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혜진 기자/ 사진 김강유 기자] 옷은 옷을 만드는 사람, 즉 디자이너의 정체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 ‘더 센토르’라는 브랜드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고스란히 전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있다. 바로 디자이너 예란지다. (센토르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 (半人半獸). 인간과 동물 사이에서 방황하며 어느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없는 안타까운 존재)
센토르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정체성에 대해 끊임 없이 물음을 던진 그는 혹독한 고뇌의 산물로 ‘더 센트로’를 선물 받았다. 독특하면서도 독보적인 아이덴티티가 느껴지는 ‘더 센트로’ 예란지 디자이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2012년, 홀연히 자취를 감추게 되는데.
이후 2년만에 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대중 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2015 F/W 서울패션위크를 일주일 앞 둔 봄 내음 가득한 어느 날 오후, 신사동에 위치한 쇼룸에서 ‘더 센트로’ 예란지 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예란지 디자이너, 브랜드 ‘더 센토르’에 대한 소개
2008년 서울 컬렉션 제너레이션 넥스트로 데뷔했다. 크게 디자이너가 되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시작한 건 아니다. 생각보다 빨리 성장한 케이스다.
대학교 때 ‘본질’을 찾겠다고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혼자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Joanne Glasscock 노래에 보면 인간을 사랑하지 못하고 말도 사랑하지 못한 인간과 신의 세계 중간에 살고 있는 존재를 더 센토르라 정의한다. 그때부터 ‘나는 더 센토르같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브랜드 네임을 정할 때도 고민 없이 더 센토르라고 정했다.
스토리를 중시하는 예란지 디자이너의 2015 F/W 콘셉트는 무엇이며 이번 쇼의 영감은 어디서 받았는가?
지금까지는 상업적인 부분보다 예술적인 측면을 중요시 생각했다. 그래서 일을 진행하면서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런데 이번에는 현실적인 부분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은 아직 완벽하게 자리잡지 않은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콘셉트는 ‘건국지색’. 경국지색에 앞 글자만 바꿔 ‘나라를 세우는 색을 가진 여자들’이라는 긍정적인 개념을 담았다. 개인적인 소망이기도 하다. 2012년 S/S까지 하고 쇼를 쉬었다. 제일 잘되고 있을 시기인데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 휴식을 가졌다. 일을 접고 미국에 갔다 오니 인생이 너무 허무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그 때 마침 허무나 우울을 극복하고 하루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보였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 시즌 하고 싶은 것, 집중하고 있는 것, 되고 싶은 것 등 내 삶의 시간에 맞춰 움직이는 편이다. 브랜드 콘셉트 자체가 색기 있는 분위기를 추구하다 보니 이번 쇼도 많이 맞물려 있는 것 같다.
이번 쇼에서 가장 중점을 두고 관람해야 할 포인트가 있다면?
이번에는 퍼포먼스, 영상이 없다. 사실 메인 쇼는 다음 S/S다. 이번에는 의상에 포인트를 맞춰 최대한 깔끔하게 준비했다. 건국지색에 맞춘 음악, 프린트 등을 통해 ‘여성들이 가진 컬러가 대체 뭐길래 나라를 세울 수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2015 F/W 준비 과정 중 특별한 에피소드, 에로사항이 있다면?
재기 후 완벽한 팀 세팅이 된 상태가 아니다. 오랜만에 뭔가를 하려니 쉽지 않았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다른 브랜드는 샘플실, 패턴실 등 완벽한 조직이 구성되어 핸들링이 쉽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그래서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그래도 직원들이 다들 열심히 노력해 줘서 결과가 좋을 것이다. 포기할 부분은 과감히 포기했다. 마지막에 웃을 수 있으면 되지 않겠나.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한다.
예란지 디자이너의 꿈에 대한 이야기. 디자이너의 꿈은 언제부터 꾸었고, 앞으로의 꿈은 무엇인가?
원래는 조각 같은 예술을 하고 싶었으나 어릴 때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커 패션디자이너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가치가 없는 일을 하는 거 같아 주눅이 많이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트와 상업을 믹스해 센토르 안에서 적절히 표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금 당장 뭔가 대단한 결과물을 내 놓은 건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면 더 멋진 성과를 낼 수 있을 것 같다. 시간, 노력에 비해 결과물은 적지만 하다 보면 더 멋진 일이 생길 것 같다는 기대감이 있다.
패션은 혼자 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니다. 상상한 것을 누군가 도와주고, 표현해주고, 더해줘야 가능한 일이다. 결국 좋은 팀이 만들어지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혼자 모든 것을 할 수 있을지, 비즈니스 파트너와 함께 할 지 아직은 모르겠다. 우선 당장은 좋은 팀을 만드는데 집중할 예정이며 궁극적으로는 좋은 팀 내에서 재미있는 작업을 맘껏 해보고 싶다.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는 것도 있지만 얻어지는 것도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베스트를 찾아내고 싶다. 나만의 방법으로 능숙하게.
예란지 디자이너에게 패션이란? 본인만의 패션 철학이 있다면?
입생로랑은 패션을 ‘사람들이 조금 더 질적으로 나은 삶을 살기 위한 미적 환영’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판타지다. 자신의 왕국에서 판타지를 얼마나 아름답게 만들어 낼 수 있느냐 없느냐가 관건이다.
패션은 사람들에게 흥분, 설렘, 즐거움을 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어려운 패션 시장 속에서도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내 쇼가 나중에 일기같이 차곡차곡 남겨졌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 내 옷을 봤을 때 아무런 설명이 없어도 나라는 사람이 그 당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았는지 느꼈으면 좋겠다.
34,결혼도 생각해 볼 나이다. 결혼에 대한 계획은 없는가?
최초로 5개월째 아무도 안 만나고 있다. 정말 춥고 힘든 겨울이었다(웃음). 집, 차, 사무실을 반복하고 있다. 남자친구는 늘 있었던 것 같다. 근데 아무래도 이제 끝난거 같다…(웃음)
결혼한 친구들을 보면 인생을 건설적으로 계획한 거 같아 부럽다. 그런데 주변 언니들이 다 나 같다. 그래서 그런가? (웃음) 사랑하는 사람만 있으면 언제든지 결혼할 수 있다. 예전에는 얼굴, 외모, 경제력 어떤 것도 따지지 않았는데 이제는 꽤 현실적이 됐다. ‘트러블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수준은 되야겠구나’ 생각한다.
세계관이나 가치관이 큰 남자를 만나고 싶다. 인생을 바라보는 가치관이 넓어 아빠같이 기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단, 패션 종사자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OOO 디자이너 예란지, 본인을 자칭하는 수식어구를 붙여본다면?
매력적인 디자이너 예란지. 모든 면에서 매력적인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바람이기도 하고.
보아와의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알고 있다. 앞으로 ‘내 옷을 입혀보고 싶다’하는 셀럽이 있다면?
SM관계자와 친분이 있었고 보아씨가 제 옷을 보고 맘에 들어 해 ‘게임’, ‘허리케인비너스’ 작업에 참여했다. 사실 연예인들이 많이 다가오긴 하지만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다. 김나영 언니는 같은 빌라에 산다. 성격도 털털하고 잘 맞아 친하게 지내고 있다. 필요할 때마다 옮겨 다니는 셀럽은 불편하다. 사람과 친해지는데 굉장히 오래 걸리는 스타일이다.
누가 입었으면 좋겠다 라기보다 누가 입어도 색다른 분위기가 나는 옷을 만들고 싶다. 연예인을 위해 옷을 만들지는 않는다. 쇼 때도 특별히 셀럽을 따로 안부른다. 중요한 게 뭔지 잘 알아야 한다. 쇼에 자신이 있으면 셀럽으로 채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셀럽보다 손님이 한 명이라도 더 왔으면 좋겠다. 더 센토르는 매니아 층의 충성도가 장난이 아니다. 회사를 접을 때 쇼피스까지 남김없이 다 팔았다. 지금도 더 센토르를 아껴주셨던 분들께는 정말 죄송하다. 그때의 빚을 앞으로 하나하나 갚고 싶다.
2015년 디자이너로서의 목표 및 계획
비즈니스파트너를 만나기 전까지 창피하지 않을 만큼 브랜드 세팅을 완벽히 해 놓고 싶다. 올해가 사실 제일 힘든 해다. 가을에 갤러리아 샵에 들어가고 겨울엔 신사동매장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에는 보답하고 싶어 무조건 열심히 했다면 이제는 나도, 내 직원도 챙기면서고 즐기고 싶다. 바람이 있다면 늦기 전에 제대로 된 하우스 브랜드 하나 꼭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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