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양평이형’ 하세가와 요헤이 “한국의 정, 극한의 상황 뒤 느꼈다”

입력 2014-06-04 08:00  


[김예나 기자] 무심한 듯 보이는 표정, 어딘가 어색한 미소. 거기서 나오는 구수한 말투까지. 대중에게 ‘양평이형’으로 익히 알려진 하세가와 요헤이는 브라운관 속 모습 그대로 동네 형과 같은 모습이었다.

“제 매력이요? 일부러 연기를 하는 게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 보여 드려서 재미있게 봐 주시는 것 같아요. 진지한 듯 자연스러운 모습들에 호감을 가져주시는 거 아닐까요?”

최근 일본에 한국 록 음악을 소개하는 책 ‘대한 록 탐방기’ 발간 기념 bnt뉴스와 만난 하세가와 요헤이는 한국 음악에 대한 궁금증과 부족한 정보에 대한 갈증을 느껴 한국으로 건너와 어느덧 20년 가까이 시간을 보냈다.

그가 발매한 ‘대한 록 탐방기’는 그의 한국 록과 밴드 문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책이다. 그가 처음 한국으로 건너온 1995년부터의 한국 음악 생활과 홍대 문화 등을 인터뷰 형식으로 담아 정리했다. 여기에 그가 지금까지 모아왔다는 LP판 사진들은 당시 문화를 더욱 생생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한국 음악이 케이팝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케이록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알려 주고 싶었어요. 요즘 케이록에 대해 소개하는 매체는 많지만 실제와는 다른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래서 제가 경험하고 느끼는 모든 것들을 담아냈어요”

음악밖에 몰랐다고 했다. 어린 시절 비틀즈 음악에 매료돼 밴드 음악을 접했고 세상 모든 기타를 치고 싶은 마음에 돈이 생길 때 마다 기타를 모았다는 하세가와 요헤이. 그에게 있어 음악은 평생 배워야할 숙명 같은 존재였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한국 록 음악은 그를 바다 건너 한국 땅을 밟게 만든 매개체였다. 

“처음에 음악을 하려고 한국으로 온 게 아니라 일단 LP판을 사려고 왔어요. 당시 인터넷도 안됐고 일본에서 한국 음반을 구할 수 있는 길도 없어서 무조건 한국에 가야하는 방법 밖에 없었거든요”

LP판을 구하기 위해 서울 지하철 2호선 모든 지하상가를 돌아다니며 매일같이 발품을 팔고 다녔다는 그는 한국에 올 때마다 LP판을 5, 60장씩 구입하며 한국 음악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이토록 가깝고, 닮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있는 한국인데 음악에 대한 정보가 너무 없고, 일본에서 음반을 구할 수가 없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어요. 이렇게 대단한 음악이 있는 나라를 그 동안 몰랐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그래서 더 빠지게 됐죠. 가깝지만 멀게 느껴지는 그 아이러니함이 매력적이었어요”

매력적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눈빛에서 20년 전 그가 느꼈을 희열이 조금은 전달되는 듯했다. 당시의 열정과 호기심이 20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하세가와 요헤이 내면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것만 같았다.

“예전에는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으니깐 정말 연구를 많이 했어요. 상상도 많이 했고요. 그러다가 제가 원하는 무엇인가를 얻었을 때의 그 기쁨과 희열은 말로 설명할 수 없었어요. 지금은 지금대로 정보가 많으니깐 편하고 빠른 점은 좋지만 그 때 만큼 스스로 공부를 한다거나 상상하는 노력은 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당시의 홍대 문화는 어땠을까. 국내 클럽 문화의 발원지이자 예술가들이 모여 사는 홍대, 지금의 20대에게는 낯설 법도 한 1세대 밴드 문화의 시초를 몸소 경험했던 그에게 과거 홍대를 묻자 제법 진지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때 홍대는 정말 어두웠어요. 밤만 되면 주황색 가로등만 띄엄띄엄 있는 정도 였으니깐요. 가정집들만 드문드문 있고 실내 포장마차에서는 옛 노래들이 간간히 흘러나왔죠. 그런데도 밤이 되면 다들 어디에선가 나와 모였어요. 공연을 하고, 술을 마시고,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맞았죠. 이때부터 한국에 대한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됐어요. 서로 등 두들겨 주며 아침을 맞이할 때의 공감이랄까. 극한의 힘든 모습들을 보여주면서 더 친해지게 되더라구요 (웃음)”

그런 게 바로 한국인의 정이라고 했더니 무언가 떠올랐다는 듯 일화를 털어놓는 그의 얼굴이 밝아 보였다.

“그 점이 정말 좋았어요. 제가 하루는 길을 몰라서 LP판을 손에 든 채 지도를 보고 있는데 지나가던 분들이 하나 둘씩 모이면서 도와주시는 거에요. 어떤 분은 제가 무슨 LP판을 샀는지 물어도 보시고.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자신의 일도 아닌데 열정적으로 도와주려는 모습들. 일본 사람들 사이에서는 잘 느끼기 힘든 모습이에요. 그런 부분들이 점점 신기하면서 나중에는 한국 사람들의 내면에 대해 알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렇게 친구가 생기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이 제게 특별한 나라가 됐죠”

한국 음악에 대한 뚜렷한 철학과 자신만의 고집을 내비칠 거란 당초 예상과는 다른 답변들이었다. 여느 음악인들처럼 그 역시도 술과 사람 그리고 소소한 일상들이 하나 둘 스며들어 하세가와 요헤이, 아니 홍대의 양평이형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앞으로의 밴드 문화가 기대돼요. 일본만 해도 제 윗세대 분들은 록에 대해 불량하다고 생각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런데 당시의 반대를 이겨냈던 세대가 이제 부모가 돼서 자식들에게 풍부한 지원을 해주고자 하니깐 우리 자식 세대들에게는 긍정적인 영향이 미치겠죠. 한국도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해요. 정보도 많고 지원도 많이 될 테니깐 그 만큼 훌륭한 뮤지션들과 아티스트들이 나올 거라고 예상해요”

제 2의 하세가와 요헤이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후배 양성에 대해 조심스레 물었더니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이제까지와는 조금 다른 반응을 보였다.

“저는 후배와 함께 음악을 하지 않게 되면 끝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후배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 보다 함께 성장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봐요. 음악은 제가 평생 배워야 하는 거지, 윗사람이 돼서 가르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저도 아직 록을 모르는데 무엇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의외의 확고함이었다. 지나친 겸손함일까 혹은 아직까지 느끼는 음악에 대한 갈증 때문인 걸까. 조금은 의아함을 느낄 찰나 그가 슬며시 말을 이어나갔다.

“물론 제가 책임질 수 있는 한에서는 해 줄 수 있어요. 적어도 제 스스로 당당할 수 있고 납득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오는 선에서는. 그런데 아직 그럴 만한 기회는 없었어요. 일본에서 이번 제 책을 보고 자극을 받아 누군가 나타나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 우물만 판다는 것. 성격 탓도 있겠지만 환경적으로 그럴 수 있다는 것도 행운이라면 행운일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한국에서의 지난 20년 세월은 그를 여러 가지 면에서 많이 성장하고 성숙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짐작케 했다. 20대 일본인 청년이 가깝고도 먼 나라 한국에 건너오면서 가졌던 음악에 대한 열정도, 사람들과의 관계도 그리고 앞으로 그가 스스로 그려보는 미래까지도.

“한국에서는 지낼 수 있는 만큼 살고 싶어요. 만약에 있지 못하게 된다고 해도 인연을 끊지 못하겠죠. 음악 활동이 안 된다면 통역을 해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음악이라는 한 가지를 정말 열심히 해왔기 때문에 살면서 다른 거 한 가지 정도는 다시 한 번 열심히 해 보고 싶거든요. 통역이 절대 쉬운 건 아닌데, 제가 한국말과 내면에 대해 잘 아니깐 아마 제대로 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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