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왜 우리는 이런 차가 없는거야?"

입력 2016-09-14 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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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국산차만이 전부였던 시절, 화려하게 인쇄된 자동차 매거진의 사진을 보면 "이런 멋진 차의 실물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를 생각하곤 했다. 그만큼 다양하지 못했던 자동차 시장에 대한 불만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기대'는 '현실'로 바뀌었고, 지금은 오히려 너무 많아진 자동차 때문에 어떤 차를 선택할지 고민하는 시대가 됐다. '결정 장애'라는 말이 일반화 될만큼 고르는 것 자체가 어려운 시험 문제처럼 여겨진다.  

 물론 제품 다양화는 시장 성숙에 비례해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촘촘하게 세분화 된 소비층을 겨냥해 기업마다 '맞춤형 자동차'를 내놓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는 자동차 선택 기준을 바꾸고 있다. 

 그런데 제품 종류가 많아진 것과 비례해 선택에 도움을 주려는(?) 미디어도 다양해졌다. 인쇄매체를 포함해 온라인 등에는 수많은 자동차 정보로 넘쳐나고, 개인적인 의견을 표출하는 블로거 등도 적지 않다. 모두 '객관'으로 포장된 주관들이지만 해당 게시물에 네티즌들의 댓글 참여도 활발하다. 이른바 '댓글 소통'이다. 

 하지만 소비자 의견을 읽다보면 묘한(?) 현상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과거와 지금의 인식 변화가 매우 크다는 점이다. '해치백'이나 '왜건'에 대한 편견(?)이 많이 사라진 게 대표적이다. 꽤 오래 전 얘기지만 1990년대 후반 현대차가 아반떼 투어링을 내놓은 바 있다. 이에 뒤질세라 당시 대우자동차(現 한국지엠)는 누비라 스패건이라는 왜건형 제품을 선보였다. 심지어 기아차는 중형인 크레도스의 왜건으로 파크타운을 등장시키기도 했다. 유럽을 겨냥한 제품이지만 국내 소비자들이 "왜 우리는 유럽처럼 왜건형이 없냐?"라는 의견도 반영된 상품기획이었다.   

 그러나 판매는 신통치 못했다. 소비자 요구에 따라 '왜건'의 부재를 채웠지만 정작 시장에선 외면당했고, 결국 판매가 중단됐다. 당시 자동차회사들은 특정 소비층의 요구를 받아들인다는 게 기업에게 얼마나 위험한 도박인지 깨달았다. 

 비슷한 사례는 요즘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출시 전부터 국내외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제네시스 쿠페는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조용히 단종됐다. 그만큼 얇은 소비층이 단종의 배경이다. 이런 이유로 국산차 중 유일한 2도어는 기아차 K3 쿠페만 남게 됐다. "왜 우리는 유럽처럼 강력한 스포츠 성격의 자동차가 없냐"는 소비자 불만도 판매 앞에선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런 단종을 보는 소비자들은 불편함도 감추지 않는다. 그만큼 국내 시장의 제품 다양화가 축소되는 것이어서다. 제조사 입장에선 국내 시장 규모가 작은 데다 비용 측면에서 당연하겠지만 인기 여부를 떠나 여러 제품을 접하려는 소비자로선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요즘은 해외 전용 제품도 적지 않아 소비자 불만을 일으키기도 한다. 몇 해 전 해외에 출시된 기아차 씨드를 두고 "왜 이런 차를 국내에는 출시하지 않느냐?"라는 의견이 쏟아진 배경이다  

 하지만 그 사이 시장이 변하며 제품 다양화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세단 선호 현상이 여전하지만 과거에 비해 해치백을 찾는 소비자도 크게 늘었다. 덕분에 현대차 i30 등은 유럽 전략 차종이지만 국내 판매도 활발하다. 

 사실 국내 자동차 시장을 가장 아는 곳은 완성차회사다. 어떤 차를 만들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지 쉬지 않고 연구한다. 소비자로 구성된 자문단까지 만들어 여러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편의장치도 개발해 낸다. 앞서 언급한대로 소비자들의 성향과 환경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어서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하면 자동차회사의 새로운 제품을 끌어내는 것은 결국 소비자다. 특정 제품에 대한 시장 욕구가 강하게 표출되면 기업은 이를 놓치지 않고 개발로 연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소비자의 올바르고 건강한(?) 요구는 곧 국내 자동차 다양화 및 문화의 성숙과 직결된다. 그럼에도 간혹 자동차 관련 댓글을 보면 잘못된 정보와 섣부른 판단으로 작성된 의견이 적지 않다. 아니, 오히려 답답하기까지 하다. "왜 우리는 이런 차가 없는 거야?"가 아니라 "이런 차가 지금 왜 필요한가?"를 얘기해야 하는데, 오로지 느낌과 추측성 의견만 난무한다.  

 지금 판매되는 자동차는 제조사가 많은 소비자 의견을 받아들이고, 나름 성향에 맞춰 내놓은 제품들이다. 그렇지만 쏟아지는 비난도 적지 않다. 소비자가 원해서 기업이 시장에 내놨지만 불만도 있다. 그런데 생각을 뒤집어보면 지금과 같은 제품 다양화 또한 소비자가 이끌어냈다. 기업의 개발 동기부여를 소비자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비자의 자동차 선택 기준과 인식이 바뀌면 제품도 다양해진다. 기업은 시장의 흐름을 무조건 따라가는 숙명(?)을 안고 있으니 말이다. 소비자가 바뀌어야 기업도 변한다는 것, 그게 시장의 힘이다. 


 이우용(자동차 칼럼니스트, 前 자동차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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