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누구나 꿈꾸는 옷을 만드는, 김서룡 디자이너

입력 2016-03-29 11:46  


[이유리 기자 / 사진 김강유 기자, 송다연 포토그래퍼] 아름다운 남성복을 만드는 디자이너 김서룡.

2001년 자신의 이름을 건 김서룡(Kimseoryong) 옴므로 첫 쇼를 치룬 이래 40회 이상 서울패션위크를 빛내고 있는 한국 패션계의 대표 디자이너다. 2016 F/W 컬렉션에서 선보인 그의 옷은 보는 이들에게 언제나와 같이 묵직한 감동을 전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옷을 만드는 디자이너는 누구일까 깊숙이 들여다보고 싶었다. 쇼를 며칠 앞두고 그의 쇼룸을 찾았다. 그는 최종 작업에 여념이 없는 와중에도 베테랑 디자이너다운 여유가 넘쳤다.

디자이너의 허례허식이 아닌 소탈한 인간미가 넘쳤던 그와의 만남은 마치 그의 옷 같았다. 웨어러블한 그의 옷처럼 편안했지만 중요한 자리에 입고 나가고 싶은 옷처럼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연륜이 느껴지고 품위가 있었다. 

Q. 2016 F/W 김서룡 컬렉션에 대해 말해 달라
김서룡 컬렉션의 변하지 않는 주 아이템은 수트이고 특징은 웨어러블함이다. 그렇기에 보는 사람에 따라 ‘늘 똑같다’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런 우려를 불식시키고자 이제껏 스타일리스트, 기자들의 도움을 받았었다. 그런데 도움을 요청하던 사람들이 시간이 흘러 보그 편집장이 되고 다들 직책이 높아져서 도움을 강요할 수가 없더라(웃음). 그래서 이번에는 나 혼자 준비했다.

많은 사람들이 ‘김서룡 컬렉션’하면 컬러감을 많이 떠올리더라. 이번에는 색감도 조금 줄였고 내 나이에 맞는 하이엔드 스타일의 고급화된 옷을 만들었다. 전제적으로 옷의 수량도 줄였기에 옷 한 벌 한 벌이 더 임팩트있길 원했다. 옷 하나를 걸친 것만으로도 그 누구도 부럽지 않은, 그런 옷을 만들고 싶었다.

구제 청바지에 유니클로 티셔츠를 입었더라도 이 코트 하나만 걸치면 굉장히 옷을 잘 입었다는 느낌을 줄 수 있는 옷을 만들고자 했다. 어떤 옷과 비교했을 때 당당하게 제 가격을 받을 수 있을 만큼 퀄리티를 높였고 고급 소재를 사용했다.

나 역시 유니클로나 자라 옷을 입는다. 종로의 빈티지 마켓에서 만 원짜리 청바지를 찾아 입는 즐거움도 안다. 하지만 그런 옷이 있다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날 입고 싶은 옷도 있지 않겠느냐. 사람들에게 내 옷은 그런 옷이면 좋겠다. 평소에 늘 입을 수 있는 옷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입고 싶은 옷 그리고 한 번 사야할 옷이 되었으면 좋겠다. 외국계 유명 브랜드만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보여주고 싶다.


Q. 그렇다면 이번 쇼의 테마는 무엇인가
사실 쇼의 콘셉트를 정하고 옷을 만든 적은 없다. 그래서 말을 만드는 것이 옷 만드는 것보다 더 힘들다(웃음). 옷을 다 만든 후 이렇게 표현하면 사람들이 이 옷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말로 쇼의 테마를 정한다. 이번 테마는 ‘솔로(SOLO)’다. 아이템 하나만으로도 의미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옷을 만들기 전 단계부터 모든 것을 기획하고 계산하진 않는다. 나는 굉장히 즉흥적이다. 이번 쇼의 음악은 이전과 달리 임팩트 있고 간결하다. 음악도 ‘남성복에 어울리는 악기, 드럼, 불규칙이면 더 좋을 것 같아’ 이런 식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한 거다. 그림을 오랫동안 그렸던 습성이 남아있는 것 같다. 막연한 이미지는 있지만 누군가에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디자이너는 내가 선택한 직업이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말을 억지로 만들어내는 일은 나의 하루를 해친다. 그냥 보러오는 사람들이 내 옷을 좋게 봐주고 한 번 입고 싶다고 생각해주면 그걸로 충분하다. 내 옷을 입으면서 디자이너의 고뇌, 인생을 어깨에 짊어질 필요는 없다. 새 옷을 사서 입고나가는 것만큼 기분 좋은 일이 없으니깐.

Q.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심혈을 기울인 아이템은 무엇인가
수트는 변할 수 있는 한계 폭이 좁다. 특히 남성복이다 보니 실루엣을 이상하게 변형시키는 것은 내가 용납이 안 된다. 이번 컬렉션 의상 중 10벌 정도는 퍼, 송치, 가죽 등 고급 소재를 사용했다. 단순하게 구매할 수 있는 옷이 아니라 한 번쯤 ‘장만’해야 하는 옷이다. 딱 봤을 때 가볍지 않은 옷이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사용하고 싶었던 소재를 많이 썼다. 사실 디자이너가 옷을 제작할 때 ‘이것을 얼마에 판매하려면 이 이상의 비용은 안돼’라고 정하는 선이 있다. 이제 나이도 있고 가격에 포기하기 보다는 힘닿는 데까지 만들어보고 싶었다. 내가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을 만들고 싶었고 그것을 만들었기에 행복하다. 

Q. 판매가격이 소비자에게 너무 부담스럽진 않을까
소비자의 취향도 다양하다. 그리고 일단 판매는 나중의 일이니깐 가격은 신경 쓰지 않고 힘닿는 데까지 만들었다. 프린트가 있는 송치는 굉장히 비싸다. 무늬가 있기에 버리는 가죽도 많이 생겨서 일반적인 디자이너가 도저히 사용할 수 없는 금액이 소요된다. 그렇지만 외국에서는 다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신진 디자이너 대부분이 캐주얼한 옷을 다루다보니 제대로 된 남성복, 수트를 만드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는 이를 남성복의 이상한 기류라고 생각한다.

이제 내 또래의 멋을 부릴 줄 아는 고객들을 위한 옷도 필요하다. 긴 시간의 노하우로 옷을 멋스럽게 입는 50대 고객들이 많다.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맨투맨이나 티셔츠를 입고 나가진 않는다. 그런 사람들을 위한 품위 있고 고급스러운 느낌의 옷이 분명히 필요하다. 내가 그들을 위한 옷을 계속해서 만들고 싶다.  


Q. 김서룡 컬렉션의 F/W에서 코트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입는 사람의 몸을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옷이다
옷을 입는 것은 분위기를 입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볼 때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이 옷이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과거가 보이는 것처럼 옷도 마찬가지다. 가끔 사람들이 내게 묻는 질문 중 하나가 ‘그런 옷은 모델이 입는 것 아니냐’는 거다. 그런데 누구처럼 입을 필요가 없다. 옷을 입고 거울을 봤을 때 본인이 가진 베스트만 찾으면 된다.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사람의 실루엣 즉 분위기를 찾아주는 거다. 내가 맞춤을 하는 이유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쇼에 선보인 옷을 기준으로 입는 사람에 맞게 칼라를 조금 줄이거나 길이를 정확한 선에서 자르는 거다. 이런 것을 반영해서 패턴을 만든다. 그래서 패턴이 중요하다.

Q. 김서룡이 추천하는 좋은 코트는 무엇일까
나는 블랙코트를 입는데 젊다면 카멜 계통도 좋을 것 같다. 나는 가장 기본적인 블랙이 좋다. 블랙은 어떤 옷에 입어도 어울리는 색이다. 컬러가 있는 코트들은 맞춰 입기 어려워 나 역시도 가끔 매치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고가의 옷을 구입할 때는 베이직 컬러를 사는 것이 맞고 기분전환을 하고 싶다면 그때의 유행에 따라 컬러감이 있는 것이 좋다. 수트, 코트, 셔츠는 어떤 시대에도 변하지 않는 아이템이다. 가장 클래식하고 기본적인 형태의 옷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일 좋다. 교과서적인 것이 가장 오래 입을 수 있고 품위 있는 옷이다.

Q. 김서룡의 옷은 오리지널 핸드메이드 제작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디자이너로서 육체적으로 힘든 점은 없나
오랫동안 함께 해온 전문가들이 있고 주문받는 양이 정해져 있기에 생각하는 것만큼 힘들지 않다. 스케줄을 조정해서 예약을 받고 맞춤의 경우 사이즈를 잰 후 내가 종이패턴을 만들어 하루 만에 넘긴다. 모든 과정은 열흘 정도 소요된다. 내가 패턴을 바로 그릴 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기존 고객이 2/3 정도이기에 사이즈를 측정하는 일도 그렇게 많지 않다. 그들은 메일이나 모바일메신저로만 주문할 정도다. 그리고 내가 일이 버겁게 느껴지면 하지 않는다. 나는 집, 차, 시계 등에 관심도 없는데 열심히 돈 벌어서 무엇 하겠나(하하).

Q. 김서룡의 옷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이들인가
정말 다양하다. 결혼할 때라도 한 번 입어봐야겠다는 마음으로 오는 사람들이 가장 많다. 그리고 지금껏 내가 보여준 브랜드의 이미지를 기대하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입었을 때 과하지 않고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옷이라 그런 것 같다.

여성 옷을 많이 만들지는 않지만 여성복을 찾는 고객이 40% 정도다. 대부분 30~40대의 직장여성들이다. 20대 고객들은 자신이 가진 모든 옷을 팔아서 오는 경우도 있다.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옷에 포커스를 맞추고자 하는 고객들이 많다. 오히려 그들이 과감한 옷을 선택한다. 내가 볼 때 정말 평범한 50대 남성이 이성에게 좋은 모습을 보이고자 내 옷이 실린 잡지를 들고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Q. 자신의 옷을 입고 만족하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남다를 것 같다
분명 입히는 즐거움이 있다. 특히 결혼식은 보통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날인데 그런 날 내 옷을 입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을 보면 디자이너로서 매우 기분이 좋다. 나를 신뢰한다는 소리니깐. 재작년에는 여성복을 론칭하기도 했고 작년 봄에는 드레스를 선보일 계획이었다.

지금도 지인들에게는 드레스를 종종 만들어준다. 작년에 한창 기획 중에 김나영이 결혼식에 입을 옷을 부탁해서 만들어주기도 했다. 작년에는 놀다가 시기를 놓쳤는데 이번 쇼가 끝나면 작업하던 것을 마무리해서 자그마한 쇼케이스를 열어볼까 생각중이다. 


Q. 디자이너 김서룡으로서의 삶 외에 한 사람으로서의 김서룡의 삶이 궁금하다. 여가는 어떻게 보내나
주로 영화보고 책을 읽는다. 내가 영감을 받는 곳이 있다면 아마 영화일거다. 영화를 보다가 ‘이 음악의 느낌이 괜찮은데’ 이런 식이다. TV가 없는 대신 빔 프로젝터를 구매해서 영화를 본다. 술 한 잔하면서 영화와 함께 취해간다.

최근에 본 영화중 ‘I will see you in my dream’이 좋았다. 노년의 삶을 다룬 영화다. 오락영화는 한 번 보면 그게 너무 재밌어질까봐 의도적으로 보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장르는 드라마인데 사실에 기반을 둔 이야기면 더 좋다. 일 년 중 가장 기다리는 것이 EBS국제다큐영화제다.

어릴 때부터 읽는 습관이 있어서 일주일에 책을 3권정도 읽었다. 그런데 읽는 것도 중독되는 것 같아서 책도 주변에 다 나눠주고 요즘은 영어회화 공부를 한다. 앉아서 공부하진 않고 틈날 때마다 듣기 시작한지 벌써 1년째다.

나이가 들면서 괜찮은 디자이너로 보이는 것도 좋지만 어디론가 여행을 떠났을 때 소통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서 시작했다. 누가 나를 볼 때 ‘할아버지가 영어로 표현을 잘한다’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지금은 ‘바보는 아니구나’ 정도다. 한 10년 후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Q. 김서룡의 여행은 어떤가
이제 관광보다 쉬는 것이 좋다. 예전에는 어디에서 잠을 자도 상관없었는데 이제 장소는 상관없지만 잠은 좋은 곳에서 자고 싶다(하하). 여행 갔을 때만큼은 좋은 곳에서 머문다. 먼 곳보다 가까운 여행지를 선호한다. 일본이나 태국 등 가까운 곳으로 떠나서 외곽에 있는 좋은 호텔에서 머문다. 외곽이라 그렇게 비싸지도 않고 항공편도 저가항공을 이용해 그렇게 많은 돈이 들지도 않는다.

가서 주는 밥 먹고 술 마시고 쉬다가 돌아온다. 직원들과 함께 갈 때도 있지만 온전히 쉬고 싶을 때는 혼자 떠난다. 사실 혼자 여행이 그렇게 즐겁지는 않다. 굉장히 지루하고 심심하지만 사람들에게 그런 시간도 필요한 것 같다. 그 지루한 시간이 무언가 하고 싶다는 욕구를 북돋아준다.  

Q.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로서 디자이너를 꿈꾸는 사람들을 위해 전할 말이 있는가
할 수 있는 사람과 하고 싶은 사람은 다르다. 학생들을 가르치다보면 옷을 좋아하면 다 디자이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것은 결국 감인데 나는 감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디자이너가 되기 위한 대학교육, 유학이 과연 의미가 있는지 회의가 들 때가 많다.

디자인은 창조적인 일이다. 오히려 내가 가르치는 것이 학생의 창조성을 해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한다. 내가 볼 땐 대학을 다니지 않고 유학을 가지 않아도 충분히 옷을 만들 수 있다. 학벌이 중요한 세상이 아니다. 그런 외부적인 요인을 떠나서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가장 기본은 의지와 감이다. 

Q. 수십 번째의 쇼를 경험했고 또 다시 앞두고 있다. 쇼를 앞두면 어떤 마음인가
옛날부터 떨렸던 적은 없다. 처음에도 떨린다기보다 감격스러웠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늦은 나이에 디자이너로 데뷔했는데 내 이름을 건 쇼를 한다는 것에 나 스스로 감격스러웠다. 지금은 쇼하기 전날까지가 좋다. 굉장히 많은 고민을 했고 재밌게 했으니깐 그 과정이 즐겁다.

쇼 당일은 보는 사람을 위한 날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쇼를 보러 온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그 일환으로 연예인을 위한 포토월도 지난번부터 없앴다. 그래서인지 나는 리뷰도 신경 쓰는 편이 아니다. 기자들이 아쉽다고 해도 내가 아쉽지 않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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