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LPG 엔진 강국이 LPG를 외면한다고?

입력 2013-08-07 08:00  


 이탈리아 밀라노 외곽의 '오토가스' 충전소. 50년이 지난 충전소의 모습은 허름하다. 그러나 쉴 새 없이 들어오는 자동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제각각 이상한 물건을 하나씩 들고 나온다. 이른바 충전 아답터다. LPG로 개조하는 회사마다 연료 주입구가 달라 충전을 위해선 아답터가 필수다. 서비스 차원에서 충전소에서 비치하지만 없는 것도 허다하다. 아답터 없으면 값 비싼 휘발유를 사용해야 한다. 유럽도 LPG 의존도가 그만큼 높다는 이야기다.






 독일 LPG협회(DVFG) 기술담당 클라우스 루트하드 피리쉬 이사를 만난 곳은 베를린이다. 독일 정부가 오는 2018년까지 액화석유가스(LPG) 및 압축천연가스(LNG) 보급을 위해 유류세를 면제하면서 요즘 독일 내 LPG 충전소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현재 속도라면 2018년까지 유럽 전역에 3만개의 오토가스 충전소가 구축된다. 이를 통해 유럽연합 내 LPG와 압축천연가스(CNG) 등의 오토가스(Autogas)차 비중이 10%를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고압이 필요한 압축천연가스보다 4기압 정도에 불과한 LPG 비중이 크겠지만 아무튼 유럽이 LPG를 쓴다는 게 우리에게는 생소할지 모른다.

 하지만 유럽 내 LPG 역사는 꽤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오른다. 대표적인 나라가 이탈리아와 폴란드다. 2차 대전 후 가정용 에너지 수요 외에 수송용 서민 연료로 LPG를 사용했다. 원유를 정제하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만들어지고, 가뜩이나 에너지가 모자란 마당에 그냥 버리기도 쉽지 않아서다. 물론 비슷한 이유로 한국도 수송용 LPG 산업이 활발하다.

 그런데 이태리와 폴란드는 그렇다 해도 줄곧 휘발유와 경유만 고집했던 독일의 LPG 사용은 목적이 조금 다르다. 이른바 연료 다변화 차원이다. 독일 내 6,000여개에 달하는 충전소를 통해 오토가스를 공급, 소비자의 연료 선택권을 보장한다는 점이다.






 연료 선택권이란 말 그대로 자동차 보유자가 스스로 연료를 선택하되 다양한 연료가 서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휘발유, 경유, 오토가스 등이 가격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세율을 조정하고, 소비자는 경제적 여건과 취향에 따라 연료를 고르면 된다. 어느 한 가지 연료의 집중 사용에 따른 부작용을 막자는 취지다. 예를 들어 휘발유 가격이 폭등할 경우 LPG가 대안이 되고, 경유 가격의 거침없는 상승이 이어져도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액체연료의 공급 부족이 생겼을 때 액화된 가스연료를 에너지 대안으로 삼자는 게 연료선택제의 근간이다. 피리쉬 이사는 "현재 독일 내 LPG차가 50만대 정도이고, 충전소는 6,200개에 달한다"고 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LPG차 사용에 아무 어려움이 없다"고도 말한다 이어 "독일 정부가 2018년까지 LPG 연료에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며 "이 경우 이태리와 폴란드, 네덜란드 등 유럽연합 전체에서 2-3%에 불과한 LPG차 비중은 10%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유럽 내에서 LPG 충전소 숫자는 의외로 많다. AEGPL에 따르면 LPG 충전소는 독일 6,200곳을 비롯해 폴란드 5,900곳, 이태리 2,780곳 등이다. 그러나 LPG 사용 국가가 점차 증가하는 중이어서 올해 유럽 대륙 전체에서 LPG 충전소는 2만여 곳으로 확대됐다는 게 DVFG의 설명이다. DVFG 기술지원담당 알렉산더 슈테르 매니저는 "유럽 LPG차는 휘발유 겸용이 대부분"이라며 "자동차회사가 LPG 겸용으로 개조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시스템"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사실 LPG를 꼽자면 글로벌 시장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 경쟁력을 가진 곳이 바로 한국이다. 액화분사방식(LPLi)도 모자라 액화직접분사방식(LPDi) 엔진의 경쟁력은 독일을 능가하는 수준이다. 심지어 경유에 LPG를 섞어 연소시키는 혼소 시스템도 개발해 놨다. 그러나 정작 한국의 LPG 기술은 유럽에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LPG차 시장 규모가 한국에서 만들어 공급하기에 크지 않다는 판단에서다. 현지에서 소비자가 휘발유와 LPG 겸용차를 사겠다고 하면 휘발유 완성차를 LPG 개조회사에 별도로 보내 시스템을 구축한 뒤 소비자에게 건네준다. 한국의 수많은 LPG 개조업체가 있지만 정작 한국 메이커와의 공조는 전혀 없다.

 적게는 수 십 곳, 많게는 100여개가 넘는 한국의 LPG 개조업체를 왜 유럽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것일까? 기술이 부족해서? 아니면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이유는 다양하지만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두 가지를 꼽는다. 먼저 유럽 시장에서 LPG 사용이 증가한다는 점을 잘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 LPG 관련 단체 또는 사업체에게 유럽은 곧 경유 시장으로 인식돼 왔다. 따라서 독일이 LPG를 사용한다고 얘기하면 그저 놀랄 따름이다. 이런 이유로 애초부터 유럽 시장에 적극 진출하려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설령 의지가 있다 해도 사업자 규모가 대부분 영세한 것은 해결 과제로 꼽힌다. 유럽에서 개조사업에 나서려면 TÜV 등을 거쳐 품질인증을 받아야 한다. 인증 과정에 필요한 것은 기술 뿐 아니라 비용이다. 그런데 기술은 최고지만 비용은 그리 만만치 않다. 한국 내 LPG 개조 사업이 한계에 도달했다고 판단, 서둘러 유럽 진출을 노린 곳이 있지만 아직 성업 중이라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두 번째는 개조 방식이다. 유럽은 휘발유차를 100% LPG로 개조하는 모노 퓨얼(Mono Fuel)을 선호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충전망이 잘 구축돼 있어 굳이 휘발유와 LPG를 겸용하는 바이 퓨얼(Bi-Fuel)이 필요 없다. 이태리나 폴란드, 독일 안에서라면 LPG만으로도 운행이 가능하지만 유럽 전역을 자동차로 넘나드는 생활이 보편화 된 곳에서 바이 퓨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과거 2—3년 전 국내 LPG 개조 부품 회사들이 비용 부담을 극복하고, 독일 시장 진출을 노렸지만 실패한 이유도 모든 부품이 모노 퓨얼 방식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기아차가 모닝과 레이에 휘발유 및 LPG 겸용 차종인 바이 퓨얼을 적용한 것도 사실은 한국보다 유럽 수출 시장을 염두에 둔 제품전략이다.

 그런데 가스 연료가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른바 메탄이 주성분인 셰일가스다. 정부에서도 셰일가스의 도입량을 향후 대대적으로 늘릴 태세다. 비용 면에서 경제성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100년간 지속됐던 휘발유와 경유의 대체 연료가 등장한 셈이다. 게다가 LPG와 셰일가스의 엔진연소 방식이 동일하다는 점은 경쟁력이다. 나아가 전국적인 가스 충전망이 갖춰진 점도 셰일가스의 활용도를 높일 수 있는 인프라로 꼽힌다. 

 그러자면 지금처럼 정부가 연료선택권을 제한해선 곤란하다. 휘발유와 경유, LPG 등 모든 수송연료를 소비자가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LPG 등 오토가스 충전소와 휘발유 및 경유를 넣는 주유소를 분리할 필요도 없다. 실제 유럽은 충전소와 주유소의 구분이 없다. 운행되는 자동차는 모두 한 곳을 이용한다. 반면 한국은 따로 국밥이다. 밥그릇 싸움이지만 결과는 소비자 불편이다. 주유소와 충전소의 밥그릇 싸움은 이해하지만 자동차 보유대수를 감안할 때 주유소와 충전소가 많다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유사와 LPG 공급사가 으르렁대며 서로 견제할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수송 에너지 근간을 바꿀 수 있을 지 의견을 모아야 할 때다. 정부가 100년 앞을 내다 본 에너지 정책을 뿌리부터 바꿔야 할 시점이라는 얘기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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