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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재 기자 / 사진 조희선 기자] “대중과 함께 숨쉬고, 같이 기뻐하고 싶다”
박경수 작가의 신작 SBS 월화드라마 ‘귓속말(극본 박경수, 연출 이명우)’이 5월23일 종영했다. 권력 3부작 ‘추적자 더 체이서(THE CHASER)’ ‘황금의 제국’ ‘펀치’를 완성시킨 대가의 차기작이기에 또 다른 명작의 탄생 여부가 관심을 모았던 것이 사실. 남녀 주인공이 돈과 권력의 거대한 패륜을 파헤친다는 시놉시스가 작가의 전작들처럼 현실 부조리의 파훼를 예고했고, 이는 마지막회 시청률 20.3%(닐슨 코리아 기준)라는 기록과 함께 대중의 공감을 얻었다.
그리고 이 가운데에 배우 권율이 있었다. 권율이 연기했던 강정일은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캐릭터. 또한, 이 캐릭터는 어느 때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그리고 어떤 순간에는 이별을 겪은 남자로서 시청자들의 마음을 울게 만들었다. 악역은 감정 이입을 쉽도록 돕는 기능적인 역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권율의 강정일은 목석같지 않았다. 작가가 원고지 위에 풀어낸 필력의 힘도 크겠지만, 아마 배우 역량도 칠팔 할은 되리라.
5월25일 서울시 종로구 한 카페에서 bnt뉴스가 권율을 만났다. 먼저 드라마 종영 소감을 물었다. 배우에게 소감을 묻는 것은 어느 인터뷰에나 적용되는 마수걸이지만, 유독 권율의 입으로부터 세상 밖으로 쏠아질 대답은 기자의 궁금증을 자극했다. 이유는 취재진을 맞이하는 그의 미소를 머금은 얼굴 때문. 배우도 사람 아닌가. 인터뷰 시작에 앞서 과거 인터뷰에서 스쳐지나갔던 어느 기자의 안부를 묻는 여유는 아마 행복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지금은 굉장히 시원한 느낌이 제일 크다. 연기하는 것도 너무 힘들었고, 대사를 외우는 것도 많이 힘들었고, 잠도 많이 못 자서 힘들었다. 일단 외울 대사가 없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항상 뭔가를 손에 들고 다녔는데, 지금은 없다는 것이 어색하기도 하고 좋기도 하다. 다음 주쯤 되면 시원섭섭의 섭섭이 몰려오지 않을까 싶다. 큰 사랑 받으면서 끝나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귓속말’이 많은 분들에게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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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귓속말’ 출연 배경으로 이우철 감독의 영화 ‘사냥’을 언급했다. 작중 권율은 등장인물들의 대립각에서 또 다른 긴장감을 유발하는 맹준호 역을 맡았다.
“이명우 감독님께서 ‘눈이 확 도는 신을 ‘사냥’에서 봤다. 그 눈을 표현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시더라. 게다가 박경수 작가님의 극본 아닌가. 이명우 감독님의 연출까지 더해진다면 그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강정일은 전작에서 계속 쌓아온 얼굴들과 연기들을 감독님이 좋게 봐주셔서 확장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캐릭터였다. ‘제대로 한번 해보자’라고 말씀하셔서 흔쾌히 선택했다.”
강정일은 악역이다. 심지어 악행을 저지를 때만큼은 ‘대놓고 악역’이라는 표현이 정확한 인물. 연기 주안점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조금 더 예민하고, 조금 더 분노의 폭을 표현하면서 그것을 이성적으로 누르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했다.
“동물적인 감정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누르고, 재단하고, 계획하고, 그 안에서 도모하다가 그것이 안 됐을 때 확 터져 나오고, 다시 그것을 추스르고, 또 다른 묘안을 찾고, 거기에 대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나의 목표에 달려가는 것에 중점을 뒀다. 어찌 되었든 강정일은 자신이 세운 목표에 관해 쭉 달려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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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율의 악역은 앞서 소개했듯 이번 작품이 처음이 아니다. 하지만 ‘귓속말’의 강정일은 2부작 ‘너를 노린다’에서의 염기호 역이나 16부작 ‘싸우자 귀신아’의 주혜성 역보다 대중의 반향이 훨씬 크다. 아마 그의 실재감 넘치는 연기가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벌써 여러 번의 악역 경험. 이에 대한 걱정을 물으니 “사실 걱정은 없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음식 비유를 통해 기자를 수긍시켰다.
“작품이 좋다면 악역이든 선역이든 배역의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강정일로 인해 약간 다른 느낌의 캐릭터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만, 그래도 다른 느낌의 악역이라면 그것도 괜찮다. 좋은 작품이고, 좋은 캐릭터고, 메시지가 있다면 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의식적인 변화 아닌 당시에 정말 하고 싶은 작품을 선택한다. 이제 이 반찬을 마음껏 먹어봤으니, 다른 음식도 한 번 먹어보고, 맛있으면 다시 찾아갈 수도 있고.”
이번 인터뷰에서 권율은 비유를 많이 사용했다. 비유는 즉석에서 떠오르지 않는다. 그는 생각이 많은 배우였다.
또한 ‘귓속말’은 권율 필모그래피 미니시리즈 중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tvN ‘식샤를 합시다2’ 등을 통해 부드러운 남자를 뜻하는 ‘밀크남’의 명성을 떨쳤지만, 그와 반대되는 속성의 캐릭터로 인기를 얻은 것. 악역에 수반되는 질문은 많이 건넸으니 이번에는 숫자에 집중해서 궁금한 것을 물어봤다. 권율에게 ‘귓속말’의 최고 시청률 20.3%는 어떤 의미일까.
그는 “사실 체감이 잘 안 된다”라며, “흥행을 했다는 느낌보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분들이 수치적으로 보상을 받았다는 느낌이다. ‘우리 흥행했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많이 없을 것 같다. 숫자에 감사하다 그리고 고생했던 순간에 대해서 수치적인 보상을 받았다는 것에서 고맙게 생각 중이다”라고 겸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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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모바일 시청이 대중들의 주요 시청 방법의 한 갈래가 된 지금, 방송 시청률 20%가 넘는 흥행은 -과거에도 그랬지만- 현 시대에는 예삿일이 아니다. 이는 박경수 작가 대본을 향한 시청자들의 믿음이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터. 권율은 대가의 작품에 출연했던 소감으로 “늘 공부하는 마음이었다”라고 털어놨다.
“이 장면에서 작가님은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었을까 고민했다. 의중을 먼저 파악하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일지 하나하나 뜯어 살피듯이 대본을 봤다. 마지 고전 문학을 공부할 때 하나도 허투루 지나가는 일 없이 읽듯이 접근했다.”
이어 그는 “연극 대본을 하루에도 수십 번, 수백 번 봤던 것처럼 이 신에서, 이 장면에서 내가 보여줘야 할 정서와, 에너지와, 느낌을 어떻게 표현할 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 부분을 표현하기 위해 굉장한 애를 썼다.”
박경수 작가의 글에 빠지지 않는 것은 사회 비판이다. 뉴스의 전유물이던 ‘비선 실세’라는 단어가 주인공의 입을 통해서 나오는 것이 평범하게 느껴지는 것은, 작가의 비판이라는 본질을 대중도 인정하고 공감했기 때문. 하지만 아직 대한민국은 유명인의 사회 참여와 미디어의 세태 풍자가 경직된 사회다. 이와 관련 권율은 “박경수 작가님의 철학과 세계관”이라는 생각을 전달했다. 또, “드라마는 시대상을 투영하는 매체”라는 말을 덧붙였다.
“로맨스 물에서 썸이 등장했듯이 ‘귓속말’은 어떤 작은 귓속말을 하는 사람들의 싸움에 대한 이야기이자, 시대상이 투영된 작품이었다. 특정 인물이나 단체나 상황을 빗댄 것보다 시대가 투영되기 때문에 드라마의 소스로 쓰였다는 생각이다. 배우에게 연기는 연기이고,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다. 대사를 조심하거나 강조하는 것 없이 텍스트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다른 비판적인 부분은 개의치 않았다. 매체의 자연스러운 특성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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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귓속말’의 강정일 이전에 권율은 영화 ‘명량’의 이회였고, 이외에도 약 서른 편의 작품들에 이름을 올렸다. 필모그래피가 한 척의 배라면 그는 어떤 방향으로 방향타를 움직이고 있을까.
“그때그때 나에게 필요하고, 하고 싶고, 좋은 대본과 좋은 제작진이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선택하게 된다. 내가 공부할 수 있고, 도전할 수 있고, 재밌게 할 수 있는 것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이것에 대해서 내가 그 작업 물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다면 좋은 필모로 남을 것이고, 허투루 한다면 부끄러운 필모가 될 것이다. 그런 후회를 안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필모는 내가 선택해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선택하고 나서 결과물로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뒤돌아 봤을 때 부끄럽지 않은 필모가 되도록 연기하고 있다.”
권율은 배우지만 동시에 MC였다. ‘무비스타 소셜클럽’이라는 방송에서 그는 대중에게 영화를 안내했던 바 있다. ‘귓속말’을 통해 배우 권율의 매력에 이제 갓 흠뻑 빠진 시청자들을 위해 그의 진가를 확인 가능한 작품 안내를 부탁했다.
“영화 ‘잉투기’를 한번 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최악의 하루’도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다.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리고 내 입으로 이야기하기 쑥스럽지만 주옥같은 영화들이다. 강정일을 봐주셨고, ‘귓속말’을 시청하셨고, 배우 권율을 응원해주셨고, 시간이 남으신다면 한 번 봐주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많이 안 비싼 영화들이다. (웃음)”
인터뷰가 마지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권율은 “아쉬우면 마지막 하나”라며 질문을 종용했다. 비슷한 질문들과 대동소이한 대답들이 탑을 쌓아가는 라운드 인터뷰. 그 안에서 피곤 대신 의지를 내비친 권율의 요청에 기자는 이타성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재능 기부 및 자선 활동 등 기사로 만나는 권율은 이타적인 사람이었기 때문. 이에 그는 자신이 돋보이는 말보다 타인의 도움에 감사를 전했다. 포장하지 않은 솔직함이 취재진을 맞이했다.
“혼자라면 접근 방법도 몰랐을 것이다. 어떻게 먼저 할 수 있는 방법이나 디딤돌을 몰랐을 수도 있다. 하지만 NGO 활동이나 나눔에 대해서 철학을 가지고 계신 대표님 밑에 있다 보니까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흔쾌히 참여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은 나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만 시작점을 모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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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권율은 영화 ‘피에타’와 연계된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굉장히 의미 있는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스펙트럼을 계속 넓히고 싶다”라고 답했던 바 있다. 어느새 5년은 훌쩍 지났고, 권율 또한 훌쩍 성장했다. 그의 소망이 거짓말처럼 현실화된 것이다. 그는 “피에타 때는 나라는 배우가 있다는 것을, 내가 어떤 가능성을 갖고 있는지를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라며, “지금은 스펙트럼의 확장보다는 계속 차곡차곡 쌓아가는 중이다”라고 운을 뗐다.
“앞으로도 5년을 주기로 잡는다면 이 가능성을 가지고 얼마만큼 공감을 얻고, 인정을 받고, 사랑을 가질 수 있는지에 중점을 두고 싶다. 대중과 함께 숨쉬고, 같이 기뻐하는 배우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기도 연기지만 우선 좋은 사람이 돼서 정신적 해소를 도울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다. 재밌고, 신나고, 연기를 더 보고 싶게 만드는 막연한 기대감을 안겨주는 배우 말이다. 시기를 잘 다져서 더 신뢰가 되는,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정신적 해소라는 표현이 기자의 머릿속을 자꾸만 맴돈다. 일차적으로는 표현의 생소함 때문이겠지만, 더불어 개인 대신 타인을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권율의 이타성도 한 몫 차지하리라. 인정을 원하는 배우에서 인정받고 있는 배우로 한 단계 도약한 권율. 타인에게 인정받고 싶은 그의 욕구가 5년 후에는 그를 어떻게 완성시킬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사진출처: bnt뉴스 DB, SBS ‘귓속말’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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