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7세대 LF를 내놨다. 1983년 이후 7번 변신을 거치며 지금은 당당히 주력 차종이 됐다. 덕분에 현대차의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1983년 'Y' 프로젝트로 시작된 쏘나타는 한국 자동차산업 근대사를 보여주는 차종이기도 하다. 작은 차에서 벗어나는 디딤돌이 쏘나타였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본지는 쏘나타 역사를 통해 한국차의 현대사를 되돌아 봤다. <편집자>
쏘나타를 출시하며 현대는 무엇보다 쏘나타 문화 만들기에 주력했다. 쏘나타야 말로 대표적인 한국인의 중형차이며, 세계로 뻗어가는 수출 전략형이라는 점에서 쏘나타를 한국의 상징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현대는 쏘나타를 '세계인의 자동차'로 부각시키는 데 노력했다. 뒤늦게 자동차사업에 뛰어 든 현대지만 세계 시장에서 인정을 받는다는 점을 소비자들에게 알림으로써 객관적인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린다는 계획이었다.
물론 현대의 이 같은 전략은 주효했다. 국내에서 '중형차=쏘나타'라는 등식이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되며, 인기를 끌었다. 심지어 대학 입학 시즌이 되면 서울대 이니셜인 'S'를 가지면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는 소문이 확산되며 수험생들이 쏘나타 엠블렘을 떼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단순한 학생들의 근거 없는 소문이지만 현대 내부에선 쏘나타가 성공한 것처럼 쏘나타 엠블렘을 가져가면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수험생들에게 확산된 것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쏘나타Ⅱ가 국내에서 확실하게 자리를 잡아가자 현대는 96년 쏘나타Ⅲ를 이어 내놓았다. 앞 모습을 전투기 분사구에 비유하며 역동적인 모습을 강조했고, 헤드램프는 원형과 타원형의 복합적 형태로 조사각과 조사폭을 확대한 SFR(Smooth Form Reflector) 타입 4등식 램프를 채택해 넓은 시야를 갖도록 했다. 아울러 측면부는 광폭 형태의 사이드몰딩을 적용해 볼륨감 증대 및 보호 기능을 강화했다. 엔진은 1.8ℓ와 2.0ℓ DOHC가 적용됐으며, 4단 자동변속기가 채택됐다.
물론 쏘나타Ⅲ 또한 쏘나타 명성을 이어간 것은 당연하다. 이미 쏘나타Ⅱ로 중형차 시장의 절대 강자로 올라선 입장에서 쏘나타Ⅲ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차종의 성격이 강했는데, 경쟁사들의 신차 출시에 대응키 위해 쏘나타Ⅱ를 개선해 내놓은 차종이 쏘나타Ⅲ였던 셈이다.
이후 쏘나타는 98년 EF쏘나타로 진화했다. EF쏘나타는 전보다 넓어진 차체와 향상된 편의성, 그리고 V6 엔진 라인업이 추가되며 한 단계 고급화 됐다. 당시 국내에선 삼성자동차의 SM5가 등장하던 때라 현대는 EF쏘나타를 통해 국내 시장 수성에 나섰던 것이다. 그랜저에 버금가는 편의품목은 쏘나타 브랜드에 대한 로열티가 높은 소비자를 중심으로 판매량이 증가했다.
사실 98년 EF쏘나타는 이전과 달라진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배기량별로 라디에이터 그릴 디자인을 달리 적용했다는 점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러나 당시 국내는 구제금융이라는 한파가 몰아쳤다. 현대는 오랜 숙성을 거친 EF쏘나타가 구제금융으로 타격받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러나 결과는 기우에 불과했다. 철저한 브랜드 마케팅과 변하지 않는 제품력은 19개월간 국산차 판매 1위라는 신기록을 수립했던 것이다.
2001년 EF쏘나타는 뉴EF쏘나타로 차종이 일부분 변경됐다. 대우차 사태와 르노의 한국시장 진출 등 자동차 산업의 구조가 조금씩 변화하는 시점에서 현대는 쏘나타에 약간의 변형을 주며 시장을 지켜 나갔다. 이때 쏘나타는 국내는 물론 미국 시장에서도 서서히 그 품질과 제품력을 인정받아가고 있었다.
그러는 사이 현대차는 새로운 엔진 개발에 착수했다. 이른바 세타 엔진이다. 쎄타 엔진은 현대가 독자 개발한 6번째 가솔린 엔진이었다. 1991년 처음 독자 개발한 알파엔진을 스쿠프에 장착한 뒤 13년 만에 엔진 개발 기술에선 본 궤도에 오른 제품이다.
세타 엔진 개발에는140명의 연구원이 매달렸다. 4년 가까이 휴일도 반납한 채 무려 1,000여명이 제작과 실험을 반복하며 완벽한 엔진 개발에 참여했다. 시험제작한 엔진만 400여대에 이른다. 실험 중 엔진 과열로 실험실을 다 태울 정도의 화재도 두 번이나 났다.
현대가 쎄타 엔진 개발에 사활을 걸었던 데는 무엇보다 쎄타 엔진이 쏘나타에 탑재된다는 점이었다. 쏘나타는 현대의 자존심이고, 미국 내 주력 판매차종이어서 그 어느 제품보다 상품성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태어난 쎄타 엔진이 NF쏘나타에 적용돼 나온 게 2004년의 일이다.
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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