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t뉴스 김희경 기자] 악을 처단하기 위해 악을 저지르는 소녀와 악을 숨기기 위해 더 큰 악을 저지르는 남자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철학적인 악을 수박 겉핥기식으로 만든 악한 감독이 있다.
영화 ‘널 기다리며’(감독 모홍진)는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에게 복수하기 위해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괴물로 변신한 희주(심은경)와 연쇄살인범 기범(김성오)과의 섬뜩한 접전을 그린 수사 스릴러.
극중 희주는 겉으로는 힘없는 피해자로 등장하지만, 내면에는 이미 기범을 뛰어넘을 정도로 악랄한 분노를 안고 있다. 사이코패스 기범은 자신을 뒤쫒는 희주에 당혹스러움과 경이로움, 흥미를 가지며 희주와 마주한다. 살인으로 인간을 심판하려는 그들의 만남은 비슷하지만 매우 다르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영화는 선과 악이 한데 뒤엉켜 관객들로 하여금 어느 주인공도 지지할 수 없게 만드는 애매한 상황을 연출한다. 물론, 선과 악이 뚜렷하지 않는 캐릭터라고 해서 영화의 질이 판가름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문제는 본인이 직접 쓰고 연출한 영화의 철학을 스스로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
희주는 복수를 위해 자신의 집 온 벽에 철학자들의 명언을 포스트잇에 써 붙이고, 희주 또한 명언을 인용한 대사를 현실성이 떨어질 정도로 읊조린다. 또 결말 부분에서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이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라는 니체의 말을 스크린에 띄우며 철학적인 면모를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널 기다리며’의 부제는 어쩌면 ‘널 가르치며’가 아닐까 싶을 정도.
하지만 기자간담회 당시 모홍진 감독은 “저는 철학에 대해 잘 모른다”며 본인의 작품에 무책임한 모습을 보였다. 예술은 예술가의 생각을 토대로 만들어져야 하는데, 예술 작품의 가장 큰 역할을 차지한 감독은 자신의 예술에 어떤 의견도 피력하지 않는다.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은 비주얼이다. 그리고 가장 큰 단점 또한 비주얼이다. 각각의 눈빛을 세밀하게 담거나 긴장감을 높이는 연출은 훌륭하지만, 그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캐릭터들이 갖고 있어야 할 마음의 소리가 보이지 않았다. 대다수의 상업 영화들도 단순한 플롯을 화려한 연출로 승화시키곤 했으나, ‘널 기다리며’는 단순한 상업 영화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주제부터 대중적이지 않다. 감독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배우들의 연기력은 나무랄 곳이 없다. 심은경은 잔혹한 복수극의 향연 중 잔잔한 복수를 안고 가는 희주의 모습을 충분히 드러냈고, 김성오는 사이코패스의 예민함과 디테일함을 더 세밀하게 보여주며 소름을 돋게 만들었다. 다만 그들의 연기력이 담긴 작품의 결과가 아쉬울 따름이다.
한편 ‘널 기다리며’는 오늘(10일) 개봉. (사진출처: 영화 ‘널 기다리며’ 포스터 및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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