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20년 전인 1895년 유럽에선 파리에서 보르도를 거쳐 다시 파리로 돌아오는 최초의 자동차 경주가 열렸고, 북미에선 89대가 출전한 최초의 레이스가 시카고에서 열렸다.
그리고 또 다시 찾아 온 을미년(1955년), 한국에선 시발(始發) 자동차가 등장했다. 그 해 경복궁에서 열린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폐차된 미국 SUV 또는 트럭에서 부품을 떼어냈고, 차체는 드럼통을 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 그렇게 막 자동차에 발을 내디딜 때 글로벌 시장에는 40여종의 다양한 신차가 쏟아졌다. BMW가 503을 내놨고, 피아트는 600을 등장시켰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스포츠카인 190SL을 선보였고, 토요타는 크라운, 롤스로이스는 실버 클라우드, 폰티악은 사파리, 푸조는 403, 포드는 선더버드, 시트로엥은 DS 등을 만들어 판매했다. 우리가 망치를 잡을 때 이들은 최첨단 생산시설을 자랑하며 대량생산에 몰입했다.
그리고 60년이 흐른 지금 또 하나의 을미년이 찾아왔다. 그런데 120년 전, 그리고 60년 전 을미년과 지금의 을미년은 이름만 같을 뿐 자동차는 천지개벽이다. 망치 두드리던 한국이 어느새 글로벌 시장에서 800만대를 판매하는 나라로 우뚝 섰다. 800만대 만들어 국내에는 160만대만 남기고 600만대 이상은 해외에서 판매한다. 1955년 시각으로 보면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다.
짧은 기간 눈부신 성공이 가능했던 이유는 소비자였다. 1980년대 시작된 자동차 대중화가 소비자 시선을 가파르게 높였고, 판매를 통해 생존하려는 자동차회사의 치열함이 만들어 낸 결과다. 게다가 소비자 욕구는 다양해지고, 제품에 대한 기대감도 하늘 높이 치솟았다. 결국 끊임없는 대형화, 고급화가 이뤄진 배경이다.
하지만 최근 크고 고급화되는 경향에 제동이 걸리는 분위기다. 덩치가 클수록 무거워져 연료소모가 많아지고, 자동차 보유 증가로 주차 등 운행에 불편함이 일어나고 있어서다. 나아가 1인당 1대 시대로 급속히 변모하는 흐름은 도로 포화를 유발, 심각한 사회 문제를 초래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자동차산업이 위축되지는 않는다. 한국 뿐 아니라 기본적으로 자동차산업은 전방과 후방의 또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여러 소재로 만들어진 부품이 공장에 모여 완성차가 생산되면 판매 과정에서 금융, 보험 등의 산업이 연결된다. 이런 전후방 산업을 모두 감안하면 대한민국 경제인구 4명 중 1명이 자동차로 먹고 산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기도 한다.
그래서 올해도 한국의 자동차산업은 계속 발전해야 한다. 1895년이 혼돈스러운 을미년이었고, 1955년이 자동차에 이제 막 눈을 뜬 시기였다면 2015년 을미년은 한국차가 글로벌 시장에서 변혁으로 기록될 만큼 나아가야 한다. 그러자면 소비자들의 날카로운 시선과 까다로운 제품 고르기가 수반돼야 한다. 소비자가 느슨하면 기업도 긴장감이 떨어져 획기적인 제품 개발에 소홀하기 때문이다. 2015 을미년, 한국 자동차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 같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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