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한옌 기자] 이재광, 국내에서 가장 크고 선진화된 패션기업 제일모직을 7년 동안 다녔던 그와 인터뷰 약속이 확정된 이후 필자는 인터뷰 날에 어떤 복장을 하고 가야 하는지부터 고민했었다. 화려한 옷을 찾기 위하여 옷장을 다 뒤졌지만 결국 고르지 못하고 평소 그대로 나갔다.
하지만 인터뷰 당일 밝은 톤의 양복에 블랙 터틀넥 니트, 바지 밑단을 살짝 접은 후 아디다스 운동화를 신고 온 그를 보고 패션에 대하여 그가 한말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패션이란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빠르게 표현할 수 있는 무언의 도구”라며 “유행을 가장 타지 않는 패션은 옷장 안에 여러 종류의 옷이 즐비한 것보다는 가장 편하게 즐겨 입는 수수한 듯한 옷차림이 패션이다.”라고 말하였다.
▷▶ 이재광, 패션업계의 팔방미인
현재 프리랜서 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이재광 씨의 경력은 아주 다양했었다. 전 제일 모직 PA(Product Allocator), 전 로가디스 MD (상품기획자), 대학 강사, 스타일리스트 등. 스타일리스트로서는 최근에 삼성전자에서 갤럭시 노트 3과 갤럭시기어를 출시할 때 프리젠터가 입었던 옷을 스타일링 했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대학교에 출강을 나가서 강사로서의 능력을 발휘한 적이 있었다.
이렇듯 패션업계에서 7년을 넘게 인정받으며 일하는 그에게 숨겨진 비밀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그가 패션학과 아닌 경영학과 출신이라는 것이었다. "전공은 경영인데 왜 패션 업계에 들어가셨어요?" 라고 묻자 이재광 씨는 웃으면서 “지방(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대학교를 오면서 옷을 잘 입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며 “대학 시절에는 힙합 문화가 한국에서 유행하면서, 자연스럽게 힙합 음악과 힙합패션에 대해 심취하게 되었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번화가에 있는 패션샵에 들러 둘러보는 것이 취미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학교에서 전공하고 있는 분야와 관심사 - 패션을 접목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던 중 패션MD(Merchandiser)라는 직업이 있음을 알게 되었고, 그 직업으로 일할 수 있게 다양한 자격증(샵마스터, 유통관리사, 브랜드관리사 등) 및 관련 교육(컬러리스트)도 받으면서 준비를 했었다”고 설명했다.
▷▶ 나는 남들과는 다르게 취미로 돈을 번다
에스콰이어, 아레나, 멘즈헬스 등 매거진에 다양한 주제로 인터뷰 경험을 했던 이재광 씨가 이번 인터뷰 역시 너무도 능속하고 차분하게 응해주었다. 하지만 그 많은 인터뷰 중에서 취미가 무엇인지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하며 필자의 ‘취미가 뭐냐'는 질문에 이재광 씨는 살짝 놀라며 "취미는 패션이고, 옷을 사는 것 보다 보는 것을 더 즐긴다."라고 밝혔다. "옛날에 취미생활을 말하면 영화보기, 스포츠 등이었지만 이제는 패션이라는 것도 취미 중의 하나로 자리를 잡은 것 같다."고 설명을 이어갔다.
취미가 패션이라고 하는 이재광 씨는 제일모직에서 보냈던 7년 동안에 남과는 다르게 다양한 경력을 쌓았다. 2007년도 입사할 때에 PA(Product Allocator)라는 기본적인 업무부터 시작하여 지역별 고객이 선호하는 제품이 무엇인지, 상권 특징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입사 1년 만에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남성복 브랜드 중 하나인 로가디스에서 MD의 직책을 맡았다. ‘대중들한테 MD라는 직업이 생소한 직업이 아니지만 정확히 어떤 일을 하는 직업이냐’는 질문에 이재광 씨는 “브랜드에서 다루는 모든 아이템을 담당해보면서, 다가올 트렌드는 무엇이며, 어떤 디자인을 지닌 상품을 어디서 얼마나 생산하여, 어느 매장에 공급해야 될 지, 마케팅과 광고는 어느 정도의 예산을 가지고 어떤 방식으로 집행해야 할지 등 패션브랜드의 총체적인 살림살이를 맡는 업무입니다.”라고 하며 이어서 “그래서 흔히들 MD가 Merchandiser의 약자가 아닌 '뭐든지(M) 다한다(D) '의 약자라고들 우스갯소리로 하곤 한다.”고 얘기하면서 웃었다.
6년 동안 MD로서 일하면서 이재광 씨는 10여 개 기업에서 스타일링 클래스를 진행하였고, 로가디스 공식 블로그인 'MEET Jack' 블로그를 운영하고, 회사의 추천으로 온라인 강의 업체에서 'Business Men's Style'이라는 주제로 11회에 달하는 강의도 제작하여 크레듀와 몇몇 온라인 강의 사이트에서 판매하고 있다.
이렇듯 화려해 보이는 MD 생활이지만 힘든 일도 많았다. 2011년에 이재광 씨는 한국 남성복 브랜드 최초로 로가디스가 20~30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팝업 스토어 형식의 '모노 플러스'이라는 컬렉션의 런칭 MD를 맡았었다. 상품 구성부터 매장 배치까지 모든 과정을 인원 부족 문제로 인하여 이재광 씨 혼자서 2~3개월 동안 하루도 쉬지 못하고 준비를 했었다. 이에 대해서 이재광 씨는 “사실 모노 플러스를 준비하는 과정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직접 준비한 것들이 눈앞에서 실현되고, 매스컴의 관심도 받고, 소비자들이 구매를 하는 것을 보면 힘든 것은 눈 녹듯이 사라졌던 것 같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 끝없이 도전하는 남자
2013년 1월, 7년간의 MD 경험을 바탕으로 이재광 씨는 SCM(Supply Chain Management) 부서의 스카우트 제안을 받고 팀을 옮겼다. 디자이너는 대체로 멋지고 예쁜 옷들을 소비자에게 보여주려는 경향이 강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이러한 옷들의 수익이 잘 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재광 씨는 디자인부터 생산까지의 여러 단계 중에서 비효율이 발생하는 부분들을 찾아서 생산시간 단축 및 원가절감 작업을 하는 부서에서 일하게 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았을 때 그 시절은 이재광 씨의 전성기라고 볼 수도 있었지만, 그는 그 시점에 미련 없이 직장에서 떠났다.
“SCM 부서에서 일하면서 아직 한국에서 디자인이라는 분야는 비효율과 고비용을 초래하는 심미적인 분야라는 인식이 강한 것 같고 SCM부서와 디자인부서는 정말 극과 극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느꼈다.”고 밝혔다.
“실제로 MD로 일하다 보면 분명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새롭고 멋진 상품들이지만, 이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에서 수익이 나지 않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게 된다. 회사의 일원으로서 수익이 잘 나면서 소비자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면 디자인 쪽의 발전은 뒤로 밀리는 경우도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는 SCM과 디자이너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싶어서 결국 7년간 다녔던 직장을 그만두고 영국으로 가서 “디자인 경영학”이라는 학문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이 학문분야는 아직 한국에는 없으며, 디자이너로서의 상상의 날개를 펼침과 동시에 돈도 벌 수 있는, 즉 일석이조의 학문분야인 것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나는 이 분야를 배운 후 다시 한국에 와서 대학교에서 경영 디자인학이라는 학문을 만들어서 후배 MD들을 양성하고 싶다”라고 하며 “MD의 재능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여, 그 능력을 키워주어서 패션업계와 디자인업계에 보내고 싶다”는 소망을 드러냈다.
이재광 씨와의 흥미로운 인터뷰를 마치며 필자는 문득 얼마 전 어떤 패션 디자이너 오디션 프로그램의 홍보 포스터에서 봤던 문구가 떠올랐다 - “디자인을 경영하라” 이제 한국도 디자인을 경영할 수 있는 시대가 곧 도래할 것이고, 그 시대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하여 새로운 도전을 하는 이재광 씨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사진출처: bnt뉴스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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