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전산화가 없애는 자동차 문화의 다양성

입력 2015-12-01 09:10  


 '응답하라 1988'이 인기다. 덕분에 그 시절 식료품, 음악, 광고, 패션 등 향수를 자극하는 문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이른바 '레트로(retro)'로 정의되는 '복고(復古)' 문화다. 하지만 오래된 것 중에는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가는 것들도 꽤 많다. 특히 자동차가 그렇다.

 대표적인 게 번호판이다. 길을 가다보면 일반 승용차 가운데 '서울 1가 XXXX', '경기 42러 XXXX', '부산 27너 XXXX', '광주33 나XXXX' 등의 지역표시 번호판을 드물게 볼 수 있다. 전국 번호판으로 변경되기 이전의 번호여서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른바 클래식 '번호표시'인 셈이다. 번호판이 발급되던 당시의 과거의 추억을 안고 여전히 도로를 질주하고 있다.






 지역별 번호에서 전국 통합 번호제도가 도입되면서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이면 차를 거래할 때 지역표시 번호판을 변경하지 않아도 됐다. 그러나 얼마 전부터는 자동차 소유주가 주소지를 이전한 경우를 제외한 소유권 이전의 경우 지역표시 녹색번호판은 무조건 흰색의 전국번호판으로 교체해야 한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정책과에 물어보니 자동차 등록령 24조 3항에 의거해 무조건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너무 궁금해서 '자동차 등록령 24조 3항'을 찾아보니 "등록번호의 부여체계가 변경돼 해당 등록번호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 경우"라고 돼 있다. 물론 24조는 2013년 3월23일에 개정됐는데, 다른 항들도 있지만 결국 몇 달전까지 유예기간을 준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런 변경 방식에 올드카 매니아들의 아쉬운 마음은 이루 표현할 수가 없다. 몇몇 올드카 매니아들은 자동차 번호판을 살리기 위해 사람이 주소지를 변경하면 되지 않느냐며 웃을 수 없는 슬픔을 표현한다. 

 물론 보통의 시각에서 자동차 번호판으로 보면 그리 문제될 건 없다. 그저 자동차에 부여된 문자와 숫자일 뿐이어서다. 하지만 해당 번호판과 10여년, 20여년, 30년을 지내다 보면 어느 새 그 숫자와 문자는 자동차 소유주와 인생의 연결고리가 돼 있다. 또한 번호판은 그 시절의 시대적 상황을 표현할 수도 있고, 그렇게 클래식이 만들어진다.
 
 1990년 지역표시 녹색 번호판은 지금의 번호 부여 규칙에 맞지 않는 퇴물같은 느낌이지만 대한민국 변화의 중심에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해당 번호판이 시대 상황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시 국내 수입차는 지역 옆의 번호가 '0'으로 시작했다. 그래서 '서울 0가 XXXX'의 경우 국가기관에 소속된 차라는 오해의 소지도 있었다. 이런 이유롷 당시 수입차를구매자는 '0'을 다른 숫자로 변경하기도 했다. 

 지금은 전국번호판이 긴 번호판, 짧은 번호판 2가지로 양분해서 사용되고 있다. 물론 어느 시기가 되면 긴 번호판만 사용하게 될 것이다. 또, 어느 시기가 되면 긴 번호판에서 다른 번호판으로 변경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국가가 정해놓은 규칙이니 따르는 것은 타당하겠지만 규칙은 과거에도 국가가 정했고, 지금의 국가가 정한다. 그렇다면 보다 유연한 방법으로 타협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동차 문화를 만들겠다는 목소리는 많지만 정작 제도는 문화의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녹색의 지역표시 번호판에 대한 국가의 유지관리 기능에 비용이 발생한다면 다수의 이익을 위해 소수는 따라갈 수도 있다. 그런데 전산처리 과정 이외 유지 관리 하는 것에 큰 어려움이 없다면 이전 지역번호판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문화의 다양성를 포용하면서 인정해 줄 수 있을 때 자동차 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산 처리 과정 때문에 클래식 번호판이 사라져야 한다는 것,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는 어디로 갔는지 되묻고 싶다.

 박재용(자동차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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