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레이 인터뷰] 여성 힙합 뮤지션⑦┃졸리브이, 힙합의 희로애락

입력 2015-07-14 13:46   수정 2015-07-14 14:25


[bnt뉴스 김예나 기자] <마초적인 성향이 강한 힙합 장르는 더 이상 남성들의 전유물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최근 방송 프로그램부터 음원 차트, 언더그라운드 씬까지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활약이 돋보이고 있기 때문. 그들은 말한다. 성별을 떠나 그저 묵묵히 힙합의 길을 걸어왔노라고. 똑같은 힙합 뮤지션일 뿐이라고. 우리가 이제껏 몰랐던 혹은 앞으로 주목해야 할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자.>

최근 한경닷컴 bnt뉴스와 일곱 번째 릴레이 인터뷰를 가진 여성 힙합 뮤지션은 래퍼 졸리브이(Jolly V)다. 지난 2012년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졸리브이는 다수의 싱글과 한 장의 EP 앨범 그리고 지난해 데뷔 5년 만에 발매한 첫 정규 ‘헤브 페이스(Have Faith)’까지 활발하게 음악 활동을 이어왔다.

래퍼로서 첫 시작은 지난 2008년 DJ 쥬스(DJ Juice) 앨범 피처링에 참여하면서 부터다. 미국 유학 시절 친구의 제안으로 지원한 한 온라인 커뮤니티 컴피티션에서 입상하면서 그의 러브콜을 받게 된 것. 졸리브이는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제 목소리가 앨범에 실린다는 자체로 기뻤다. 얼마나 대단한 기회인 줄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그 이후로 DJ 쥬스 오빠의 앨범 프로모션을 위해 쇼케이스 무대에 여러 번 올라갔어요. 운이 좋았죠. 그 앨범의 피처링진이 대단했거든요. 가리온, 팔로알토, 마이노스 등 랩 잘 하는 분들이 거의 다 참여했어요. 제게는 그 분들을 한 번에 뵐 수 있는 좋은 기회였어요.”

졸리브이를 향한 래퍼들의 관심은 대단했다. 하지만 당시 한글 래핑에 서툴렀던 졸리브이는 조금씩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게 됐고, 어느 순간부터 상황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자신의 실력적인 부분에 대한 갈증을 절실히 느끼게 되는 순간이었다.

“점점 겁이 나기 시작했어요. 프로 래퍼 오빠들은 매 순간이 힙합이었거든요. 반면 저는 음악을 너무 재미로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부담으로 다가왔어요. 제 경력에 비해 너무 빨리 프로 래퍼들과 작업하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불현듯 ‘난 진짜 음악을 하고 싶은 걸까’ ‘과연 내가 힙합 음악을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 힙합의 본질에 대해 깊이 있게 파기 시작한 것 같아요.”


◆ 힙합의 본질, 메시지에 집중할 것

힙합의 본질(本質), 말 그대로 “뿌리”를 알아내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힙합 음악만 고집하던 졸리브이는 알앤비, 재즈, 클래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각각의 음악에서 오는 영감은 달랐다. 그 결과 가장 중요한 것은 각 장르별 음악이 갖는 느낌, 분위기, 사운드 적인 요소보다 그 안에 있는 “메세지”임을 졸리브이는 깨달았다.

“음악은 무한대의 유기체잖아요. 그럴수록 다양한 방식으로 리스너들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안에 존재하는 메시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쉽게 설명해서 화려한 포장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속의 선물이 무엇이며 제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한 것 처럼요.”

대화가 깊어질수록 졸리브이에게서 힙합에 대한 깊은 애착을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이 지금껏 걸어온, 아니 우직하게 파온 힙합 음악에 대한 졸리브이만의 소신이 대화 곳곳에 묻어났다.

“힙합은 삶인 것 같아요. 속설 중에 힙합 장르가 DJ 쿨 허크(DJ Kool Herc)가 집 뒷마당에서 사람들을 불러 놓고 음악을 틀고 파티를 하면서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것만 봐도 그 DJ는 파티를 하는 과정에서 즐거움, 삶의 행복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한 거라 생각해요. 어떤 상황 안에서 많은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것. 다른 장르보다 조금 더 솔직하고 가감 없이 표현할 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힙합은 삶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관통하는 장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 힙합 열풍, 이제 방향성이 관건

힙합에 대한 대중적 관심과 이에 따른 여성 힙합 뮤지션 시장의 확장에 대한 졸리브이의 생각은 어떨까. 오랜 시간 언더 힙합 씬에서의 활동은 물론 최근 Mnet ‘언프리티 랩스타’를 통해 여성 힙합 붐을 일으킨 주인공 중 한 사람이기에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성별을 떠나서 한국 힙합 시장 자체가 예전에는 돛단배였다면 지금은 타이타닉 급으로 커진 것 같아요. 사람들도 라임이나 펀치라인 같은 힙합 용어도 알게 됐고, 어느 정도 개념을 갖기 시작했잖아요. 이제 시장의 크기보다 이제 중요한 건 방향성 문제라고 생각해요. 타이타닉이 출항은 했는데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하면 큰일 나잖아요? 여성, 남성 모든 힙합 뮤지션들이 책임감을 갖고 나아가야 하는 부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졸리브이는 여성 힙합 뮤지션들의 책임감을 다시 한 번 언급하며 안타까운 마음을 내비쳤다. 한 마디 한 마디 조심스러운 어투로 이어갔지만 분명 뼈 있는 일침이었다.

“처음 제가 힙합 씬에 왔을 때 함께 으쌰으쌰 하던 여성 뮤지션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해가 지나면서 ‘음악 안 할래’ ‘랩 재미없어’ 하고 떠나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제가 너무 좋아하는 힙합을 가볍게 보는 것 같아서 슬퍼지더라고요. 그러한 상황들이 반복됨에 따라 교류 자체가 무서워졌어요. 왠지 상처받을 것 같다고나 할까요. 쉽게 포기하는 여성 뮤지션들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책임감 있게 묵묵히 음악 작업에 몰두하면 될 거라 생각했어요. 비단 여성 힙합 뮤지션들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하지만 여성 뮤지션들이 조금 더 책임감 있게 힙합 음악에 임해야 하는 것은 맞는다고 생각해요.”


◆ 초심으로 돌아간 ‘어 드림(A Dream)’

졸리브이는 그의 힙합에 대한 꿈과 소신에 대해 14일 발표한 새 싱글 ‘어 드림(A Dream)’에 담아냈다. 이날 졸리브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새 앨범을 소개하며 어린아이와도 같이 연신 들뜬 기색을 내비쳤다.

“저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생겼어요. 그때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초심으로 돌아가자’였어요. 힙합 뮤지션을 꿈꿨던 시절을 떠올렸죠. 어떻게 보면 지금 저는 꿈을 이뤘고, 살고 있잖아요. 이제 더 큰 꿈을 꿔야 하는데, 그러려면 진짜 더 제 자신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 앨범에는 힙합 뮤지션의 꿈을 꾸던 지난날의 졸리브이를 되돌아보며 자아성찰 하는 내용의 ‘어 드림’과 그에게 음악적 영감을 줬던 힙합 뮤지션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담은 ‘투 나스(To Nas)’ 등 2개의 트랙이 수록됐다.

특히 졸리브이는 타이틀곡 ‘투 나스’를 설명하며 “제가 정말 좋은 래퍼일까, 제가 정말 노력을 많이 해서 이 자리까지 왔지만 과연 그들 앞에서 당당한 뮤지션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과 마주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까 싶었고, 그들이 제 커리어를 보며 ‘졸리브이, 정말 수고했고 잘 했어’라는 말 한마디만 해 준다면 그 자체에서 위로가 될 것 같았다”고 털어놨다.

마지막으로 “이상적인 여성 힙합 뮤지션”에 대해 물었다. 졸리브이가 생각하는, 그리는, 꿈꾸는 힙합 뮤지션은 어떤 모습일까.

“의심의 여지없이 랩을 정말 잘 하고 싶어요. ‘여자치고 잘 하네’가 아니라 ‘역시 졸리브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여성 뮤지션이기 때문에 갖고 있는 카드는 분명히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힙합은 삶이고 제 모습 그대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제 스타일과 실력으로 승부를 보는 게 가장 우선인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 했던 이야기는 곧 제 스스로 하는 말이니까요. 그만큼 책임감과 자신감 갖고 제 모습 그대로 담은 음악을 통해서 많은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사진제공: 소울라임사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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