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리라 기자] 드라마 ‘응답하라 1994’가 인기를 끌고, 무한도전에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를 통해 90년대 열풍이 다시 돌아왔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가장 향수에 젖을 사람이 누구일까.
스타일리스트는 자신보단 스타가 빛이 날 때 더욱 빛이 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들을 빛내주기 위해 존재하는 직업. 그 어려운 일을 정보윤 스타일리스트는 20년 넘게 하고 있다.
영문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길에 올랐지만 패션으로 돌아왔다. 서태지를 정장으로부터 벗어나게 했고, ‘효리쉬’를 창조했다. 비스트는 시크돌이 되었고, 현아는 빨개졌다. 그의 손길이 닿으면 당대 ‘스타일 아이콘’이 되는 것이다.
국내 1세대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린다. 스타일링 컴퍼니 ‘런던 프라이드’의 대표이자 패션 예술학부의 교수, 특히 아이돌의 스타일링을 담당하게 되면 더 욱 바쁠 텐데
회사다 보니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제 밑에 실장이 세분 계시고, 그 밑에 팀장님 세분, 그 밑에 다시 3명, 다시 3명 총 12명의 직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팀별로 체계가 잡혀 있어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아도 진행이 가능하다. 그러나 손에서 폰을 놓을 순 없다. 동방신기팀, 이효리팀, 현아팀, 씨스타팀 등 실장님별로 팀이 구성되어 있다.
자기 자신만의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가
육아. 너무 스폐셜 한 일이다. 예전에는 해외여행을 다니며 리프레시 하는 기간을 가지곤 했지만 지금은 아이가 생겨서 인생의 포커스를 아이한테 맞췄다. 주 양육자가 되어야지 부 양육자는 되기 싫었다. 3-4세 기간에는 아이에게 엄마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직업을 버릴 순 없는지 요새 아이 옷 스타일링 하는 재미로 산다. 아줌마 인스타그램으로 변했다. 간혹 팔로워들이 스타일리스트라서 뭔가 바라고 들어오지만 우리 아이 사진 밖에 없다.
서태지와 아이들 스타일링을 시작으로 스타일리스트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하는데, 에피소드 몇 가지 들려달라
당시에는 학생이었다. 런던에서 재학 중이던 시절, 방학 때 특파원 개념으로 친구가 일을 하고 있어 어시스트처럼 일을 도와주고 있을 때 방학이라 한국에 방문했다. 당시 유일한 패션잡지 월간 ‘멋’이라는 잡지 기자님을 만났다. 당시 아르바이트로 한 꼭지를 맡겨 주셨다. 그때 모델이 ‘서태지와 아이들’이었다. 그들도 당시 1집 신인이었다.
그런데 힙합을 한다는 그들이 정장 스타일을 입고 있었다. “랩은 그런 스타일이 아니다, 바꿔주겠다”라고 제안을 하고 ‘올드 스쿨’ 스타일링으로 바꿔줬다. 그게 너무 마음에 든 나머지 우리를 고용했다.
당시 백팩의 주머니를 옷에다 붙이고 내 침대 옆 인형을 넣어준 의상을 콘서트 때 입었다. 그리고 우린 방학이 끝나 런던으로 돌아갔는데 한국에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타일링이 되어 있었다. 백팩에 인형을 달고 다니는 스타일이. 그리고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속옷 디자이너로도 일을 해봤었다. 색다른 체험이었다.
스타일 제조기라는 호칭이 어울릴 정도로 수많은 스타일을 창조해냈다. 모델에 따라 어떻게 영감을 받는지
주로 가수, 뮤지션을 맡고 있어 음악적인 영감이 가장 크다. 그리고 모든 건 기획에 의해 만들어지기에 시작 전부터 기획에 맞춰 그들을 메이킹 하게 된다. 음악 또는 안무 아니면 트렌드에 맞춰 스타일링을 하기도 한다.
스타일링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요소는 사실 많다.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웰메이드가 돼야 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대중들에게 보여주기 위해선 스타일이 콘셉추얼 한 것, 콘셉트가 있어야 한다.
본인의 스타일링
시대별로 바꼈다. 빠져있는 스타일이 매번 바뀐다. 20대 초반에는 히피 룩, 후반에는 애니멀 프린트. 별명도 ‘호피소녀’였다. 30대 초반에는 빈티지 룩, 지금은 믹스 매치하는 걸 좋아한다.
컬렉트하는 아이템이 있는가
많다. 한혜연 스타일리스트와도 항상 이야기한다. “스타일리스트는 이래서 돈이 없다” 저는 빈티한 명품을 좋아한다. 샤넬이나 디올 빈티지 제품을 찾는다. 파리로 가게 되면 빈티지 숍을 들린다. 근데 빈티지가 더 값이 비싸다. 일반적인 것보단 유니크한 제품을 찾는다. 남들이 잘 사지 않는 제품을 사게 된다. 콜라보 작업을 한 디자인을 많이 본다.
올해 가장 뿌듯했던 스타일링은?
두 가지의 뿌듯함이 있다. 스타일링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으로 보이프렌드 친구들이 음악방송 1위를 했을 때 너무 기뻤다. 특히 첫 단독 콘서트를 열었을 때 진심으로 너무 기뻤다. 동방신기 역시 데뷔 때부터 함께 해온 친구들이다. 이번 10주년 콘서트 때, 팬들로 가득 메운 경기장을 봤을 때 감격스러움은 말로 다 표현하지 못할 정도다.
가장 많은 시간 공들여서 작업했던 것은 어떤 스타일링인가
다 항상 공들여서 작업을 많이 한다. 굳이 뽑자면 이효리 아니겠는가. ‘스타일 아이콘’이라는 명칭을 얻고 난 후 힘들었다. 정말 잘 해도 본전이고, 기대치에 못 미치면 악플이 정말… 15년 정도 같이 일을 했다. 매번 주목을 받는 건 좋지만 피드백이 빨라 신경을 많이 쓴다. 효리 같은 경우는 기자분들이 집중적으로 관심을 가져주시니 모든 것에 신경을 많이 쓴다.
국내외 막론하고 스타일링 해보고 싶은 셀럽
‘누구를 하고 싶다’라기 보단 힙합을 워낙 좋아해서 힙합 하는 친구들과 작업하는 게 재밌다. 효리만 한 여자 솔로 가수가 나왔으면 좋겠다. 너무 재밌거든요, 그리고 동방신기. 그들이 5명일 때, 외모나 음색 등 뭐 하나 빠지는 거 없이 자기만의 포지션을 가진 완벽한 남성 그룹이 있었으면 좋겠다.
교직에 몸을 담고 있다. 살롱쇼를 위해 학생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걸로 알고 있다. 수업은 어떻게 진행하는가
수업은 즐기면서 한다. 아카데믹한 것도 배워야 하지만 난 패션은 ‘펀(fun)’이라고 생각한다. 즐겁지 않으면 패션은 하드 워킹이 된다. 결과물로 평가를 받지만 과정이 쓰기만 하다면 쉽게 포기하기 쉽다. 달고 재밌는 그런 가르침을 주고 싶다. 자유로움을 준다. 생각에 자유로움을 주면 크리에이티브적인 모습을 끌어내는 역할을 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리메이킹하는, 현장감을 가질 수 있는 수업을 한다.
제자들을 가르치게 되면 후배를 양성하는 것인데, 스타일리스트가 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
모든 직업이 그렇지만 선천적인 센스가 중요하지만 인내와 끈기가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 순간을 버티지 못해 그만두는 친구들이 많은데 ‘한 우물만 파면 뭐가 되든 된다’라고 늘 가르친다. 스타 스타일리스트를 보며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데 그들도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걸 경험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스타일리스트 정보윤, 이름 앞에 붙었으면 하는 수식어
경쟁이 많은 곳이다. 그리고 정말 잘되면 연예인이 잘해서 잘 된 거고, 못하면 스타일리스트가 잘못한 거고. 그런 살벌하고 경쟁이 많은 곳이지만 여기서 인간적이고 싶다. 따뜻하고 보듬어 주고 싶은 부분이 많다. 아이돌들이 이제 많이 어리다. 그들의 옷만 입히고, 스타일링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엄마처럼 따뜻하게 케어해주는 그런 스타일리스트가 되고 싶다.
(사진출처: bnt뉴스 DB, 서울종합예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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