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자동차 밀어내기에 얽힌 고도의 심리전

입력 2016-04-13 21:23   수정 2016-04-13 21:24


 자동차는 기본적으로 제조물이다. 만들면 누군가 팔기 마련이고, 판매자가 있으면 당연히 구매자가 있다. 그리고 내구재여서 구입 이후에는 오랜 기간 타고 다니며 만족 또는 불만족을 경험한다. 판매자는 훗날 또 다시 소비자가 같은 브랜드를 사도록 커뮤니티를 만들어 지원하기도 하고(동호회), 잔존 가치를 높이기 위해 경매장을 동원하기도 한다. 그리고 여기서 얻어지는 다양한 호평을 내세워 새로 살 사람을 유인한다. 그렇게 보면 결국은 살 사람, 산 사람 그리고 파는 사람이 모두 박수치도록 노력하는 셈이니 어느 하나만 부족해도 시장에서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는 시각에 따라 욕을 할 수도 그리고 칭찬을 쏟아낼 수도 있다. '살 사람, 산 사람, 파는 사람'의 시각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파는 자, 사는 자 그리고 타는 자
 국내 자동차업계에서 국산차와 수입차를 가리지 않는 공공연한 진실(?)이 하나 있다. 바로 '밀어내기'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 부분은 파는 사람에게 해당된다. 목표를 맞추기 위해 제조사가 판매점을 동원해 신차 등록을 먼저 하는 게 다반사다. 외형상 '파는 사람=사는 사람'이 되는 형태다.

 물론 밀어내기는 제조사도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공장이 돌아가는 한 판매는 지속돼야 하고, 목표는 쉼 없이 주어진다. 자동차를 판매하는 모든 사람이 '실적'을 거품 물 듯 외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적이 곧 인격'이고, '목표 달성은 생존'과 같다. 그래서 해마다 연말이 되면 언제나 '밀어내기 한판'이 횡행한다. 그런데 요즘은 시기를 가리지 않고 밀어내기는 일이 벌어지고 있으니 이제 관행이 아니라 목표 달성을 위한 정상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 

 이렇게 밀려난 자동차는 무조건 팔아야 한다. 가지고 있어봐야 보관비가 더 든다. 그래서 '살 사람'을 찾아다니지만 좀처럼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미 칼 자루는 '살 사람'이 쥔 셈이다. 안사면 그만일 뿐 팔 사람에게 끌려 다닐 이유가 없다. 그래서 팔 사람은 당근을 과감히 꺼내든다. '대폭 할인'이 나오는 이유다. 비닐조차 뜯지 않은 새 차지만 어쨌든 밀려났다는 점을 의식해 놀랄 만한 할인을 제공한다.






 하지만 살 사람은 그래도 여전히 배고프다. 욕심의 끝이 없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그럴 만한 명분도 있다. 잉크조차 마르지 않은 서류에 자신의 명의를 당당히 올리고 싶었지만 어쨌든 한번 밀려난 제품이니 추가 요구가 이어진다. 이른바 감정의 보상이다. 그래서 '조금만 더'를 주문하다 보면 팔 사람도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바로 이 때 '계약!'이라는 주문을 넣는다. 판매자의 이익마저 살 사람이 차지할 정도로 할인이 커지는 배경이다. 그래도 팔 사람은 주차장 보관 비용이 더 이상 들어가지 않으니 서로 '윈-윈'이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이미 '산 사람'이다. 판매자가 대폭 할인으로 신차를 밀어내니 가격 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잔존 가치가 하락하며 잠재적 손실을 일으킨다. 2,000만원에 사서 3년 타고 되팔면 1,500만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 같은 신차가 1,700만원에 판매되니 3년 후 가치가 1,300만원으로 떨어지는 격이다. 여기서 벌어진 400만원은 누가 보상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산 사람은 반발한다. 비난을 쏟아내고, '밀어내기'라는 것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훗날 이들 또한 밀어내기의 수혜자가 될 수도 있다. 

 이렇듯 '밀어내기'는 교묘한(?) 결과를 가져온다. 살 사람의 구매 만족도는 올라가고, 산 사람의 보유 만족도는 떨어지나 판매자는 중간이다. 줄어든 이익이 재고 비용으로 절감으로 상쇄되니 이래저래 비슷하다.

 ▲밀어내기는 타이밍이다
 물론 '밀어내기'라는 게 늘 있는 것은 아니다. 무언가 목표 달성의 고지를 넘어야 할 때, 매우 절박할 때 제조 또는 수입사가 꺼내든다. 밀어내기를 일상화하면 수익 뿐 아니라 브랜드 가치 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다. '365일 할인 차종'과 평소 제 가격을 유지하다 '지금 이 순간 할인'의 느낌은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 밀어내기 자주하면 '365일 할인'이 되기 십상이다.

 따라서 밀어내기를 할 때는 언제나 적절한 타이밍과 명분이 필요하다. 명분으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게 '~~~기념, 최대 할인'이다. 신학기를 맞았다고, 광복절이라고, 가족의 달이라고, 호국 보훈의 달이라고 판촉을 제시한다. 대놓고 말을 못하니 애꿎은 기념일만 잔뜩 등장한다.

 그런데 명분을 받아들이며 해석하는 입장은 서 있는 위치에 따라 다르다. 판매자는 '재고 소진'으로 들리고, 살 사람은 '강력 할인'으로 다가오며, 산 사람은 '가치 떨어지는 소리'로 인식된다. 이처럼 3가지 측면의 다양성을 가지고 있으니 밀어내기야말로 '사회 과학'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지 않을까 한다.
 
 그럼 앞으로 '밀어내기'를 없앨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공장이 쉬지 않는 한 밀어내기 관행, 아니 판매 수단으로서 없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만약 없어진다면 살 사람의 혜택이 줄어드는 것이니 되레 욕을 먹을 수도 있다.

 얼마 전 '응답하라 1988'이 유행이었다. 여기서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랑은 타이밍이라고….' 밀어내기도 마찬가지다. 팔 사람과 살 사람 모두 타이밍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그래야 브랜드 손상 및 잔존가치 하락을 최대한 막을 수 있다. 신차로 나왔지만 판매대수가 미비할 때, 경쟁 제품과 자존심 걸린 순위 다툼이 벌어질 때, 그리고 곧 후속 차종이 나올 때가 타이밍이다. 그리고 산 사람에게 이런 타이밍은 가치 하락 최소화를 위한 '먼저 팔기' 찬스일 수도 있다. '밀어내기'가 가져오는 갖가지 고뇌의 현장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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