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나 기자] 보기보다 옹골차다. 지그시 눈을 내리깐 채 미소 지으며 조근조근 말하는 그 모습에서 단단함까지 엿보인다.
최근 영화 ‘소녀괴담’(감독 오인천) 개봉 이후 bnt뉴스와 만난 배우 한혜린은 쉽사리 자신을 드러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첫인상이 느껴졌다. 허나 반전이기에 더 매력적인 법. 초반부터 담담하게 속내를 꺼내 보이는 그에게서 마냥 가냘프지만은 않은 존재감이 풍겨졌다.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우라가 보는 이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하달까.
“영화 속 제 비중에 비해 존재감이 크게 느껴졌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정말 좋고 감사했어요. 시나리오를 보고 현지라는 캐릭터를 최대한 이해하고 살려내기 위해 촬영 기간 내내 쉬는 날 없이 노력했어요.”
영화 속 첫 등장부터 포스가 남달랐다. 극중 일진 고교생 현지 역을 맡은 한혜린은 욕설은 기본, 같은 반 친구들을 때리고 괴롭히는 등 실감나는 연기로 캐릭터를 제대로 살려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자신이 맡은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갖는 건 배우로서 당연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토록 인터뷰하는 동안 캐릭터에 대해 곱씹듯 이야기하는 배우도 드물다고 느껴졌다. 관객들이 현지를 미워하지만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랄까.
“그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냈을 뿐이었어요. 그 방식이 잘못된 행동들로 나타난 거죠. 철이 없고 표현할 줄 몰라요.”
현지를 처음 대면했을 때의 느낌을 물었더니 “막 좋지는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이성적 보다는 감성적으로 참 많이 끌렸어요”라고 덧붙였다.
보통 처음 누군가를 보고 설렘을 느꼈다면 분명 좋은 감정이 깔려 있을 터. 허나 한혜린은 설렘보다는 ‘호기심’이라 설명했다. 그는 ‘호기심’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점점 현지를 알아갈수록 복잡하고 힘든 느낌이었어요. 수월하지만은 않았어요”라고 털어놨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현지는 과연 ‘악역’이었을까 싶은 그 애매한 느낌을 말이다. 분명 현지는 ‘선한’ 캐릭터가 아니었지만 여느 악역들과는 다른 슬픈 낯빛을 갖고 있었다.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기 마련, 현지도 그 나름의 이유가 있지 않았을까?
현지를 어디까지 공감할 수 있느냐고 묻자 “현지가 백 번 잘못 했어요”라며 웃어 보인다. 그러다가 이내 “하지만 현지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득력 있게 풀어내고 싶었어요”라며 “저도 그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서 참 많이 고민하고 신경 썼어요”라고 대답했다.
“영화 촬영 내내 현지에 빠져들어 살았어요. 항상 그랬어요. 솔직히 이해하기보다 오롯이 현지가 됐어요. 그렇지 않으면 너무 가벼워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항상 매 순간의 감정에 집중했어요. 언제나 1순위는 감정이었어요.”
감정에 대한 집중. 이것이 바로 그가 가진 압도적인 존재감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었다. 쉬운 작업은 아니겠다고 하자 “사실 이 과정들이 상당히 피곤한 부분이지만 스스로의 싸움을 통해 그냥 아파하고 감정을 계속 씹어요”라는 다부진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저도 가끔은 감정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서 몸을 사리고 싶은 유혹도 들어요. 그래도 한 순간이든 놓치고 싶지 않고 정말 잘 하고 싶어서 더 몰입하려고 해요. 언젠가 제가 지치면 라이트(light)해지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이 힘든 과정을 즐기면서 희열을 느낄 것 같아요. 억지로 할 작업은 아니죠.(웃음)”
일관된 대답. 자신감과는 사뭇 다른 종류의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 이제는 이 묵직함으로 인해 그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생겨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데뷔 7년차 여배우 한혜린에게 배우로서의 인생은 어떻게 펼쳐져나갈까?
“배우로서의 꿈은 솔직히 모르겠어요.”
여기서 또 한 번의 반전이었다. 이제는 이 명료한 대답이 오히려 반가웠다. 잠시 호흡을 가다듬더니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워낙 다양한 색과 방향이 많은 직업군이기 때문에 아직 제가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어요”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배우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요. 이것저것 부딪혀 보고 경험도 해보고 실수도 해보면서 제가 배워 나가야지, 어떤 길을 정해놓고 가고 싶지는 않거든요. 최대한 열어두고 싶어요.”
기회를 기다린다는 의미로 들렸다. 허나 이것도 또 아니란다. 그는 “그저 제가 자연스럽게 소화할 수 있는 캐릭터를 만나기를 원해요. 굳이 오버하고 욕심내면서까지 기회를 잡고 싶지는 않아요”라는 소신을 밝혔다.
연기에 대한 욕심. 20대 여배우로서 당연히 가질법한 기질이라 생각했다면 오해였을까. 추구하는 이미지나 바라는 캐릭터가 있듯이 말이다.
“특정한 이미지를 갖고 싶지 않아요. 갇힐 것 같아요. 이미지란 제일 중요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제 이미지로 인해서 작품 속 인물이 변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신선한 대답이었다. 자칫 위험한 발상 아닌가 싶다가도 이내 부러움까지 들게 했다. 그러다가도 그게 바로 한혜린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이자 매력이라 여겨졌다. 캐릭터를 살아 숨 쉬고 강력한 존재감으로 빛나게 하는 그 힘 말이다.
“욕심인지 아닌지는 스스로 잘 알거에요. 솔직하게. 객관적으로. 지금까지 그래왔지만 제 능력치 밖이라면 조금 천천히 가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어우러지고 싶어요. 지금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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