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빙’ 얼음이 녹자 드러나는 배우 조진웅

입력 2017-03-03 08:00  


[김영재 기자] “하루아침에 전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할 것이다”

조진웅은 점진(漸進)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배우다.

사실 그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는 주인공의 현란한 쌍절곤에 얻어맞는 패거리 중 한 명일뿐이었다. 하지만 이어 KBS ‘솔약국집 아들들’의 브루터스 리,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김판호 등 인생 캐릭터들을 만나 명품 조연으로 우뚝 섰고, 그는 오직 7년 만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아우르는 신스틸러가 됐다.

그리고 마침내 tvN ‘시그널’이 운명처럼 조진웅을 찾아왔다. 그는 ‘시그널’에서 인간미가 돋보이는 심금을 울리는 열연으로 대중의 지지를 한 몸에 받았고, 신스틸러가 된 지 몇 년 지나지 않아 자타가 인정하는 주연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이에 정의를 추구하고, 불의를 징벌하는 ’시그널’ 속 이재한 형사 역할이 참 멋있었다고 칭찬을 건넸다.

“제가 연기한 극중 인물을 좋아해주는 건 배우가 받을 수 있는 큰 칭찬이기에 기분이 좋다. 굉장히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부연 설명을 드린다면 그런 역할은 누가 연기해도 그렇게 멋있게 나온다. (웃음)”

“문득 가수에게 노래가 좋다는 칭찬은 어떤 의미일지 궁금해졌다. 아마 배우가 연기 좋다는 얘기를 듣는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칭찬을 듣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것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 더 많다는 것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작업에 더 매진하게 된다. ‘연기 잘하는 것’이란 꿈을 쫓다 보면 칭찬은 자연스레 따라온다.”

배우의 꿈은 업(業)인 연기를 잘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조진웅. 데뷔 13년 차 배우로서 이제는 연기 탐구를 향한 고삐를 늦출 법도 하지만, 그는 여전히 과거 연극영화과 시절의 풋풋한 연기학도처럼 연기를 잘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연기 바라기’다. 그리고 그의 연기가 빛나는 작품이 3월1일 개봉했다. 영화 ‘해빙(감독 이수연)’이다.

수면 내시경 도중 환자의 살인 고백을 듣게 되는 서스펜스를 그리는 이번 작품에서 조진웅은 살인 사건의 공포에 몸서리치는 의사 승훈 역을 맡았다. 승훈이 세든 원룸의 집주인이자 서늘한 감시자 성근을 연기하는 배우 김대명과 연기 호흡을 맞췄고, 뿐만 아니라 살인을 고백한 치매 환자 정노인을 공연하는 배우 신구와도 앙상블을 이뤄냈다.

“신구 선배님과의 작업은 행복했다. 설명하기 어려운데, 저는 우선 감사했다. 그 연세에도 관객들과의 소통을 노력하시는 점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감사한 마음이 컸다. 신구 선배님뿐 아니라 모든 선생님들과 연기할 때는 꼭 이런 생각이 든다. ‘만약 배우로서 늙어가게 된다면 꼭 저렇게 나이가 들고 싶다.’ 과연 그렇게 될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김)대명이의 팬이기에 기대를 많이 했다. tvN ‘미생’은 재방송이라도 틀어둬야 마음이 편해지는 작품이었는데, 거기 나왔던 김대명 배우와 연기하니 얼마나 기분이 좋았겠는가. 이 친구가 묘한 매력이 있다. 착하다를 넘어 선한 사람이다. 더불어 호흡할 수록 편안함을 주는 열려 있는 배우이기에 서로 시너지가 있었다.”


조진웅이 존경하고 사랑하는 배우들과 같이 작업했던 ‘해빙’이다.

하지만 예비 관객이 극장에서 예고편을 봤을 때 단정 지을 수 있는 특징이 한 가지 있으니, 그것은 이번 영화가 조진웅 단독 주연작이란 점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의 필모그래피를 첫 장부터 훑어본다면 ‘해빙’은 그의 첫 번째 원 톱 영화기도 하다.

완주, 신명, 악몽 등 승훈 역할이 얼마나 고됐는지 그의 고민이 전달됐다.

“촬영 전에 어떤 지점들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포인트를 정해두고 시작했다. 그리고 언론시사회에서 들었던 감정은 그 지점들을 완성 아닌 완주해서 다행이라는 안도였다. 그만큼 승훈은 불안 요소가 많은 인물이다. 건들면 뭐라도 부숴질 거 같은. 그렇기에 계산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그게 배우로서 신명나고 재미난 지점이었다.”

“하지만 작업에 몰입할수록 처음에는 승훈이 이렇게 에너지 증폭이 큰지 몰랐기에 ‘이걸 왜 했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웃음) 그러나 어떤 영화에서는 연기하는 인물이 기능적으로 존재할 때도 있는데 승훈은 그런 게 아니었다. 요즘 홍보 시즌을 맞아 ‘해빙’을 다시 생각 중인데 악몽도 꾸고 그런다. 참 고민이 많은 영화였다.”

그에게도 까다로운 역할이 존재한다는 것은 낯선 이야기였지만, 고민 속에서도 연기를 흥(興)으로 삼았다는 부분만큼은 ’연기꾼’ 조진웅의 특징이기에 반가움이 느껴졌다. 낯섦 속에서 발견한 당연함이랄까. 승훈이 가진 에너지의 폭만큼 그간 연기 스펙트럼의 폭도 끊임없이 넓혀 온 그는 분명 연기의 상흔을 훈장으로 여기는 천상 연기자였다.

“수갑에 묶여 있는 장면이 있었다. 진짜 수갑이었는데 제가 너무 발버둥 치니까 나중에는 그게 풀릴 정도였다. 그리고 집에 왔는데 팔꿈치까지 멍이 들었더라. 약간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저는 멍이 든 것을 보고 ‘이렇게까지 했구나’라고 감탄했다. 아내에게도 ‘수갑을 찼는데 이렇게 됐다’며 자랑했다. ’해빙’의 매력이 이 정도다. (웃음)”


이제 명실상부 주연 배우인 조진웅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2017년 개봉 예정 영화가 ‘해빙’ 외에도 무려 두 편이 더 있다. 배우 이성민과 공연하는 ‘보안관’과 배우 송승헌과 호흡하는 ‘대장 김창수’다. 이에 그는 “1월31일에 ‘김창수’를 크랭크 업 했고, 2월2일부터는 ‘공작’이라는 신작을 크랭크 인 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배우 하정우 못지 않은 충무로의 일꾼으로서 열일 중인 그의 오락(娛樂) 시간이 궁금했다.

“스케줄은 꽉 차있지만 힘들진 않다. 저도 중간에 쉬고 그런다. 특히,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는데, 이번에는 노림수를 가지고 미국 라스베가스의 쇼를 보러 갔다. LA 가자마자 바로 라스베가스로 이동해서 쇼를 봤는데, 기가 꽉 차더라.”

“쇼에 기하학적인 돈이 들었더라. 무대 테크닉이 대단했다. 해전, 승강, 물, 불, CG, 나중에는 부감 샷까지. 부감 샷이 나올 때는 “부감이네 저거?”라며 스스로 기가 찼다. 더불어 커튼 콜 할 때 배우들 표정 속 프라이드가 대단했다. ‘너희들 잘 봤어? 우리는 이래’라는 게 딱 느껴지니까 대접 받는 기분이었다.”

끝으로 조진웅은 극중 강남 개업의에서 신도시 계약직 의사로 전락한 승훈의 경우를 예로 들며 매일 최선을 살겠다고 다짐했고, 현 시국에 대한 부담감을 드러내며 ‘해빙’의 성공을 기원했다. 어느 쪽이든 위트가 한 스푼 첨가된 조진웅 식 화법이었다.

“간단한 대답을 원하시니까 오히려 더 어렵다. (웃음) 우선 다음 작품인 ‘공작’ 촬영을 잘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해빙’의 승훈이처럼 하루아침에 전락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매일 찍는 쇼트마다 최선을 다할 것이다. 후회 안 남게, 손님들 모시고 함께 보는 VIP 시사회에서 어깨 펴고 당당히 볼 수 있게. (웃음)”

“이번 영화는 이수현 감독의 시그니처가 드러난 작품이다. 부디 배우인 제가 느꼈던 신명이 관객들에게도 어느 지점에서는 통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겠다. 사실 개봉일이 3.1절이다. 시국도 이렇고, 태극기와 촛불이 붙는 이 시점에 한강에 목 없는 시체가 왜 떠오르는지. (웃음) 홍보하기 정말 어렵다. 난관이 많지만 성원을 부탁드린다.”


‘해빙’의 광고 문구인 ’얼음이 녹자 드러나는 살인의 비밀’에서 얼음이란 봄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녹기 시작하는 서울 한강의 실제 얼음을 뜻한다. 그러나 얼음은 동시에 조진웅을 감싸고 있는 대중의 편견이기도 하다. ‘원래 연기 잘하는 배우’라는 오해 말이다.

조진웅은 분명 연기 잘하는 배우다. 하지만 그의 단어 하나를 빌리자면 연기가 DNA에 새겨진 배우는 아니다. 그는 연기파 대신 연기를 사랑하고, 팔뚝을 수놓은 멍에 감사하는 열정파다. 그리고 연기의 고됨에 지쳐 후회하기도 하는 인간미의 소유자다.

‘해빙’에서 마주하는 조진웅을 보고 관객들은 또다시 연기 좋다는 말을 연발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의 연기는 당연한 것이 아닌 쉼 없는 노력의 결과로, 이를 염두에 둔다면 그의 연기는 향이 한층 배가된 감사한 것이 되어 가슴에 와 닿을 것이다.

한편 영화 ‘해빙’은 전국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사진제공: 앤드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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