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테슬라 모델S의 자율주행 프로그램인 오토파일럿이 오류를 일으켜 부상당한 운전자가 결국 숨을 거뒀다. 이를 가지고 미국 내에서도 사고 책임 논란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테슬라는 운전자가 '오토파일럿'을 활성화 할 경우 위험 상황에 대비해 도로 상황을 주시하도록 고지했다는 점에서 사고 책임이 없다는 입장인 반면 미국 소비자들은 운전자가 제조사의 지능형 기술을 믿고 오토파일럿에 명령을 내린 만큼 제조사 책임이 크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이른바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에 관한 법적 공방이 테슬라 모델S에서 시작된 셈이다.
이번 논란이 중요한 이유는 완성차업계가 오는 2020년 자율주행차를 내놓겠다는 계획을 속속 발표해왔기 때문이다. GM을 비롯해 닛산, 토요타 등의 자동차기업은 물론 구글이나 애플, 마이크로소프트처럼 거대 IT기업도 향후 자율주행차 시장에 뛰어든다는 계획을 드러내면서 미국 정부가 내릴 법적책임 판단이 매우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경우의 수를 고려하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진다. 먼저 미국 정부가 제조사에 보다 많은 책임을 지울 때다. 운전자는 제조사의 자율주행 기술을 믿고 명령만 내렸다는 점에서 책임의 무게 추가 제조사 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경우 자율주행차의 등장은 미뤄질 수밖에 없다. 비록 자율주행차가 똑똑해서 교통사고가 0%에 가깝게 줄어든다 해도 만약의 사고는 배제할 수 없고, 이 때 제조사가 책임지지 않는 방법은 자율주행차를 판매하지 않는 것 뿐이어서다.
반대로 소비자 과실로 시선이 모아지면 비록 제조사가 자율주행차를 내놓는다 해도 섣불리 구매가 쉽지 않다. 특히 자율주행차가 교통약자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구글 등의 논리가 힘을 잃게 된다. 교통약자를 위한 교통수단이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한다면 구매 욕구가 떨어지기 마련이고, 제조사로선 시장이 형성되지 않는 곳에 제품을 투입할 이유가 없다. 한 마디로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자율주행차의 신뢰도에 흠집이 생길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물론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지난 4월 국회 소회의실에서 자동차미래연구소 주최로 '자율주행차의 사고 책임에 관한 법적 책임 토론회'가 열렸다. 당시 발제자로 나선 국민대학교 자동차융합대학장 김정하 교수는 "완벽한 기술이란 건 불가능하다"면서 "자율주행차가 양산되면 제조사와 정부, 이용자 모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제품을 개발해 판매한 제조사, 제품에 대한 인증을 허용한 정부, 제품을 신뢰하고 이용한 소비자가 책임을 나눠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어느 쪽에 더 많은 비중을 두느냐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당연히 법조계 의견은 다르다. 조석만 법무법인 한민앤대교 변호사는 자율주행차 상용화에 앞서 '운전자'의 개념을 재정의하고 '도로교통법', '교통사고처리특별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조물책임법' 등에 전면적인 개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또한 류태선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박사는 "교통사고를 완전히 없앨 순 없겠지만 자율주행차는 보다 안전한 교통문화를 만들어 주리라 기대된다"며 "운전자가 개입하지 않은 주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해선 기술적 결함에 대한 제조사의 규명 책임이 있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제조사를 포함한 기술 중심으로 보면 운전자 책임 비중이 크지만 법적 및 소비자 중심 시각에 맞추면 제조사 과실이 더 크다는 상반된 목소리가 팽팽했던 셈이다.
그래서 이번 미국 법원의 책임 소재 판단은 글로벌 완성차기업 또는 자율주행차를 기다리는 소비자들에게 많은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미래 자율주행차의 등장을 필연이라고 할 때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주기가 쉽지 않아서다. 따라서 이번 사안에 대한 법적 판단은 책임의 비중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비중에서 미국 또한 인증을 해준 정부의 책임을 포함할 지 궁금하다. 더불어 어떻게 비중이 나눠질 지도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첨언한다. 지난번 토론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율주행차의 법적 사고 책임에 관한 다양한 목소리는 금세 잦아들었다. 그런데 정부가 미래 먹거리 주요 산업으로 자율주행차 관련 기술개발에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그리고 개발에 수 천억원의 세금을 쏟아 붓기로 했다. 하지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면 소비자가 구입하지 못한다. 그럼 혈세 낭비가 된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 한 자율주행차가 등장할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토론은 지속돼야 한다.
박재용(자동차미래연구소장, 이화여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