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화학자 J.F 리비히가 어느 날 '최소율의 법칙(Law of Minimum)'을 발견했다. 식물은 풍부한 게 아니라 부족한 영양소에 의해 성장 전체가 지배된다는 법칙이다. 그러니 필수 항목이라면 넘치지는 않아도 부족함은 없어야 된다는 얘기다. 나무 물통에 담을 수 있는 물의 양은 나무판자 높이가 결정한다는 의미에서 '나무 물통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시작은 자연과학이었지만 최소량의 법칙은 경제이론에도 많이 활용된다. 취약한 조직원의 능력을 높이지 못하면 팀워크가 제대로 효과를 내지 못한다는 데 사용되고, 심지어 평균 이하의 나약한 병사가 있다면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전쟁 논리에도 인용되곤 한다.
그런데 자동차에도 최소율의 법칙이 적용된다. 외형상 전체 판매대수가 많아도 안 팔리는 차종을 그대로 놔두면 성장에 한계가 오기 때문이다. 비인기 차종의 관심이 높아져야 전체 판매를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런데 또 하나, '파레토의 법칙'이 있다. 인구의 20%가 전체 부의 80%를 가졌다고 말한 이탈리아 경제학자 빌프레도 파레토에 착안해 미국 경제학자 조셉 M.주란이 내놓은 법칙이다. 흔히 ‘2대8’의 법칙으로 불린다. 백화점 전체 매출의 80%를 20%의 소비자가 만들어준다는 의미다. 이 말을 자동차로 가져오면 판매 비중이 20%에 불과한 비인기 차종이 전체 수익의 80%를 책임질 수 있다는 얘기일 수도 있다. 결국 자동차회사가 판매로 승부를 보려면 잘 팔리는 제품 외에 안 팔리는 제품 늘리기에도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판매자 입장에선 소비자들이 많이 찾는 제품에 우선 비중을 두기 마련이다. 덕분에 숫자로 설정된 목표에 도달하기도 쉽다. 게다가 기업 측면에선 주격 차종의 판촉을 걸었을 때 호응이 높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긍정적 효과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주목되는 것이 바로 '균형'이다. 수량은 작아도 제품군 전체의 고른 판매가 중요하다는 의미다. BMW가 최근 520d 외에 다른 차종 판매 늘리기에 나선 것도, 인피니티가 지난해 Q50 디젤에 매진하다 올해는 Q70 가솔린을 내세우는 것도 결국은 균형의 맥락이 아닐 수 없다. 때마침 국내 자동차 시장도 점차 대형차에서 중소형차로 이동하는 균형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는 중이니 시점은 매우 적절한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연초부터 신차가 쏟아지고 있다. 주력 차종은 물론 비인기 차종도 옷차림이 바뀌거나 정교한 화장으로 소비자 시선을 끌어당긴다. 소비 시장 다양화를 겨냥한 개성 넘치는 차종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 마디로 제한된 시장에서 주력 의존도를 낮춰 보자는 시도가 곳곳에서 이뤄지는 중이다. 그 가운데 요즘 대세는 소형 SUV다. 세단은 여전히 소형의 갈 길이 멀지만 SUV는 다르다. 덕분에 판매 차종의 균형도 많이 맞춰지고 있다.
지금의 흐름이라면 앞으로 판매 차종 다양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여러 차종을 동시에 신경 써야 생존이 가능하니 말이다. 결국 최소율의 법칙과 2:8의 법칙이 무색할 따름이다. 편식보다 고른 영양 섭취가 건강의 균형을 만들어준다는 말, 자동차도 예외는 아닌 것 같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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