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재심’ 강하늘, 혹한을 이겨내는 인간 강하늘의 온기

입력 2017-02-16 08:00  


[김영재 기자] “다행히 불행한 것이 없기에 지금이 행복하다”

배우 강하늘을 만났던 2월의 어느날, 서울은 한낮 기온이 영하 2도에 머무는 혹한(酷寒)이 불어 닥쳤다. 무시무시한 칼바람의 대비책으로 얼굴을 목도리로 꽁꽁 감쌌지만, 거위털 대신 폴리에스테르로 채워진 패딩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 온 몸이 으슬으슬 떨렸다. 하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바로 그 길의 끝에 있을 강하늘에 대한 기대 덕분이었다.

대중에게 그의 이름을 알렸던 작품은 김은숙 작가의 SBS ‘상속자들’이었지만, 강하늘이라는 석 자를 시청자들의 뇌리 속에 남겼던 결정적 그것은 분명 tvN ‘미생’이었다. 여기서 그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의 대척점이자 조력자인 장백기를 연기하며 브라운관의 샛별로 떠올랐고, 영화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성공가도를 달렸다. 아니, 달리는 중이다.

지난 2015년부터 지금까지 영화 ‘동주’를 비롯해 강하늘이 주연을 맡은 작품만 무려 여섯 편. 과거 아름다운 필모그래피를 만드는 것이 꿈이었다는 그는 “저는 개인적으로 그 꿈이 성공 중이라고 믿는다”며 그만의 강단을 내비쳤다.

“아름다운 필모그래피란 타인의 시선 대신 연기자인 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필모그래피를 돌이켜 봤을 때 창피하지 않은 것, 필모그래피를 읽을 때 부끄럽지 않은 것.”

무엇보다 자신의 만족이 작품 선택의 최우선 요소라고 이야기하는 강하늘. 세상에서 가장 엄격한 심사위원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내면의 잣대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 엄중한 기준을 거쳐 그가 2017년 정유년 선택한 첫 결정이 영화 ‘재심’이다.

전라북도 익산시 약촌 오거리에서 발생했던 살인 사건을 재구성한 이번 작품에서 강하늘은 누명을 쓴 채 10년을 감옥에서 보낸 현우 역을 맡았다. 변호사 준영을 연기하는 배우 정우와 연기 앙상블을 이룬다.

“김태윤 감독님, 정우 형, 저. 이렇게 셋이서만 드라이 리딩이라고 감정을 넣지 않는 리딩을 했다. 그런데 형이 옆에서 울더라. 저는 그냥 읽고 있는데 ‘나도 울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우 형은 정말 감성적인 사람이다. 그런 정우 형의 모습에 감동받기도 했고, 시나리오가 너무 재밌어서 ‘재심’을 선택하게 됐다. 더불어 연기자 스스로 촬영을 재밌게 생각해야지 좋은 작품이 나온다. 어떻게 하면 즐겁게 찍을 수 있을지 정우 형과 많은 고민을 나눴다.”


강하늘은 인터뷰 중간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다”는 말을 사용했다.

그의 말처럼 ‘재심’은 실제 사건과 허구의 인물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한 새로운 스토리가 러닝 타임 119분을 이끌어간다. 하지만 아직 개봉도 하지 않은 작품에 쏠리는 대중의 관심은 분명 강하늘과 정우라는 두 배우뿐 아니라 실화를 극화한 요인도 큰 부피를 차지할 것이다.

지난 2016년 11월 재심에서 법원은 ‘약촌 오거리’ 사건(2000년 08월10일)으로 10년을 복역한 실제 주인공 최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고, 강하늘은 그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시작했다.

“어쨌든 ‘약촌 오거리’ 사건에 대해 한마디도 안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저는 그분이 지내온 세월을 단 하루도 모르고 어떤 감정으로 살았는지 함부로 알 수도 없는데, 무의식적으로 뱉는 말 몇 마디에 그분의 가슴 속 깊은 곳의 상처를 끌어낼까봐 무서웠다.”

“혹자는 캐릭터 연구에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물었지만, 그분을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던 것이 사실이다. 일상적인 말만 하려고 노력했다. 가족 분들과 사진을 찍으며 나중에 술 한 잔 하자고 약속했다. 제가 그분에게 느낀 것은 순박한 아버지의 느낌이었다.”

최 씨가 겪었을 과거를 걱정하는 그의 말처럼 어쩌면 ‘재심’은 입에 올리기 무거운 소재를 다루는 진중한 작품으로 대중에게 비칠 수 있다.

그러나 언론시사회에서 김태윤 감독이 언급했던 “영화의 사회고발 여부는 회의적이다”는 의견처럼 ‘재심’은 의식의 환기보다 휴머니즘이 짙은 작품이다. 

강하늘이 생각하는 작품 속 휴머니즘은 어떨까. 그는 자신을 울컥하게 만든 장면으로 배우 김해숙이 연기하는 순임과의 갯벌 신을 꼽았다.

“휴머니즘이 바탕되는 영화답게 다른 감정 신들도 많고, 갯벌 신은 연기자에게 그렇게 깊은 감정을 요구하는 촬영은 아니었다. 뭔가 마음 아리는 부분이 있긴 했지만 앞이 안 보이는 어머니 순임을 위해 달라진 현우가 집에서 갯벌까지 줄을 연결하는, 둘의 좋은 한때를 보여주는 장면일 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전체 촬영이 다 끝났지만 여전히 그 장면이 뇌리 속에 남아있었다. 그래서 후시녹음에 가서 한번만 다시 보여 달라고 감독님에게 부탁까지 했다. 감독님이 내부에서도 회자가 많이 되는 신이라며 웃으시더라.”


강하늘의 화법에서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는 단어는 바로 연기자다. 연기를 하는 이가 대개 아무런 의심없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단어인 배우 대신, 그는 언제나 연기자라는 세 음절로 자신을 지칭했다.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것처럼 사전에서 두 단어는 대동소이한 의미를 가진다. 배우가 ‘연극이나 영화 따위에 등장하는 인물로 분장하여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다면, 연기자는 ‘영화나 연극 따위에서, 전문적으로 연기를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된다.

그러나 강하늘은 아직도 자신의 연기를 미생(未生)으로 생각하는 듯, 배우는 완생(完生)에게만 허용되는 단어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겸손함을 표시했다.

“얼마 전 SBS ‘2016 SAF 연기대상’에서 판타지 드라마 부분 ‘우수연기상’을 받았는데, 갑자기 좋은 상을 주시니까 더 모르겠다. 배우가 무엇인지, 연기를 잘하는 기준은 어떤 것인지 진짜 모르겠다. 저는 정말 즐기면서 작품을 촬영하고 싶다. 잘했다, 못했다 신경 쓰는 것보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그리고 그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이 마음 하나 밖에 없는 거 같다, 요즘은.”

끝으로 강하늘은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현재를 불행하다고 믿는 타인에게 건네고 싶은 교훈조의 말은 아니었지만 그의 말을 들으니 관습적으로 하루를 살아왔던 그리고 언제나 과거의 행복만을 쫓았던 기자 스스로를 반성하게 했다.

“제가 요즘 책 한 권을 통해서 정말 많이 행복해졌다. 누군가 언제 제일 행복한지 묻는다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뭐든 ‘내가 행복하지 않을지언정’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아, 그때가 진짜 행복했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마자 동시에 떠오른 또다른 생각은 ‘어차피 지금 순간도 나중에 돌이켜보면 행복한 시간이 아닐까?’였다. 결론은 딱히 불행하지 않으면 지금이 제일 행복하다는 것이다. 다행히 불행한 것이 없기에 전 지금이 행복하다.”


“인터뷰 종료하겠습니다”는 관계자의 말에 다시금 밖에서 조우할 한겨울 추위를 걱정하던 찰나, “항상 재밌는 시간은 빨리 간다”는 취재진을 향한 강하늘의 우렁찬 한마디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아마 그가 아닌 다른 배우였다면 이런 표현은 의례적으로 건네는 인사말 정도로 치부됐을 것이다.

그러나 1시간 동안 그에게 건네졌던 질문의 숫자만 약 50여 개. 50개의 질문과 50개의 답변 속에서 느낄 수 있던 인간 강하늘은 어쩌면 ‘재심’에서 만났던 그의 연기보다 더 순수하고 훌륭했다. 인터뷰가 진행됐던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한 카페에서 안국역까지 걸어오며 웬일인지 추위가 한결 물러간 기분이었다. 인간 강하늘 덕분이었다.

한편, 영화 ‘재심’은 2월15일 개봉해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사진제공: 오퍼스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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