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희, 세상을 바꾼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를 노래하다

입력 2013-08-22 09:16  


[이슬기 기자/사진 정영란 기자] “제가 감히 어떻게 그 분의 어머니 역할을 거절하겠어요” 윤복희의 한 마디에는 이번 작품에 대한 애착과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사랑해, 톤즈’의 초연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8월의 어느 오후, 윤복희는 소박한 한 벌의 치마와 저고리를 손수 챙겨 스튜디오로 들어섰다.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그대로 치마를 꿰어 입기 시작한 그의 모습은 우리네 어머니 같기도 했고, 장난기 많은 소녀 같기도 했다.

“하루 종일 같이 있다가 떨어지니까 기분이 이상하네요”. 카메라 앞에 서기 전, 윤복희는 문득 그런 말을 던졌다. 연습실에 남아있을 후배들이 생각난 모양이었다. 그들을 되짚는 듯 반짝거리는 눈동자는 한 순간 스튜디오를 떠나갈 듯 멀어졌다 돌아왔다. “귀중한 하루예요”.

진한 존재감은 물 흐르듯 흘러 카메라 바깥까지 넘쳐났다. 특히나 사진을 찍을 때 멋있고 예쁜 표정을 짓는 것이 싫다는 그는 나름의 다양한 ‘엄마’를 만들어 보였다. “이런 사진은 나가면 안 되는데. 그냥 개인적으로 받을 수 있을까요?” 스스로가 그렇게 물어올 만큼, 윤복희의 ‘어머니’는 무척이나 매력적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완벽하게 모든 것을 행하신 그 분, 이태석 신부


“만나 뵌 적은 없어요. 그렇지만 이야기는 정말 많이 들었어요. 듣기도 하고 알기도 하고” 이태석 신부의 이야기가 나오자 윤복희는 신중하게 단어를 골랐다. “주님이 원하신 모든 걸 행한 분이에요. 누구보다 가난하고 도움이 필요한 이웃에게 간다는 것 자체가 보통 사람들은 생각하기 힘들잖아요. 그것도 톤스까지”

“이태석이라는 한 사람의 신부로서가 아니라 교사로서, 의사로서, 목수로서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내어주셨죠. 배우지 못한 사람에게는 가르침을, 아픈 사람들에게는 치료를. 농사까지 지으셨더라고요. 그 모든 것을 행하셨음에도 화내는 얼굴도 목소리도 본 사람이 없어요. 그렇게 아프셨던 상황에서도요. 마치 살아계신 예수님 자체를 본 것 같아요” 윤복희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그리움이 묻어났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을 지라도 뜻을 같이 하는 의지는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 분의 어머니를 연기 했으면 좋겠다고 연락이 왔을 때 계약사항 같은 것들은 하나도 읽지 않았어요. 그냥 무조건 하겠다고 했어요. 그런 분의 어머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굉장히 영광이었고, 또 이 작품을 통해 이태석 신부님의 의지를 잇고자하는 뜻도 있었거든요”

“이태석 신부님께서 하고자 했고, 걸어가셨던 그것들이 이 작품으로 하여금 계속 실천되고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분이 톤스에서 하셨던 모든 것들,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가르치고, 사랑하고, 마음으로 안아주는 것까지도. 그 모든 것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이 작품이었으면 해요. 저에게 ‘사랑해, 톤즈’는 단지 좋은 뮤지컬로 올려지는 데는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런 것들이 없다면요”

이태석 신부는 하지 못했던, 딴따라 윤복희이기에 가능한 것


“저는 성령을 받았어요.” 뮤지컬을 시작한 계기를 묻자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 돌아왔다. “하느님이 들어 쓰시는 도구 같은 거죠. 아니면 제가 왜 한국에 들어왔겠어요? 단순히 뮤지컬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라면 거기서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잖아요. 저는 미국에 자리를 잡고 사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게 벌써 36년 전인데, 그 때는 한국 사람들이 뮤지컬의 ‘뮤’자도 잘 모를 때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 한국에 들어와서 뮤지컬을 하고 연기를 가르쳤어요. 1년에 4작품씩 무보수로 꼬박꼬박” 1977년 ‘빠담 빠담 빠담’ 이후 윤복희가 출연한 작품이 ‘피터 팬’,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등 80여 편의 작품에 이른다. 그야말로 뮤지컬계의 대모라 해도 부족함이 없다.

“한번도 ‘왜’라는 질문은 해보지 않았어요. 주님이 하시는 것에 비하면 아주 작은 거잖아요. 나라는, 윤복희라는 한 조각을 들어 쓰시는 것은. 이태석 신부님의 경우는 정말 굉장한 것을 하신 거고요” 윤복희는 스스로가 일궈온 일을 겸손하게 묻었다. “물론 이 신부님도 제 것을 하지는 못하셨겠죠. 파트가 다르니까요”

“제가 뮤지컬을 하는 건 주님께서 저라는 탤런트를 사용하고자 하시기 때문이에요. 저는 도구로서 쓰임을 받는 것을 생명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그렇기에 맡은 바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태석 신부님이 더 깊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 분도 성령에 의해서 모든 것을 하셨거든요. 한 번도 실제로 만나보지는 못했지만, 알아요.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이태석 신부의 어머니, 윤복희


윤복희는 이태석 신부는 물론, 그의 어머니도 직접 만나보지 못했다. “제 나름대로 해석해서 풀어가고 있어요. 그러니까 정말은 이 신부님의 어머니가 가지고 계신 것과 다를지도 모르죠. 하지만 저는 충분히 그 감정을, 입장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사와 노래를 새롭게 만든 것도 이런 이유고요”

“이태석 신부님의 어머니는 열 남매를 바느질로 키우셨어요. 정말 보통 분이 아니시죠. 그렇게 고생을 하셨으니 안 아픈 손가락이 없으실 테지만 특히 이 신부님에게 기대를 많이 하셨다고 해요. 더군다나 의사가 될 아들이었으니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를 낳고 평범하게 살길 바라셨겠죠. 그런데 그게 뒤집어지니까 얼마나 속상하셨겠어요?”

“대사 중에 왜 하필 우리 태석이를 내놓으라 하시냐고 원망을 하는 부분이 있어요. 열 명 중에 첫째도 둘째도 신부로, 또 수녀로 데려가셨으면서 왜 태석이까지 데려가느냐고요. 그저 평범하게 살았으면 하는 건 제 욕심입니까, 하는데. 이 신부님이 돌아가실 때는 전혀 다른 기도를 해요. 제발 태석이를 톤즈로 보내달라고. 만약에 생명을 거두어 가시려면 저를 데려가시고 태석이는 톤즈로 보내달라고”

어느새 촉촉이 젖어든 눈동자로 윤복희는 말을 이었다. “그 때 성모마리아님께 물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려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의 입장에서 어떠셨냐고.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내 배가 아파서 낳은 아들이 눈앞에서 죽는 걸 보셨잖아요. 나도 지금 아들이 죽어 가는데 어떠셨습니까, 하고 저도 모르게 물으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려 돌아가셨으니 그걸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요. 그래서 그 부분이 많이 수정됐어요.”

사랑해 톤즈, 그리고 윤복희


처음 작곡을 해 달라는 말을 듣고 곡을 봤을 때 이건 아니다 싶었다. “한 번도 주님한테 ‘너무합니다’라는 말은 해본 적 없어요. 이렇게 오랜 시간 뮤지컬을 해 왔지만 그것에 대해서도 ‘왜죠’라고 물어본 적이 없는걸요. 이런 가사라면 곡을 만들지 못하겠다고 했어요. 그런데 만들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서 그냥 기타를 잡고 쓰게 됐죠”

“그러니까 또 쉽게 만들어지더라고요. 엄마의 입장이 되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구나. 예수님이 돌아가신 이유가 나같이 바보스러운 사람들을 위해서였구나 하니까 잘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말이 자연히 나왔어요. 그렇게 바꾼 부분이 많아요. 가사도, 노래도요. 신부님들이 항의하실 줄 알았는데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바꿔달라고. 그것만.” 윤복희는 모든 공을 하느님에게로 돌렸다. 모든 말씀은 하느님이 다 주셨다는 것이다.

“한 작품에 임하게 되면 그 안으로 파고들면서 제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에는 한계가 있거든요. 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대사도, 음악도. 모든 것들을 내가 만들어야 하는데 거기에 필요한 소스를 주님께서 다 주세요. 그러니까 힘들지 않고 쉽죠. 모든 게 다 있어요. 저는 그냥 그분의 도구일 뿐이기 때문에 아멘하고 순종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큰 체험이죠”

“재미있는 이야기 해줄까요?” 장난기 어린 눈을 한 윤복희가 운을 뗐다. “오늘 사진 콘셉트를 1시간 전에 들었어요. 공연 콘셉트라는데 그럼 내가 생각하기에는 치마저고리가 필요하거든요. 근데 의상을 준비 안 했대. 그래서 옷장을 찾아서 막 뒤졌어요. 그러니까 한 십 년 전에 누가 손으로 만들어준 치마저고리가 나온 거 있죠. 그걸 다리면서 주여, 하고 계속 기도했어요. 요만한 것 하나도 힘든 게 없잖아요. 정말 오늘 처음 입어봤거든”

시종일관 감사하고, 또 기쁘게 생각하는 윤복희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를 부탁했다. “걱정하는 건 달리 없어요. 준비한 것들을 무대에서 보일 때 그게 객석에 전해질까 하는 건데” 잠시 말을 고르던 그는 이내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전해질 거예요”
(메이크업&헤어/ 박호준헤어청담 나미에 원장, 테오 부원장, 이초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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