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기아차 카렌스는 당시 디젤엔진이 탑재됐던 엑스트렉을 포함해 연간 1만3,352대가 팔렸다. 많지는 않아도 나름 존재감을 드러내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그 해 지금의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이 기아차 사장에 취임했다. 그리고 이듬해 등장한 뉴카렌스는 2만5,362대로 껑충 뛰었고, 2007년에는 내수에서 3만1,860대로 마감하며 카렌스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8년, 카렌스는 1만8,805대로 떨어졌고, 2009년에는 연간 1만대 미만에 머무르는 부진을 겪었다. 공교롭게 기아차 국내 영업담당이었던 정의선 사장이 해외 부문으로 옮겼던 해부터 판매량이 떨어지더니 급기야 지난해는 4,090대로 마감했다. 사장으로서 임무를 부여받고 내놓은 차종이 승승장구하다 업무가 달라지니 낙엽처럼 떨어진 셈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오가지만 업계에선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의미에서 '오비이락(烏飛梨落)'이라는 표현을 쓴다. 당시 정의선 사장의 업무 변동 여부와 관계없이 카렌스는 점차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었던 차종이었다는 얘기다.
이유는 LPG 가격 상승과 경쟁 차종의 등장으로 꼽힌다. 사실 기아차 카렌스는 1999년 처음 나온 이후 당시 현대차 싼타모 및 대우차(현 한국지엠) 레조와 경쟁하며 국내 소형 미니밴 시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현대기아차 통합 후 싼타모가 단종됐고, 급기야 한국지엠이 2007년 레조 생산을 중단하며 홀로 미니밴 시장을 지켜왔다. 실제 2세대로 모습을 바꾼 뉴 카렌스 판매가 연간 3만대를 넘었던 시점이 바로 레조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 때였다.
그러다 정의선 부회장이 기아차 해외 담당 사장으로 옮긴 2008년 카렌스는 위기를 맞는다. 고유가에 따라 LPG 가격이 급등했기 때문이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지난 2007년 ℓ당 773원이었던 자동차용 부탄 가격은 이듬해 평균 1,009원으로 급등했다. 그러니 LPG 엔진이 탑재됐던 카렌스는 내수에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유가 상승은 디젤 수요를 촉발시켰고, 이는 곧 SUV 판매 증가로 연결된 게 기아차로선 아픔이었다. 이듬해 LPG 가격이 다시 828원으로 떨어지며 안정세를 보였지만 이미 디젤 SUV로 돌아선 흐름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그나마 연간 9,681대도 기아차로선 감사해야 할 처지였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카렌스를 다시 한 번 밀어낸 건 다름 아닌 쉐보레 올란도다. 2011년 올란도가 등장하자 카렌스 판매는 연간 4,691대로 전년 대비 반 토막 났다. 쉐보레가 올란도에 디젤 엔진을 탑재해 승승장구한 것과 달리 카렌스는 여전히 LPG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나중에 디젤 엔진을 추가했지만 이미 소비자에겐 '올란도=디젤, 카렌스=LPG'로 인식이 굳어진 뒤였다.
이후 카렌스는 좀처럼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 2013년 3세대로 넘어오면서 1.7ℓ 디젤과 2.0ℓ LPG 엔진을 올려 연간 8,772대로 반짝 회복하는 듯 했지만 결국 일어서지 못하고 지난해 다시 4,090대로 마감을 했다.
카렌스의 존재감 약화에 대해선 기아차 내부에서도 인정한다. 그리고 이유로 꼽는 게 대안 차종의 다양화다. 용도나 실효성 면에서 카니발이나 SUV인 스포티지 및 쏘렌토 등이 카렌스를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뜻이다. 게다가 가격 차이도 적게는 200만원에서 많게는 600만원이어서 카렌스의 주목도는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SUV와 달리 '과시(?)'가 없는 차종이라는 점도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내수의 경우 카렌스는 주문이 있어야 생산이 된다. 그나마 제품을 유지하는 것은 오로지 수출 때문이다. 해외에선 나름 선전하고 있어서다. 2013년 3세대로 바뀌기 직전 처음 공개된 장소가 파리모터쇼였던 이유다.
그렇게 보면 정의선 부회장에게 카렌스는 기억에 오래 남을 차종이 아닌가 한다. 기아차 국내 담당에서 대박을 치고, 해외 담당으로 옮겨 지금도 수출되고 있으니 말이다. 혜안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운수가 대통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흔히 말하는 '운(運)'발은 기막히게 좋았던 것 같다.
권용주 선임기자 soo4195@autot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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