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윗길을 가다(44) 인수봉 환상길 / "마흔 여덟 노총각, 그의 가슴은 떨리고 있었네"

입력 2014-09-25 16:26   수정 2014-09-25 16:26


[김성률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10월의 셋째 주 일요일. 인수봉으로 올라가는 도선사 버스주차장에는 올해 들어 가장 많은 등산객들이 몰린 듯 했다. 서울 뿐 아니라 지방의 산악회에서도 적지 않은 인원의 등산객들이 찾아와 하루재 올라가는 길은 자못 병목현상을 빚기도 했다.

전날 오후에 일기예보에도 없는 비가 내려서인지 길은 촉촉한데다가, 노랗고 붉은 단풍은 무르익어 북한산은 가을산의 정취를 마음껏 뽐내고 있었다. 북한산의 단풍 또한 여느 산에 못지않을 만큼 빼어나다는 생각을 해본다. 마치 “설악의 단풍만 단풍이냐 나도 단풍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같다. 하루재 넘어서 인수봉을 멀리 바라다보니 안개가 끼어서인지 더욱 운치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오랜만에 시간이 맞은 조장래 클라이머와 등반을 하게 되었다. 조 대장은 등반을 시작한지 5년 정도에 불과하지만 5.11급의 등반을 거뜬하게 해내는 실력 있는 클라이머다. 그가 등반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자면 호리호리한 몸매에 어떻게 그런 힘이 나오는지 불가사의 할 정도다.

그가 특히 자신 있는 분야는 슬랩과 페이스 등반이다. 본인의 말로는 “별다른 암장운동을 하지 않는다”는데도 불구하고 인수봉에서도 가장 어려운 축에 든다는 빌라길을 온사이트로 선등하는 것을 보면 그는 타고난 클라이머가 아닐 수 없다. 그는 한 마리로 "겁이 없는 클라이머"다. 조 대장은 불혹을 훨씬 넘긴 40후반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솔로를 고수하고 있다.

이날 등반하기로 한 바윗길은 환상길이다. 사실 이 길은 조 대장과 지난 8월26일에도 등반을 했지만 크럭스 구간을 모두 통과한 넷째 마디 완료지점에서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아쉽게 완등을 하지 못한 바 있다. 이 날은 작정하고 환상길을 완등하기로 했다.


환상길은 인수봉 동면, 오아시스 등반로에서 출발한다. 동면에는 크랙을 따라 오아시스로 등반하는 바윗길과 밴드를 타고 오르는 바윗길이 있는데. 이 길들은 비교적 등반이 쉽고 안전하기 때문에 항상 붐비는 코스다. 환상길 첫째 마디는 바로 동면 크랙으로 오아시스로 오르는 길 바로 오른쪽에 위치한 슬랩길이다.

환상길은 전혀 새로운 바윗길을 개척한 것이 아니라 기존에 확보되어 있는 볼트와 확보점을 사용한 바윗길이다. 양지길의 둘째 마디, 셋째 마디와 벗길 다섯째 마디는 환상길과 중복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 길을 명명하고 처음 등반한 등반자는 분명히 따로 있을 것이다. 이번 기사를 계기로 환상길 명명자나 최초로 등반했던 분들의 제보(kimgmp@bntnews.co.kr)를 기다려 본다.

취재팀이 첫째 마디를 출발하는데 뒤에서 등반을 기다리던 선등자가 “환상길로 등반하느냐?”고 묻는다. “어떻게 환상길로 가는 줄 아느냐?”고 반문하니 바로 우리가 가는 길이 환상길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취재팀은 오아시스 소나무가 환상길 첫째 마디 출발지점인줄 알고 있었다.

환상길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이 등반자는 ‘영클라이밍’ 소속의 윤영중 클라이머였다. 영클라이밍은 인원이 16명 정도 되는 소규모의 등반모임이라고 한다. 그러나 등반에는 가장 적절한 규모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환상길 첫째 마디가 끝나는 지점은 대개의 경우 그대로 지나쳐 직상으로 오아시스로 향한다. 그러나 환상길 둘째마디는 이곳에서 뚜렷한 볼트를 타고 둘째 마디로 이어진다. 이것만 보더라도 환상길의 첫째 마디는 인수 동면 슬랩 오아시스 접근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마디의 슬랩 난이도는 5.7정도로 잡을 수 있겠다. 둘째 마디에서는 자못 슬랩의 강도가 더해진다. 바위가 가파르게 서면서 한발 한발 떼기가 부담스러워 진다.

셋째 마디는 환상길의 크럭스이자 슬랩 5.11a의 난이도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구간이다. 출발지점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의대길 둘째 마디 부근부터 바위의 경사가 심해지면서 한발 떼기가 어려운 상황이 곧 다가온다. 새 암벽화가 슬립을 한번 먹고 어렵게 등반을 하면서 ‘역시 선등자란 대단한 존재’라는 것을 실감한다. 선등자의 부담이 크게 느껴지는 구간이다. 슬랩 구간을 모두 통과하면 왼쪽 위의 홀드를 잡아당기며 일어나서 오른손으로 머리 위로 튀어나온 날개를 붙잡고 등반을 완료한다. 

환상길은 고난도의 슬랩과 크랙, 인공등반이 혼합되어 있는 재미있는 바윗길이다. 특히 넷째 마디 확보점에서 취나드b 크랙을 넘어가는 과정이 무척 긴장되고 어려우면서도 재미가 넘쳐난다. 밴드는 아주 좁고 짧은데다가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홀드는 전혀 없다. 발이 미끄러지면 그대로 몇 미터를 추락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긴장을 해야만 한다. 그래서 크랙을 넘어간 다음의 성취도 또한 크다.

넷째 마디는 크랙에 이어지는 인공등반 구간이다. 긴장감은 넷째 마디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넷째 마디는 거리가 멀지 않지만 집중력과 힘이 필요한 구간이다.


확보점 위의 좌향 사선크랙을 잡고 일어선 다음 캠을 하나 설치하고 크랙을 밟고 일어 난다. 다음에 사선크랙을 왼손으로 잡고 왼발로는 크랙을 밀고 서면서 첫 볼트에 퀵드로우를 걸면 일단 안심이다. 첫 볼트는 선등자에게 심리적인 안도감을 준다.

이제 크랙 위의 발디딤 포인트에 왼발과 오른발을 나란히 올리고 다시 오른발을 떼면서 두 번째 볼트에 퀵 드로우를 건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조심스럽게 이동을 하면서 작은 피라미드 같은 형태의 바위 아래쪽, 역시 좌향 사선 크랙을 조심스럽게 잡아야 한다.  크랙을 잡고 레이백으로 뜯으며 왼쪽으로 몸을 움직여 가면서 피라미드 왼쪽 아래의 볼트에 다시 퀵드로우를 건 다음 왼발로 바닥을 지지하고 다음 볼트에 퀵을 걸고 마지막에는 인공등반으로 마무리 한다.

실제로 넷째 마디에서는 셋째 마디보다도 더 큰 힘을 필요로 한다. 셋째 마디가 고난도의 슬랩으로 선등에 부담을 주는 구간이라면 넷째 마디는 정확성과 밸런스 그리고 힘을 필요로 한다.

취재팀이 넷째 마디 등반을 마치니 다음 등반팀인 영클라이밍 윤영중 클라이머의 등반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역시 선등자가 온 정신을 집중하여 한 볼트 한 볼트에 신중하게 확보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선등자의 신경을 거슬리지 않게 조용히 셔터를 눌러본다.


넷째 마디의 확보점은 의대길 셋째 마디 확보점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오른쪽 취나드b길 방향의 위쪽을 잘 살펴보면 그곳에 환상길 넷째 마디의 확보점이 있다. 지난번 환상길 온사이트 등반시에는 이 확보점을 찾지 못하고 그대로 의대길로 등반하는 바람에 완등을 하지 못한 것이었다.

드디어 문제(?)의 환상길 다섯째 마디가 시작됐다. 조장래 대장이 등반을 시작한다. 앞서도 말한 바와 같이 발에 걸리는 작은 밴드를 따라 가능한 최대로 취나드b 크랙길에 접근한 다음 오른발을 떼어서 건너편 바위로 넘어가야 한다.

선등자는 선등자대로 후등자는 후등자대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 추락을 하게 되면 떨어지는 거리가 제법 몇 미터는 될 것 같다. 결국 세 명의 등반자중 말번인 기자의 차례가 돌아왔다. 일단 손으로 잡을 수 있는 홀드는 전혀 없는데다가 발 끝에만 의지해서 양발을 조금씩 움직여 이동해야 하는데 이 동작이 마치 허공을 걷는 듯 확신을 갖기 어렵다.

기자는 아무 생각 없이 밴드를 넘어서려다가 그만 오금이 저려 후퇴를 하고야 만다. 헛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5.10b까지 선등을 섰는데 이게 뭐람. 그러나 안넘어가려야 안넘어 갈 수가 없다. 밴드를 따라 아주 조금씩 크랙으로 이동하다가 마지막 부분에서 과감하게 오른발을 던져 건너편 크랙에 안착할 수 있었다. 낭떠러지 건너편에 오른발이 닿으면 그때부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든 바윗길이 다 그렇지만 긴장감이 크면 클수록, 난이도가 높을수록 등반후에 남는 보람과 성취도는 크다. 환상길 다섯째 마디 또한 그렇다. 이 구간의 난이도는 5.7정도에 불과하다지만 고도감이라던가 체감으로 느끼는 난이도로 치자면 5.9나 5.10a를 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다섯째 마디 확보점에 서면 이제 어려운 구간은 모두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여섯째 마디는 벗길 다섯째 마디와 같다. 따라서 난이도는 5.7의 슬랩길이다. 이제 정상으로 오르고 싶다면 귀바위 테라스로 진출해서 귀바위를 등반한 후 하강하여 영자크랙을 통해 정상에 오르면 될 것이다. 환상길 등반을 통해 다양한 바위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꼈다면 의대길로, 의대길이 붐빈다면 인수a로 하강하면 될 일이다.

귀바위 테라스에서 바라본 북한산과 도봉산은 단풍의 파도와도 같았다. 산등성이마다 울긋불긋한 가을이 곱게 낼 앉았다. 긴 겨울을 보내고 등반이 시작되던 4월에 시린 손을 불어가며 조심스럽게 아미동길을 오르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어느 때보다도 무덥던 계절도 지나가고 어느덧 암벽등반도 올 시즌을 마무리 할 때가 다가온 것 같다.

누군가가 말했다. “가장 등반을 잘하는 사람은 다치지 않고 오랫동안 등반을 하는 사람이다” 물론 안전을 중요시한 말이지만 이말 또한 크게 잘못되지 않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고난도의 등반을 한다 하더라도 무리한 등반으로 사고를 부르고 다시 부상으로 이어진다면 클라이머 본인이나 가족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에게 그만큼 가슴 아픈 일이 어디 있겠는가. 기자도 나이를 먹어가는 탓인지, 부상을 당하는 사고를 겪어서인지 더러 바위가 두렵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유와 도전과 모험을 사랑하는 이 땅의 클라이머들이여. 뜨거운 열정으로 등반을 사랑하되 '안전'이라는 두 글자 결코 잊지 않기를, 올 한해를 안전한 등반으로 마무리하기를 진심으로 빌어마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로 당신이 가는 그 바윗길이 환상길이 아니겠는가.

마흔 여덟, 노총각의 가슴을 떨리게 한 환상길 등반. 수확의 계절,  그에게도 가슴 떨리는 사랑이 시작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담아 보낸다.

한경닷컴 bnt뉴스 기사제보 kimgmp@bn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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