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이린 인턴기자 / 사진 백수연 기자] “큰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 소중해요. 성공이 주는 성취감도 있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실패가 더 소중하죠.”
‘실패’라는 단어가 웃고 있는 이의 입에서 나올 줄이야. 천만 영화 ‘왕의 남자’로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자리매김한 이준익 감독이 ‘라디오 스타’ ‘님은 먼 곳에’ ‘소원’ 등 다수의 작품을 거쳐 ‘사도’로 관객들을 만났다. 개봉 직후 한경닷컴 bnt뉴스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이준익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사도’는 어떤 순간에도 왕이어야 했던 아버지 영조(송강호)와 단 한 순간만이라도 아들이고 싶었던 세자 사도(유아인), 역사에 기록된 가장 비극적인 가족사를 담아낸 이야기. 아버지에 의해 뒤주에 갇혀 8일 만에 죽음을 맞이한 사도세자를 재조명해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에 이르기까지 조선왕조 3대에 걸친 비극을 그려냈다.
이미 임오화변은 대중들에게는 익숙하다. 하지만 송강호, 유아인 두 천만 배우와 이준익 감독이 만나 단지 역사적 사건으로만 그려지기보다 이들의 인과관계에 초점을 둬 그들의 시선을 따라간다. 소위 말해 3대에 걸친 이들의 ‘집안일’을 프레임 안에 담아냈다. 이준익 감독은 여기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극을 많이 찍으니까 역사를 다루는 관점에 대해 신중한 선택을 하려고 해요. 아픈 역사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갖고 있는 삶의 모습을 직시하는 것을 통해 반드시 얻는 것이 있습니다. 과연 사도세자와 영조의 관계에서 나오는 비극에서 어떤 걸 얻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다 아는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다른 관점으로 사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 현대 사람에게도 나타나는 유사 관점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비극으로 이르는 과정 안에서 개개인이 겪거나 안고 사는 감정과 심리 말이에요. 그리고 그렇게 이 영화에서는 뒤엉켜있는 모든 것들을 정조의 마음으로 끝내려는 시도를 했습니다.”
감독의 말대로 그는 사극 장르에 유독 강하다. 역사적 사실을 1차적으로 안고 가야하는 장르인 만큼 현대극보다 감정 표현이 익숙하지 않은 것이 사실. 하지만 이준익 감독은 “감정은 배우들의 몫이다. 특별한 디렉팅은 원래 잘 안한다”고 답하며 배우들을 향한 굳은 신뢰감을 드러냈다.
“배우들이 맡은 역할에 몰입해서 만드는 것이 감정이에요. 배우들이 어려운 거죠. 이번 영화에서도 배우들이 감정이 동화될 수 있는 밀도있는 연기를 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원래 저는 특별한 디렉팅을 잘 안하는 감독이에요. 시나리오 안에 그 배우가 어떤 감정으로 가져와야될지가 써있기 때문에 이미 배우들은 현장에 감정을 가지고 오죠. 그 감정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감독이 사전준비과정을 해놓고요. 그리고 감정을 가져온 배우가 감정을 발산시키죠. 감독는 배우의 감정에 의존한다고 봅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이준익 감독은 역사적 사실보다는 ‘집안일’에 초점을 맞춰 부자지간의 참혹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리고 이들의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되며 그려진다. 하지만 절대 산만하지 않다. 이준익 감독은 사도가 영조에게 느끼는 감정들과 영조가 사도에게 친국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리고 아들이자 손자인 정조의 마음까지 모두 헤아렸다.
“사도는 영조의 아들이기도 하지만 정조의 아버지이기도 해요. 아버지의 사도와 아들로서의 사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아버지 영조의 기대에 어긋나게는 과정을 지나 결국에는 광증까지 가는 영조의 아들로서의 무능함과 정조 앞에서 드러나는 아버지의 관대한 두 양면성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습니다. 사도는 자기 아버지와는 불통이었지만 자기 아들과는 소통을 하니까요.”
영조와 사도, 그리고 정조까지 세 인물들의 갈등의 굴레가 125분이라는 짧고도 긴 시간 안에서 몰아친다. 감독에게 사도와 영조 어느 인물에 더 애착이 가냐고 물으니 대답은 사도도 영조도 아닌 “정조”였다. 가장 신경 쓴 장면 역시 마지막 정조가 아버지를 그리며 춤을 추는 장면이라고 말할 정도로 이토록 공을 들인 정조 캐릭터는 소지섭이 열연을 펼쳤다.
“감독은 영화의 마지막을 책임져야하기 때문에 정조의 관점으로 바라보면 더 풍부하게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물론 두 톱배우가 있다 보니 그쪽에 감정을 이입하게 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영화를 조금 더 자세하고 풍성하게 보는 방법 중 하나는 정조의 눈으로 보는 거 아닐까요. 감독이 봐야할 눈도 역시 정조의 눈이고요.”
“관객 분들이 비극적인 죽음을 기억하고 있는 정조의 마음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소지섭의 눈이 그런 정조의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할거라고 생각했어요. 잘생기기도 했지만 슬픔을 담고 있지 않으면 그냥 조각일 뿐이겠죠. 하지만 소지섭이 갖고 있는 건 아름다운 슬픔이라고 생각해요. 오묘한 그 슬픈 눈이 불쾌하지 않고 그 슬픔이 영롱하고 아름다움이 있어요. 그게 그의 차밍포인트예요. 그 눈빛이 정조의 마음을 담을 수 있다고 봅니다.”
‘사도’는 16일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다. 23일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2일 15만 550명의 관객을 동원해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했다. 누적 관객수는 196만 1106명이다. 그리고 ‘서부전선’ ‘탐정: 더 비기닝’ 등 추석을 겨냥한 작품들이 ‘사도’와 맞붙을 준비를 마쳤다.
“우리 영화는 가슴 아픈 영화이면서 가슴 아픈 게 아름답게 남았으면 좋겠어요. 슬픔이 괴로움으로 남아있으면 불행하지 않을까요? 과거를 괴로움으로 갖고 있으면 불행할거예요. 가슴 아픈 비극이지만 아름다움으로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가족사는 결국 역사니까요.”
대한민국 대표 감독으로 칭해지는 그도 ‘황산벌’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등 잇따른 흥행 부진으로 잠시 주춤했던 시기가 있었다. 끊임없는 성공과 실패의 반복에도 이준익 감독은 지금 이 자리까지 왔다. 연기가 배우들에게는 에너지이자 삶인 것처럼 그 연기를 담아내는 감독의 에너지는 무엇일지 문득 궁금해졌다. 이준익 감독이 내놓은 답은 ‘호기심’이었다.
“큰 실패를 많이 하는 사람이라 성공과 실패의 반복이 소중해요. 성공이 주는 성취감도 있지만 실패가 주는 교훈이 더 강합니다. 그래서 실패가 더 소중하죠. 성공은 나누는 거지만 실패는 혼자 간직하지 않나요? 남는 건 감독의 책임입니다. 감독은 실패를 간직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실패의 교훈이 더 강하게 남는 거고요.”
“어떻게 영화가 그 개인차를 충족시킬 수 있을까요? 오히려 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감사하지만 좋아하지 않는 분들에게는 미안함을 갖고 있습니다. ‘평왕성’때는 은퇴도 생각했어요. 성공의 호기는 독이라는 과거의 상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bnt뉴스 기사제보 star@bntnews.co.kr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