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관리법에 없는 자동차 구분법 중 가장 대표적인 것 가운데 하나가 국산차와 수입차로 표현되는 이분법이다. 1987년 수입차 개방 이후 자연스럽게 형성돼 왔고, 지금도 뇌리에 깊숙하게 자리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같은 이분법이 만들어진 배경에는 그간 수입차 가격이 국산차 대비 비교적 높았다는 게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수입원가에 부과되는 관세와 여기에 더해지는 각종 세금, 그리고 수입사 마진이 추가되며 형성된 비싼 가격이 자연스럽게 '수입차=프리미엄' 이미지를 만들었고, 소비자도 그렇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최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수입차 판매가 폭발적으로 늘자 수입사마다 경쟁적으로 판매량 증대를 선언하며 가격 인하를 선택했다. '수입차=프리미엄' 이미지가 만들어진 상황에서 꺼내 든 신의 한 수(?)는 국내 자동차 시장 구도를 바꿀 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게다가 관세 인하를 등에 업은 수입사로선 2,000만원대 자동차를 쏟아내며 주력 시장의 터줏대감을 위협하고 있다. 덕분에 수입차를 더 이상 비싸거나 또는 별도의 고급차로 여기는 경향도 반감되는 중이다.
반면 국산차는 그간 꾸준한 제품 개선에 매진하며 조금씩 가격을 높여왔다. 그러자 '수입차=고급차', '국산차=평범한 차'로 여겼던 소비자 일부가 수입차로 갈아타는 일이 벌어졌고, 상황을 뒤늦게 알아차린 국산차는 가격 상승을 놔둔 채 제품력 경쟁을 위해 고급 제품군 강화에 나섰다. 최근 앞바퀴굴림 최고급차 '아슬란'이 태어나게 된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는 르노삼성 QM3가 도마에 올랐다. 스페인에서 생산되니 수입차가 맞지만 르노삼성차가 판매한다는 이유로 국산차로 보는 시각이 적지 않아서다. 하지만 QM3는 엄연하게 수입되는 승용차다. 그런데 수입사가 한국에 생산 공장을 두고 있어 국산차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존재한다. 그렇게 보면 국산차와 수입차는 생산 지역 개념이 아닌 '브랜드 국적'에 따라 소비자 개개인의 머리에서 나눠지는 것이 아닐까.
따라서 더 이상 '국산차 vs 수입차'를 나누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얘기가 나온다. 국내에 생산 공장이 있든 없든, 완제품으로 물 건너 왔든 말든 소비자들은 자동차를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30년 넘게 굳어진 이른바 '수입과 국산'의 이미지 변화에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적어도 극단적인 구분법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기본적으로 자동차는 이동 수단이다. 그러나 감성적으로 자신의 지위와 신분, 경제적 여유 등을 외부로 드러낼 수 있는 사물체이기도 하다. 이는 그간 수입사가 하나같이 추진한 '수입차=프리미엄' 전략의 배경이 되기도 했다. 수입됐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프리미엄' 또는 '고급'으로 여겨져 왔으니 말이다.
며칠 전 요즘 잘 나간다는 피아트-크라이슬러의 몬디 알베르토 차장을 만났다. 그에게 이태리 자동차문화를 슬쩍 물어보며 수입차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이태리에선 그냥 자동차가 있을 뿐 '수입과 국산'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걸 물어본 것 자체가 머쓱했을 정도다. 한국도 이제는 그렇게 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 어떤 차를 타냐고 물으면 '수입차 또는 국산차'가 아니라 'OOO의 OOO'을 탄다고 말하는 시대가 지금이니 말이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