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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nt뉴스 김희경 기자] 역사상 펜과 타자로 많은 사랑을 받았던 인물 중 하나였던 달튼 트럼보. 수만 번의 고뇌를 통해 주옥같은 작품을 쏟아냈던 그의 인생에는 더욱 극적인 그림자가 자리하고 있다.
영화 ‘트럼보’(감독 제이 로치)는 가짜 이름으로 두 번의 오스카를 수상하며 헐리웃의 역사를 바꿔놓은 ‘로마의 휴일’의 천재 작가 달튼 트럼보(브라이언 크랜스톤)의 감춰진 비밀을 그린 작품.
헐리웃의 황금기라고 불리는 1940년대에서 최고의 주가를 달렸던 인기 시나리오 작가 달튼 트럼보는 자신의 유능한 능력을 인정받아 부유한 집에서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과 나름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었고, 위트 있는 화술로 주변에 인맥이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매력적인 트럼보에게도 한 가지 작은 송곳이 있었다. 바로 자신이 지지하는 공화당 사상을 배척하는 사람들과 대면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냉전 시대의 정치는 공산주의자를 탄압하고자 하는 매카시즘이 그야말로 유행처럼 번졌다. 공산주의는 사회의 악이며, 배척되어야 마땅하는 소리를 드높였고, 그들의 소리를 마치 세뇌처럼 머릿속에 각인시킨 대중들 또한 공산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만이 있었다.
하지만 달튼 트럼보는 공산주의의 잘못된 생각을 바로잡기 위해 끊임없는 모임을 가지며 대화의 장을 시도했다. 허나 이는 번번이 실패하고 말았고, 반미활동 조사위원회는 영화인들을 전부 청문회에 소환해 “당신은 공산주의자인가” “공산주의자로 생각되는 자들의 이름을 부를 수 있냐” 등의 질문을 통해 일명 사상 검증을 일삼았다. 그중 트럼보를 비롯한 몇몇의 작가들은 이러한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했고, 결국 이들은 ‘헐리웃 10’이라는 블랙리스트에 오르며 잠재적 추방을 당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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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시나리오 작가로 인정받았던 트럼보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1차 판결 이후 2차 배심원 판결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트럼보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정치판에 휩쓸려 결국 교도소에 들어가게 된다. 알몸 차림에 교도관의 지시에 따라 짐승처럼, 짐짝처럼 취급당하는 그의 모습은 쓸쓸해 보이기까지 하다.
그렇게 인생의 씁쓸한 맛을 본 트럼보는 사뭇 다른 행보를 걸어가기 시작한다. 자신의 이름을 통해 일을 할 수 없었던 그는 약 10여개의 가명을 만들었고, B급 영화 제작사로 찾아가 자극적이고 형편없는 작품들을 ‘생산’한다. 제작사 대표 킹 브라더스에게 신의를 얻기 시작한 트럼보는 이후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작가들을 데려와 함께 가명으로 일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트럼보는 가명을 통해 오스카상을 받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본격적인 인생의 2막을 알리는 순간이기도 하다.
영화 속 시공간의 흐름은 매우 단조롭고 간단하다. 허나 트럼보라는 인물이 인생의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치는 과정, 그리고 그 바닥을 발판 삼아 다시 올라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작가 트럼보와의 관계는 물론 아버지로서, 남편으로서의 트럼보를 세밀하게 보여주며 인물들과의 갈등과 감정선을 복합적으로 그려낸다. 말장난을 좋아하지만 일상 속에서 마냥 위트를 즐기지 않고, 남을 배려하면서도 때로는 자신의 예민함을 주체하지 못해 버럭 소리를 지르기도.
특히 큰 딸 니콜라 트럼보(엘르 패닝)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 그리고 성년기를 밟아가는 과정 속에서 만나는 아버지 트럼보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유명 작가와 상반된 모습으로 비춰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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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인 만큼 각 캐릭터의 싱크로율은 물론 시대에 맞는 디테일한 비주얼로 실제 그 시절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자아낸다. 또 그 속에서 빛나는 색채감과 영상미는 영화의 재미마저 놓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한 셈.
달튼 트럼보가 외쳤던 것은 공산주의의 우월함이나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힐난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빠는 빨갱이에요?”라고 묻는 니콜라에게 햄치즈샌드위치를 비유로 역질문을 하는 장면을 통해 그의 생각을 더욱 잘 드러낼 수 있다. 넓은 세상엔 다양한 생각이 공존할 수 있으며, 한쪽의 사상이 나머지를 지배할 수 없다는 점을 말이다.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와 평등을 외치는 트럼보의 행동은 무례하지 않지만 벽에 부딪친다고 해서 망설이지도 않는다. 영화 속 트럼보는 이처럼 자신만의 신념을 가지는 것을 지켜나가는 방법을 알려준다. 비록 본인이 바라던 위치로 돌아가기까지는 결코 빠르지 않았으나, 칼을 쥐거나 총을 들지 않고, 언성 높이지 않는 현명한 방법은 분명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다.
한편 ‘트럼보’는 오늘(7일) 개봉. 러닝타임 124분. (사진출처: 영화 ‘트럼보’ 스틸 및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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