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송희 기자 / 사진 김치윤 기자]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영화 ‘이웃사람’과 ‘범죄와의 전쟁’에서 사나운 인상을 드러내며 많은 이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이 남자가 ‘러블리’라는 별명을 달고 여성들의 이상형으로 언급되는 날이 올 줄.
“저 조차도 그랬어요. 스스로도 앞으로의 연기 진로를 악역이라고 단정 짓고 있었나 봐요. 처음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땐 당황스러울 정도였다니까요.(웃음) 불러주신 분들이 독특하신 분들이구나 생각했었죠.”
최근 tvN ‘응답하라1994’ 종영 후 bnt뉴스와 인터뷰를 가진 김성균은 “첫 방송이 나갈 때까지 조마조마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물론 찍을 땐 스스로가 스무 살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보시는 분들이잖아요.(웃음) 걱정이 컸는데 다행히 반응이 좋았죠.”
전작의 섬뜩함을 지우고라도 배우 김성균에게 ‘러블리’라는 별명은 조금 낯설다. 이제 서른다섯 살인 남자배우에게 사랑스럽다니. 어쩌면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응답하라1994’ 속 삼천포는 사랑스러웠다. 5대5 앞가르마에 촌스러운 더플코트, 금이야 옥이야 자란 태가 나는 이 남자가 제 고집을 꺾고 타인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스무 살, 어린 청년의 모습 그 자체였으니까.
◆ 환상 속의 그대
모두가 정답 찾기에 매달렸다. 나정(고아라)의 남편은 누구인가는 난이도 5점짜리에 해당하는 고난이도의 문제였다. 시청자들은 그 문제에 대해 갖가지 해석과 답안을 내어놓으며 ‘만약’을 위해 등장인물 중 어느 한 명도 제외하지 않았다. 그 치열한 저울질 속 유일하게 여유를 즐겼던 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삼천포, 김성균이었다.
“삼천포의 짝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어요. 나정이의 남편은 정말 아무도 몰랐지만요. 끝날 때쯤엔 아무도 남편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어요. 그냥 아무나 됐으면 좋겠다고. (웃음) 정말 몰라서 어떤 추궁에도 대답할 수 없었어요.”
그야말로 ‘환상 속의 그대’다. 금지옥엽 자라 싫어하는 것투성이였던 삼천포가 타인인 윤진(도희)를 만나 그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뭇 여성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특히 일부 시청자들은 그에게 ‘삼천포르쉐’라는 근사한 별명을 붙이며 “칠봉이나 정우만큼 삼천포 역시 비현실적인 인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집에서도 ‘포르쉐’냐고 물었더니 그는 “나름 잘해준다고 생각하는데…”라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
“잘 모르겠어요. (웃음) 가끔 아내가 ‘여보 고마워’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그냥 서로가 고마운 존재예요.”
맹렬하진 않지만 뭉근하다. 아내에 대한 은은한 애정은 그의 언어 속, 어디서든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아내의 성격을 언급하면서 ‘응답하라1994’의 키스신을 함께 시청한 일화를 밝혔다.
“함께 본방을 보고 있었는데 키스신을 보더니 도희가 불쌍하다고.(웃음) 어린 나이에 고생한다고 말했던 기억이 나요. 그 와중에 저는 최대한 그 장면이 아름다워 보이지 않도록 훼방을 놨죠. 저 날 날씨가 추웠느니 다들 멀미를 했느니 하고요. 하도 그러니까 나중엔 아내가 ‘그냥 봐’라고 덤덤하게 말하더라고요.”
◆ 그 시절, 우리는
1994년. PC통신과 삐삐, 음성 메시지로 마음을 전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그때. 김성균은 아직 중학생이었다. 잘하지는 못했지만 농구를 즐겨했고, 레코드판을 모으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던 그는 자신을 “실로 평범한 학생”이라고 소개했다.
“듀스, 이오공감, 김민종 선배님을 좋아했었어요. 노래도 많이 따라 부르곤 했는데.(웃음) 실제로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영광이었죠. 정말 꿈같았어요. 삼천포 리액션이 그냥 제 실제 반응이었다고 보시면 돼요.”
그의 말마따나 ‘평범한 학생’이었던 김성균은 사람들을 웃기는 게 좋았고, 그것은 그를 무대로 나아가 연기자의 길로 이끌었다. 2003년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으로 데뷔했지만 대중에게 이름을 알리기란 어려웠다. 천천히 착실하게 자신의 세계를 쌓아가던 그는 2012년 영화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들에게 그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오랜 무명 생활이 고되지는 않았는지 묻자, 그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힘들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다들 그때를 힘들었던 시절이라고 생각하시나 봐요. 전 그리 힘들지 않았는데…. 모든 배우들이 그런 생활을 하는 터라 나만 유달리 힘들다는 생각을 안 했어요. 그냥 작품 만들고 연습하는 게 재밌다 보니 그렇게 시간이 흘렀던 거죠. 개인적으로 그렇게 고생했다고 여기지 않아요. 오히려 단번에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고생하시는 선배들에겐 죄송할 정도죠. 어디 가서 고생했다고 하면 죄송할 분들이 많아요.”
담담하고 객관적인 시선의 끝에는 그가 있다. 뜨거운 인기에 조금쯤은 물러질 법한데도 그는 “언젠가는 잠잠해질 것”이라며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드라마가 끝나면 인기가 가라앉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다들 좋아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이런 걸 받아도 되나 싶기도 하고 한편으론 부담도 되죠. 연기하는 사람이 꾸준하게 작품을 만나 연길 하면 되는데 너무 과하게 관심받고 있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이런 걸 누려 본 적이 있어야죠.(웃음)”
성기지 않은 마음가짐. 그는 정신없는 2013년을 떠나보내며 “올해는 작품으로서 쉬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휴식을 취하고 싶어요. 현장에서 조용한 시간도 가지고. 작품을 하면서 통해서 치료를 받고 싶어요. 사실 지금 몸과 정신이 조금 지쳐있어서. 어쩌겠어요. 연기로 풀어야죠.”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