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동주’ 박정민, 힘차게 날아오르다

입력 2016-02-19 17:44  


[bnt뉴스 이린 기자 / 사진 황지은 기자] 모든 것이 불(不)이었던 일제 강점기, 유(有)를 위해 그 불합리함에 맞섰던 이들. 독립 운동가 송몽규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배우 박정민이 영화 ‘동주’에서 윤동주 시인의 그늘에 가렸던 그의 값진 청춘의 기억을 꺼냈다.

최근 bnt뉴스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영화 ‘동주’(감독 이준익)에서 독립 운동가 송몽규 역을 맡아 열연을 펼친 박정민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동주’는 사건에 더해 인물에 더욱 초점을 맞춰 온전히 윤동주와 송몽규에 집중한다. 그렇기에 모든 이야기를 함께 이끌어 나가야 했던 박정민, 그리고 강하늘은 그 부담에 맞서 싸워야했다. 더군다나 한 번도 영상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이들의 이야기였다. 박정민은 처음 ‘동주’를 만났을 당시 이준익 감독과의 작업이 믿어지지 않았다고 운을 뗐다.


“감독님께서 시나리오를 보내 주시면서 몽규 역을 ‘너가 하겠다면 하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어마어마한 선배님들이랑 작업을 하시는 분인데 절 주연으로 쓰시겠다고 하셔서 처음에는 믿지 않았죠.”

“첫 미팅 날 ‘미팅을 해보고 결정하겠지, 오디션을 보시겠지’라고 생각하고 2대8 머리에 안경을 쓰고 갔어요. 감독님께서 절 보자마자 ‘너가 정민이야? 송몽규 선생이랑 닮았네’라고 하셨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제 안에 확신이 없으니까 말을 못하겠더라고요. 혹시나 무산될까봐 ‘네, 아니오’만 했어요.”

그렇게 몽규 역을 맡은 박정민은 바빠지기 시작했다. 익히 보고 들어 누구나 알고 있는 윤동주 시인이 아닌 다소 생소한, 하지만 기억되기에 마땅한 독립운동가 송몽규였다. 그를 알려야 했고 그가 돼야 했다. 그 길로 박정민은 크랭크인을 앞두고 무작정 중국 연길로 사비를 들여 비행기를 탔다.

“사흘 동안 다녀왔어요. 도착하고 다음날 오전 용정으로 출발해서 윤동주, 송몽규 선생님의 생가와 대성중학교를 들른 후 용정마을의 중심에 있는 용두데 우물에 갔어요. 그때 그 시대의 느낌은 나지 않았지만 그 분들이 밟았던 땅, 그 분들이 보셨던 산, 들녘을 보는 거잖아요. 마지막으로 묘소에 가서 절을 하는데 ‘지금 그깟 연기 한 번 잘하겠다’고 함부로 찾아온 게 너무 부끄럽더라고요.”

“육성으로 ‘정말 죄송하고 도와주실 거 없고 제가 열심히 누가 안 되게 잘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함부로 찾아와서 죄송하다고 제 나름대로의 고사를 지냈어요. 그런데 가만히 앉아있는데 갑자기 까마귀 떼가 사방에서 날아오더라고요. 기독교권나라가 아닌 데는 까마귀가 길조잖아요.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박정민은 시작부터 끝까지 송몽규를 이해하기 위해 고민했다. 그는 ‘치열함’에서는 공감했지만 ‘행동함’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며 송몽규에 대한 깊은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박정민에게 송몽규는 무겁지만 벗고 싶지 않은 옷이었다.

“그분의 뜻을 훼손시키면 안 되잖아요. 나의 몸짓, 발짓, 발소리가 송몽규 선생님의 첫 소개라는 생각이 드니 사소한 행동 하나도 허투루 못하겠더라고요. 세상에 잘 내보내면 어떻게 해야 될까에 대한 압박이 가장 심했어요. 이 말을 하시는 이유, 생각을 찾으려고 했어요.”

그렇게 박정민은 송몽규에게 자신의 색을 입혀갔다. 디렉팅을 거의 하지 않는 이준익 감독이기에 그는 소속사 선배이자 배우 황정민의 조언대로 한 장면을 위한 여러 버전의 연기를 준비해가며 송몽규가 되고자 했다.

“송몽규 선생님의 마음을 이해하는 게 중요했어요. 살아가면서 목숨을 내걸고 위험한 행동은 거의 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송몽규 선생님은 세 번이나 하세요. 그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얼마나 부당하고 불합리한 시대였길래 학생이 그런 행동을 하고 선택을 한 건지 해답이 안 나왔어요. 이것들을 탐구하는데 시간을 많이 들였어요. ‘윤동주 평전’을 보면 송몽규 선생님 여동생 분의 증언에서 ‘일본 경찰에게 얻어맞고 풀려나온 후 가슴이 움츠려지는 것 같아서 베개를 베지 않고 잤다’는 일화가 있어요. 그 분 아니면 모르는 선택을 하신 거죠. 공부를 하면 할수록, 알면 알수록 멀어지는 분이었어요.”


‘동주’는 박정민의 생각 역시 변화시켰다. 영화가 너무 좋아 학교도 빠지고 예술의 전당 영상자료원에서 하루 종일 영화만 보던 한 소년, 박정민은 지난 2011년 영화 ‘파수꾼’(감독 윤성현)을 시작으로 ‘들개’(2013), ‘신촌좀비만화’(2014) 등을 지나 ‘동주’를 만나기까지 연기를 포기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박정민은 ‘동주’를 만나고 그 생각에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말한다.

“이미 동주는 저에게 어떤 기억으로 계속 남아 있어요. 제 안에 늘 갖고 있는 무언가가 될 것 같아요. 이 일을 계속 하게 마음을 다잡아 준 작품이죠. 계속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늘 원동력이 돼줄 작품으로 남을 것 같아요.”

현재 박정민은 한 잡지에 지난 2013년부터 ‘언희(言喜)’라는 제목의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한 땀 한 땀 공들인 듯 쓰여 진 그의 이야기가 오롯이 담긴 글에서는 위트와 더불어 배우로서의 진중함도 엿보인다. 과정이 아름다웠던 송몽규처럼 앞으로 날아오를 그의 찬란한 날갯짓이 기대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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