등반으로 만족했을 뿐 그 이름은 훗날 이 길을 등반하던 이 땅의 사람들에 의해서, 웅장하고 멋진 등반선을 그려내며 길을 낸 벽안의 외국인을 기리는 마음으로 취나드길이라 이름 붙여졌던 것이다. 취나드A와 취나드B라는 이름으로, 인수봉에 그리고 이 땅에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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