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신 기자] 조신하게 생긴 얼굴을 뒤로하고 깔깔깔 웃어 재낀다. 시원시원한 사투리 구사가 구수하고 맛깔스럽다. 촬영 내내 생글생글 웃으며 현장에 있는 모두에게 행복한 웃음을 안겨주던 그. 트로트 가수 검지를 만났다.
걸 그룹 ‘오로라’의 교체 멤버로 기용된 노련한 이 선수는 팀의 부진과 함께 아쉽게도 자취를 감췄다. 그의 역량을 세상에 끄집어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시간과 기회였다. 그렇게 다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준비 돼있는 자에겐 기회가 온다고 했던가. 그는 그 말을 입증해내듯 더욱 더 노련해진 모습으로 다시금 그라운드에 등판했다. 그런 그의 손에 들려있는 건 종전에 해오던 댄스곡이 아닌 ‘트로트’였다.
대한민국 국민의 대다수가 좋아하지만 그만큼 그 본연의 맛을 살리기 어려운 게 바로 ‘트로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등에 가지런히 접혀있던 날개의 사용법을 이제야 알아낸 것처럼 ‘트로트’라는 날개를 펴고 훨훨 날 준비가 돼있었다.
bnt와 검지가 만난 화보 촬영은 그런 그처럼 날개 돋힌 듯 사뿐하고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리고 이어진 인터뷰에서 그는 이제껏 털어 놓지 않았던 ‘전검지’의 이야기를 가벼운 듯 무겁게, 무거운 듯 가볍게, 그렇게 차근차근 풀어놓았다.
그 어떤 선입견도 필요 없을 그의 속내를 들여다보자.
화보 촬영을 마쳤는데 소감이 어떠세요?
재밌었어요. 화보를 처음 찍는 거라 어떻게 해야 될지 몰랐는데 하다 보니 재밌더라고요. 요래 저래.(웃음)
처음인데 굉장히 잘 하셨어요. 두 번째, 세 번째가 기대되네요.
감사합니다. 많이 칭찬해주신 덕분에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촬영 중에 마음에 들었던 콘셉트는 있었나요?
개인적으로 맨 처음 발랄했던 콘셉트가 좋았어요. 제가 평소에 성격이 여성스럽지가 못해서 분위기 잡고 예쁘게 하고 청순하게 하는 그런 걸 잘 못하거든요.(웃음)
근데 첫 번째 콘셉트 말고도 농담이 아니라 잘 하셨어요. 특히 마지막 같은 경우엔 원래 검지 씨가 갖고 있는 감정이 느껴지기도 했어요.
감정이입을 하면 잘 나온다는 얘길 들었던 적이 있었어요. 첫 사랑과 이별했을 때 슬펐던 경험과 그 사람과 다시 재회한다면 어떤 느낌일까를 생각하며 감정 표현을 해봤던 것 같아요. 슬프지만 좋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미소 지어지는 그런.
그게 사진에서 딱 보였어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맞죠? 제가 연기에 조금 소질이 있지 않나요?
..네? 뭐 약간 좀...(일동 웃음)
아무튼(웃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촬영에 임했어요. 표정이 잘 나와야 하니까 노력도 많이 했어요.
다양한 재능이 있는 것 같은데 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꿔왔었던 건가요?
어릴 때부터 욕심이 많아서 노래도 하고 싶고 연기도 하고 싶고. 아무도 없을 때 집에서 혼자 tv에서 봤던 연기 흉내를 내고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부르고. 또 춤추는 것도 좋아했어요.
그러면 연예계로 데뷔를 한 게 가수로서 인가요?
결과적으론 가수로서 데뷔했지만 첫 시작은 영화였어요. 처음에 캐스팅이 되고 4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무산됐지만요. 그렇게 내 길이 아닌가 싶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걸 그룹에 들어가서 데뷔하게 된 거죠.
영화 캐스팅은 어떤 계기로 된 건가요?
학교 전공이 호텔 카지노 과였어요. 졸업을 하려면 실습을 해야 해서 서울에 오게 됐어요. 그때도 여전히 춤을 좋아했던지라 어떻게 하면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을까 하던 중에 댄스 학원 직장인 반에 등록하게 됐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 가는 걸로, 욕심내서.(웃음)
그렇게 다니던 중에 서태지와 아이들 출신 이주노 선생님이 주인공이신 영화를 찍는다며 캐스팅이 됐어요. 그때 저랑 함께 영화를 준비했던 친구들이 남보라, 이성경 이었어요. 그때부터 마음 깊이 계속 응원하고 있었는데 잘 돼서 참 기뻐요.
그러면 가수로 전향은 어떻게 하게 됐나요?
영화 준비를 할 때 당시에 이주노 선생님 회사 이사님께서 저를 많이 아껴주셨어요. 또 이주노 선생님께선 테스트를 할 때마다 좋은 점수를 주시곤 했어요. 그런데 영화 제작이 무산 됐고 이사님께서 많이 아쉽다고 하시다가 걸 그룹 ‘오로라’에서 멤버 한 명을 교체한다는 얘기가 나온 거죠. 그래서 오디션 제의를 받았고 합격을 해서 들어갔어요. 그리고 들어가자마자 2주 만에 오로라의 멤버로서 데뷔하게 됐어요.
댄스 학원을 다닐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없었나요?
그 당시에 춤을 진짜 잘 추는 남자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배우 이제훈 씨였어요. 단장님께 직접 배운 수제자 같은 느낌이었는데 정말 잘 추시더라고요. 어떻게 한 번 따라 가볼까 해서 같은 클래스를 들었던 적이 있었는데 저랑 정말 레벨이 달라서 옆에서 추다 못 추겠더라고요.(웃음)
걸 그룹 오로라로의 활동은 어땠어요?
열심히 활동을 했지만 여러 가지 상황이 받쳐주지 못 해 팀이 해체하게 됐어요. 이후 당시 소속사 사장님의 권유로 혼자 남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했지만 달라지는 것 없이 제자리걸음 뿐 이었어요.
다른 멤버들은 각자의 길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는데 저만 허송세월 보낸 거죠. 그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어요. 스물일곱 살 때였는데 그 한 해는 정말 오랫동안 잊히지 않을 거 같아요.
한순간에 모든 게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 같아요.
비슷했던 것 같아요. 앞도 안보이고 뭘 해야 될 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수중에 돈도 없으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또 그 당시 만났던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도 있었어요. 이 모든 걸 그 해에 다 겪은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일을 겪음으로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마인드도 많이 바뀌고 생각도 더 깊어지는 그런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이후 솔로 가수로 전향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나요?
오로라 해체 후에 두 차례 회사를 옮겼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어요. 한 회사는 대표가 투자금을 받고 횡령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그때 저를 구해주시다시피 하신 분이 지금의 대표님이세요.
저에 대해서 평소에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시던 지인 분과 지금 대표님이 서로 아는 사이였고, 지인 분을 통해 트로트 솔로가수를 구하는데 미팅을 해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어요. 워낙에 많이 데이던 차라 처음엔 꺼려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만나게 됐고 이렇게 좋은 여건 속에 다시 활동을 하게 됐어요.
그럼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며 검지라는 닉네임을 쓰게 된 건가요?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것 같지만 본명이 검지라서 쭉 썼어요. 이름이 전검지 거든 요.(웃음)
댄스 가요에서 트로트로의 전향이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거부감은 없었나요?
다행히 어릴 때부터 민요나 트로트를 좋아했어요. 일반 발라드와 달리 트로트만의 감정이나 기교를 넣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민요도 트로트처럼 꺾고 휘고 하는 게 다 들어가 있어서 초등학교 때부터 진짜 좋아했었어요. 음악시간에 민요를 많이 배운 영향도 있었고요. 그래서 트로트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트로트가수로서 롤모델이 있나요?
장르를 떠나서 진심으로 노래 부르는 게 재미있다고 느껴진 시점이 장윤정 선배님의 노래를 듣고 난 뒤였어요. 우연치 않게 장윤정 선배님께서 주현미 선배님 곡을 하는 걸 듣고 ‘어, 이런 노래도 있었어?’ 하고 제가 그 노래를 따라 부르다가 트로트에 빠지고 노래하는 걸 더 좋아하게 됐어요. 물론 제게 직접적으로 가르쳐주신 건 아니었지만 제가 선배님의 노래를 따라 부르면서 제 소리와 목소리를 찾았기 때문에 혼자 감사드리기도 해요.
장윤정씨도 이 얘길 전해 듣는다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노래를 하시는 보람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고. 롤모델인 장윤정씨 외에 특별히 좋아하는 가수가 있나요?
저 홍진영 선배님 열혈팬이에요.(웃음) 홍진영 선배님인지 모르고 3시간 동안 같이 수다를 떤 기억이 나네요. 제가 우연히 네일숍에 갔는데 그곳이 마침 선배님이 이용하는 네일숍이었나 봐요. 그날 마침 사람이 많았는데 신점이나 타로 점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가 불이 붙은 거예요.
근데 네일숍 근처에 타로 점을 보는 곳이 있는데 기가 막히게 잘 본다고 하는 거예요. 마침 힘든 시기를 보내던 터라 제가 가보겠다고 했어요. 당시가 한겨울이었는데 커다란 파카를 두텁게 입고 마스크를 한 채 관리를 받던 분이 나도 가볼래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먼저 끝나서 먼저 가보겠다고 하고 나왔어요.
그때 점을 보면서 제가 가수를 하고 있고 이런 저런 일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얘기하는 걸 홍진영 선배님이랑 같이 온 친구 분께서 들으신 거 같아요. 원래 그런 얘기를 잘 안하는데 그땐 접으려고까지 생각을 하다 보니 모든 걸 다 말했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선배님께서 가수를 했었던 거에 대해 물어보시는 거예요. 그렇게 오로라 얘기부터 남자친구 얘기, 트로트 얘기까지 3시간 가까이 대화를 나누게 됐어요. 그 당시엔 홍진영 선배님이 TV에 많이 출연하지 않았던 시기라 잘 몰랐는데 선배님께서 자리를 뜨고 나니 친구 분께서 말씀해주시더라고요. 그 이후로 응원하게 됐고 지금은 이렇게 팬이 됐네요.(웃음)
함께 듀엣으로 호흡해보고 싶은 가수도 있나요?
장윤정 선배님과 꼭 해보고 싶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곡 같은 게 있나요?
장윤정 선배님 노래는 다 좋아하는 편이에요. 특히 선배님께서 리메이크하신 노래를 즐겨 들어요. 트로트 외에는 최근에 나온 ‘맘 편히’라는 노래를 자주 들어요. 제가 개인 활동을 하는 게 처음이라 하면 할수록 남들에게 말 못할 스트레스 같은 게 심해지더라고요.
근데 이걸 혼자 이겨내야 하잖아요. 그때 ‘맘 편히’라는 곡이 나온 거죠. 가사도 너무 좋고 와 닿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요즘에는 혼자 있을 때 이 노래를 즐겨들어요. 들으면서 ‘그래, 난 괜찮아. 그래, 난 괜찮아.’ 라고 생각하며 많이 위로 받고 있어요. 또 재밌는 예능 프로그램을 보다보면 즐거워지기도 해요.
어떤 예능 프로를 즐겨 보시나요?
‘안녕하세요’랑 ‘동상이몽’은 항상 챙겨 봐요. 또 ‘해피투게더’, ‘라디오스타’도 꼭 봐요.
출연해보고 싶은 예능 프로도 따로 있나요?
‘런닝맨’ 나가보고 싶어요. 활동적인 걸 좋아하는데 안한지 오래 돼서 달리고 싶어요. 평소에도 일 안할 때는 답답한 마음을 풀고 싶어서 갑자기 전력질주를 하곤 해요.(웃음) 또 라디오 스타에 나가서 김구라 선배님과 만나보고 싶어요.
최근에 중국 화인TV 한국지사 개국식 축하공연에 참석하셔서 주현미 씨의 ‘여백’을 한국어와 중국어, 두 가지 버전으로 불러서 화제가 됐었다고 들었어요. 원래 중국어를 하실 줄 알았었나요?
제가 초등학교 6학년 때 무협드라마를 처음으로 접했어요. ‘황제의 딸’이라고 신인 시절의 판빙빙이 등장해서 굉장히 인기 있던 드라마였어요. 그걸 보고 중국어가 너무 배우고 싶어서 책을 샀지만 어려워서 조용히 접었어요.(웃음)
그래도 한자공부는 매일 했어요. 아버지께서 한자를 알아야 어른이 돼서 신문을 볼 줄 알고 경제를 알아야 나라가 돌아가는 걸 안다고 하셨거든요. 제가 말은 잘 들어서 열심히 쓰고 외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고2때 제 2 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우게 됐어요. 그때부터 흥미를 붙여서 혼자 공부하고 학원도 다니고 그랬어요. 그래서 유창한 수준은 아니지만 일상적인 대화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중국 진출 계획도 있나요?
올해 하반기에 계획돼 있어서 차근차근 준비 중이에요.
올해의 계획은 어떻게 돼요?
제가 번 돈으로 부모님께 한 턱 쏘는 것.
한 턱만 쏠 거예요?
그 한 턱에 큰 의미가 있어요. 제가 여태 고정적인 벌이도 없었고 집에서 나와 생활한 지도 오래 됐고. 그 때문에 내가 직접 내 힘으로 커다란 마음을 담아 뭔가를 해드릴 기회가 없었어요. 작게 작게는 어떻게든 해드렸지만 이제는 정말 큰 걸 해드리고 싶어요.
사실 최근에 집 상황이 많이 안 좋아졌거든요. 그렇게 된 뒤 얼마 전에 ‘스타킹’ 녹화를 했었는데 부모님께 영상 편지를 보내라고 하더라고요. 순간적으로 눈물이 나는 걸 참고 호강시켜드린다는 말로 급히 마무리했었어요. 엄마, 아빠 보시면 분명 마음 아파하실 거 아니까. 그래서 꼭 그 계획을 이루고 싶어요.
가수로서의 목표는 뭔가요?
제가 부르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원 없이 부르면서 웃으면서 살 수 있는 게 가수로서의 목표이자 인생의 목표예요. 많이 응원해주시길 바라요.
기획 진행: 조원신
포토: bnt포토그래퍼 이건돈
의상: 레미떼, 라인플렉스
슈즈: 페이유에
헤어: 보이드바이박철 이한 부원장
메이크업: 보이드바이박철 소은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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