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렛미인’ 오승훈, 레이스의 출발점에서

입력 2016-02-18 14:29   수정 2016-02-18 16:02


[bnt뉴스 이승현 기자 / 사진 김강유 기자] 무대 위 새롭게 나타난 낯선 얼굴에 시선을 뺏긴다. 낯설다는 느낌도 잠시 뿐 금세 그의 연기에 몰입해 공감하게 된다. 공연이 끝난 후 확인한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연극 ‘렛미인’이 그의 첫 무대라니.

‘렛미인’은 또래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결손 가정의 외로운 십대 소년 오스카와 그의 옆집에 이사 온 뱀파이어 소녀 일라이가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은 오스카, 일라이, 그리고 일라이의 옆에서 한평생 헌신하지만 늙음으로 인해 자신의 자리를 잃어버리는 하칸. 이 세 사람을 중심으로 어떻게 해도 서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독과 어둠에 갇힌 사람들과 추락하는 순간 구원의 손길처럼 찾아온 사랑에 대한 이야기다.

최근 ‘렛미인’에서 오스카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배우 오승훈이 bnt뉴스와 만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의 긴장감보다는 설렘과 행복을 느끼는 그의 모습에 배우는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합격 소식에 들떴던 것도 잠시였을 뿐 부담이 되기 시작했어요. 제가 무대에 서 본 경험이 없잖아요. 오스카는 무대에서 퇴장을 거의 하지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한 시간 가까이 연기를 멈추지 않고 한다는 게 엄청난 집중도를 필요로 했죠. 처음 1막만 총 리허설을 한 날 속이 아파 밥도 못 먹을 정도였어요.”

“카메라 연기는 몇 번 해봤지만 무대랑은 완전히 다르잖아요. 선배님들과 연출님들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죠. 그리고 그걸 그대로 흡수하려고 정신없이 보냈어요. 그렇게 연습에 매진하다보니 어느 순간 제 안에 뭔가 쌓이는 느낌이 들면서 자신감이 생기더라고요. 예전에는 1막만 돌아도 땀이 흥건했는데 두 시간 동안 집중력을 잃지 않고 연기를 하는 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죠.”

극중 오스카는 체력이 약하고 뜀틀 하나 제대로 뛰지 못하는 약하디 약한 소년이다. 실제 오승훈은 연기를 시작하기 전 긴 시간 체육을 전공해왔던 바. 실제 갖고 있는 체력을 숨기며 오스카의 약한 체력을 표현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터.

“안 되는 척이 안 되서 너무 힘들었어요. 무대 위에서 연기를 열심히 해야 되는데 열심히 해야 되는 연기가 뜀틀을 못 하는 연기잖아요. 근데 자꾸 몸이 먼저 반응하는 거예요. 열심히 하면 몸이 이미 뜀틀을 넘어가 있어요(웃음). 그래서 못 넘는 방법을 연구하지 않고 열심히 넘는 걸 표현하려고 했어요. 물론 못 넘는 척이 들어가긴 해야겠죠. 그렇지만 그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이 약한 아이가 체력을 키우기 위해 열심히 뜀틀에 도전하는 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너무나 외롭고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일라이와 같은 존재가 다가와 손을 내민다면 그 손을 잡게 될까. 잠시 생각을 하던 오승훈은 “무서울 것 같지만 끌려갈 것 같다”며 일라이와 오스카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일라이도 오스카에게 진심이잖아요. 어쩌면 다른 목적이 조금 있을 수는 있지만 90%는 사랑이라고 봐요. 사랑이 없었다면 일라이가 오스카에게 하는 말과 행동들은 있을 수 없었을 것들이니까요. 오스카한테 그렇게 다가온 친구는 일라이가 처음인거예요. 게다가 그 친구가 여자고요. 얼마나 좋으면 남자여도 상관없으니 사귀자고 했을까요.”

“일라이가 오스카의 눈앞에서 뱀파이어의 모습을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오스카는 일라이를 택하고 가지 말라 애원해요. 그의 삶에 일라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큰 지 보여주는 부분이죠. 일라이가 떠난 후에도 오스카는 혼자서 어떻게든 그를 추억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 감정이 저한테 많이 와 닿은 것 같아요.”

‘렛미인’은 분명 웃긴 장면도 존재하고 무브먼트라 칭하는 특이한 안무처럼 극 안에 많은 볼거리를 담고 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건 오스카와 일라이의 진실된 사랑. 오승훈의 말에 의하면 존 티파니 연출은 배우들에게 늘 두 사람의 예쁜 사랑을 요구했다고. 그렇다면 일라이 역을 맡은 배우 이은지, 박소담과의 호흡은 어땠을까. 오승훈은 웃으며 두 일라이의 다른 점에 대해 설명했다.

“연출님이 은지씨한테는 좀 더 사람 같지 않고 400년을 살아온 뱀파이어 느낌을 부탁한 걸로 알고 있어요. 그리고 생각해보시면 오스카와 일라이가 처음 만나는 한 겨울에 티 한 장 걸치고 있으니 참 이상한 존재긴 하죠. 두세 번째 만남까지 오스카는 일라이를 경계해요. 은지씨는 오스카가 일라이를 경계하고 그 경계가 풀어지는 과정의 흐름을 부드럽게 만들어줘요. 그래서 정말 오스카로서 변화하는 모습을 느끼게 해준 것 같아요.”

“소담씨는 오스카랑 있을 때 사랑스러운 일라이로 변해요. 하칸이라는 존재가 있긴 하지만 일라이는 400년을 살았음에도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을 몰라요. 사람을 대하는 데에 있어서는 분명 순수한 아이겠죠. 그래서 그런지 소담씨는 소녀가 소년을 건드리는 느낌이 들어요. 은지씨는 뱀파이어로서 건드린다면 소담씨는 소녀로서 오스카에게 다가온다고 해야 될까요?”


영화 ‘당신의 계절’과 가수 박지헌의 ‘다시 겨울’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경력이 있는 오승훈은 ‘렛미인’을 통해 배우로서 자리매김을 해나가고 있다. 이제 출발 선상에서 레이스를 시작한 그는 “항상 진실된 배우이고 싶다”며 앞으로 꿈꾸는 배우 오승훈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거짓말하는 걸 안 좋아해요. 연기에서도 마찬가지죠. 배우는 연기가 거짓이지 않기 위해 채워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대사를 읊고 지문을 이행하는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납득을 해야 하는 거죠. 제 스스로가 정확히 알고 행한다면 그건 거짓이 아닌 디테일일 테니까요.”

“요즘 노래를 배우고 있어요. 최근에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을 감명 깊게 봤어요. 한지상 선배님의 연기를 보고 나중에 시간이 흐른 뒤 꼭 괴물 역을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리고 영화 ‘타짜’를 보고 조승우 선배님한테 정말 반했어요. 선배님은 역할 그 자체였어요. 정말이지 배우가 보인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었어요. 무대랑 스크린을 오가시는 모습이 정말 멋지신 것 같아요. 또 영화 ‘내부자들’ 보면서 이병헌 선배님은 연기 천재가 분명하다고 느꼈어요. 어떻게 그렇게 진실된 연기를 하시는 건지 정말 감탄만 나왔다니까요.”

“‘렛미인’이 첫 작품임에도 스스로 자신 있을 정도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후회하지 않게 해드릴 테니 꼭 기대되는 발걸음으로 와주세요(웃음).”

오승훈의 레이스는 시작됐다. 이제 막 출발선상을 벗어나고 있는 오승훈은 가야할 길을 걱정하기보다 현재의 걸음에 감사해 한다. 꾸준히 스스로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그의 내일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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