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보행자를 두려워하지 않는 운전자

입력 2017-07-03 12:20  


 -횡단보도 정지선을 지키나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려는 보행자가 서 있다. 그 사이 여러 대의 자동차가 횡단보도를 빠르게 지나간다. 그러자 횡단보도로 진입하려는 보행자가 멈칫하며 좌우를 마치 죄짓는 것처럼 살핀다. 그리고 마침내 보행자를 발견한 운전자가 차를 세우자 빠른 걸음으로 길을 건넌다. 천천히 가라는 손짓을 했지만 오히려 횡단보도로 길을 건너는 것 자체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빛을 교환한다. 도로교통법은 횡단보도에서 사람이 건널 때 무조건 자동차가 멈추도록 규정했지만 현실은 보행자가 반대로 눈치를 보는 형국이다. 

 평소 운전을 하다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횡단보도 앞 정지선이 있지만 지키지 않는 운전자가 대다수이고, 오히려 보행자를 위해 멈추면 뒤에서 경적이 울려온다. 보행자 횡단을 운전자가 왜 기다리느냐는 불만의 표시다. 횡단보도 자체가 보행자를 위한 도로임을 알고도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정말 몰라서 그런 것인지 되묻고 싶지만 이상한(?) 운전법이 마치 정상적인 생활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언제부터인가 국내에서 자동차는 도로 위 최강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자동차산업 활성화를 위해 많은 지원을 했고, 덕분에 자동차는 한국의 수출 주력 제품이 됐다. 또한 자동차 한 대가 판매될 때마다 정부의 곳간이 넉넉해졌고, 경제적 여유가 생겨나자 유교 문화의 영향인지는 몰라도 남보다 큰 차, 비싼 차, 고급 차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구매자의 지갑을 더 열기 위해 다양한 '특별(?) 서비스'를 제공하자 '역시 자동차는 큰 차를 타야 돼!'라는 인식이 굳어졌다. 

 그런데 사회 전반에 걸친 큰 차 선호 현상은 국내에 잘못된 자동차 문화를 만들어냈다. 마치 고급차를 타면 운전자 스스로도 고급(?) 이미지를 얻는다는 착각 말이다. 이런 착각은 결국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에게 경적을 울려도 된다는 이상한 우월 의식으로 진화했고, 보행자 보호를 위해 정지선에 서주는 것 자체가 미덕으로 주목받도록 했다. 오죽하면 당연히 지켜야 할 규정을 준수한 것뿐인데 정지선을 지킨 것 자체가 추앙받으며 TV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심각하게 받아들여 할 것은 차의 크기를 떠나 운전자 모두에게 '보행자 우선' 인식이 점차 약화된다는 점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려는 보행자가 질주(?)하는 자동차의 눈치를 보는 것 자체를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동차 선진국으로 가자며 오로지 등록대수 늘리기에만 치중한 결과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낸 잘못된 문화가 아닐까 한다.  

 지난해 서울시에 등록된 승용차 가운데 배기량 2,500㏄ 이상은 50만3,000대다. 물론 엔진 다운사이징 현상을 감안하면 31만대에 달하는 2,000㏄ 이상 승용차 가운데 흔히 말하는 '고급차'도 부지기수다. 전체 259만대 가운데 중대형차의 비중이 31%에 이른다. 물론 이들이 모두 정지선을 지키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러나 중대형차 비중이 늘어나는 것과 비례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바라보는 인식도 함께 변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정작 가야 할 방향은 그 반대이고, 운전하지 않는 시간은 우리 모두가 보행자임에도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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