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의 馬車 이야기⑤]말의 숫자와 마차, 그리고 자동차

입력 2015-09-23 08:30  


 지난 4회에는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페이톤과 태양마차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번에는 말(馬)을 중심으로 한 마차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인류과학 문명의 발달이 그렇듯 말과 마차의 역사도 전쟁에서 비롯됐다. 오리엔트와 이집트 등의 유적지 곳곳에는 말이 그려져 있다. 한 마리 또는 두 마리가 끄는 2륜 전차가 증거다. 하지만 중국은 일찌감치 은나라와 주나라에서 사마(四馬)라 불리는 네 마리의 전차가 있었으며 당시 왕릉에는 마차가 차장, 사수, 마부를 태우고 말이 멍에에 매인 채 매장되기도 했다.  
 




 그러나 BC 8세기경부터 기마병이 생겨 전쟁은 전차에서 기마전으로 양상으로 변모했다. 이 때부터 군사용 마차는 승용 및 화물 운반용으로 변경돼 바퀴 숫자도 두 개에서 네 개로 늘어났다. 보다 많은 화물을 적재하기 위해 앞뒤 공간을 늘렸으니 네 바퀴는 당연했다. 

 그런데 마차는 일반적으로 바퀴 숫자에 따라 명칭이 다르지만 마차를 끄는 말의 숫자도 기준이 된다. 보통 말 한 마리가 끌 때는 그냥 마차, 두 마리는 쌍두마차, 4마리는 사두마차, 6마리인 경우에는 육두마차라 부른다. 하지만 동서양 할 것 없이 마차에 말을 최대 8마리 이상 매달지 않았다. 이유는 6마리가 가장 좋은 속도와 힘을 낼 수 있어서다. 8마리가 넘으면 오히려 말들 간 속도 유지와 힘의 배분, 마차의 무게 균형을 이룰 수 없어 사용하지 않았다. 자동차에 비유하면 8기통보다 6기통을 더 선호했던 셈이다.

 물론 견인하는 말의 숫자는 탑승자의 신분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양 기준으로 최대 6마리, 동양은 4마리가 황제를 상징하는 견인마의 숫자다. 하지만 특이하게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오두마차를 즐겨 탔다고 한다.

 지금도 서양에서 이어져 오는 마차 경주는 여전히 부유층들의 인기가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말(馬)의 능력인데, 특히 속보(Trot)가 승패를 좌우한다. 이에 따라 품종 개량자들은 속보 능력을 키우는데 집중, 러시아의 '올로브 트로터(orlov trotter)', 프랑스의 '프렌치 트로터(French Trotter)', 미국의 '스탠다드브레드(Standardbred)'라는 세 가지 말의 품종을 만들어 냈다.  
  
 우선 올로브 트로터는 스탠다드브레드가 개발되기 전까지 모든 트로터들 중 가장 유명했다. 러시아 경주마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올로브'라는 이름은 모스코 근처에서 올로브 종마를 창립한 '카운트 알렉스 올로브(1737~1809)'라는 사람의 이름에서 따왔다. 그는 그리스에서 '스메탄카'라는 이름의 회색 아랍 종마를 수입하다 지속적인 교배를 통해 올로브 품종을 생산했다고 한다.  
 
 올로브가 러시아에서 유명세였다면 1784년 덴마크 암말과 스메탄카 사이에서 회색 털빛의 견인마 '폴칸'이 태어났다. 폴칸은 '바스(Bars) 1세'를 낳았는데, 이 말이 후에 올로브 트로터의 아빠 말이 된 주인공이다. 바스 1세는 아랍말, 네덜란드와 덴마크의 암말들 뿐 아니라 영국에서 수입된 잡종마와 교배됐으며, 19세기 초 잠시 러시아에서 계획적인 훈련과 마차경주에 출전한 덕분에 해당 품종의 발전이 지속될 수 있었다.

 더러브레드가 평지 경주나 장애물 경마 경기용에 사용된 것처럼 미국의 스탠다드브레드는 마차끌기 경주용에 맞춰진 품종이다. 지난 세기에 마차끌기 경주가 있었던 나라라면 어디서든 스탠다드브레드를 수입해 사용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스탠다드브레드의 조상은 갤럽(전속력 경주)에만 출전했던 잉글리시 '토로브레드(English Thoroghbred)' 품종인 '메신저'이다. 1780년 메신저는 평지 경주에 3시즌이나 출전, 14번 중 8번을 우승했다. 덕분에 메신저의 후손 역시 훌륭한 평지 경주마로 자라나는데, 이 말이 명성을 얻게 된 것은 속보 때문이다. 메신저의 증손자인 햄블토니안은 트로터들의 종마로 크게 활약했고, 햄블토니안의 네 아들인 조지 윌크스, 딕테이터, 해피 미디엄, 일렉셔니어는 사실상 오늘날 모든 미국 마차끌기 경주용의 종마로서 역할을 했다.

 마지막인 '프렌치 트로터'는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품종이다. 19세기초부터 순수 혈통마와 혼혈마로 이뤄진 자신들만의 고유 종(種)을 발전시킨 프랑스는 1806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 경주대회회를 통해 프렌치 트로터의 마차 견인력을 확인했다.     

 이처럼 탁월한 견인마들은 언제나 이동 수단의 역할에 충실했다.  덕분에 마차 이름도 말의 숫자에 따라 달라졌다. '해크니(Hackney)'는 보통 두 마리가 끄는 6인승 마차를 말하지만 거의 모든 전세 마차는 '해크니'로 통했다. 1654년 런던과 근교에서 영업허가를 얻은 해크니 역마차는 300대가 운행됐으며 1832년에는 1,200대가 됐고, 18세기에는 미국에서도 이용됐을 정도로 지금의 택시 역할을 수행했다. 이런 이유로 말(馬) '해크니'는 명성에 걸맞게 견인마로서 최적화 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물론 말과 자동차의 관계는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동력이 말에서 엔진으로 바뀌었을 뿐 운송수단이라는 점과 겉으로 부와 지위가 드러나는 아이템이라는 개념 자체는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승용차를 지칭하는 '살룬'은 과거 4~6인승 마차를 의미했고, 이 형태에서 문이 2개면 쿠페(2인승 4륜마차)가 됐다. 또 4인승 2도어 컨버터블은 카브리올레(접이식 덮개의 2륜마차), 4도어의 대형 컨버터블은 페이톤(접이식 덮개의 4륜마차)이라고 했다. 캡(택시)과 버스의 어원은 카브리올레와 옴니버스의 줄임 말이다. 그러니 말과 자동차는 여전히 현재에도 공존하는 셈이다.

 송종훈(말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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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종훈의 馬車 이야기③]종(種)의 기원 꿈꾼 에쿠스(EQUUS)
▶ [송종훈의 馬車 이야기④]태양을 품은 폭스바겐 페이톤(Phae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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