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형 모터쇼가 각광받는 시대
"한국에서도 최고급 골프장에, 최고급 자동차들이 모여 그들만의 방식대로 자동차를 팔고 사는 특별한(?) 자리가 마련된다면 어떨까?" 아마도 '글쎄…'라는 반응이 적지 않을 것 같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최고급'이란 단순히 가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시대를 반영한 클래식카도 최고급에 포함된다.
1950년 미국의 부호들이 모여 사는 캘리포니아 페블비치(Pebble Beach)에서 재미나는 자동차 모임이 시작됐다. 각자 보유한 클래식카를 한 곳에 모아두고 서로 구경하는 자리였다. 물론 캘리포니아의 유명한 드라이브코스인 '17마일 드라이브'를 달려보려는 그들만의 욕구(?)가 모임을 결성했고, 각자가 보유한 클래식이야말로 '최고'라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그러다 별도 심사위원단을 만들어 그 해 최고의 클래식카를 뽑기도 했다. 세계 최고의 클래식카 파티로 불리는 '콩쿠르 델레강스(Concours d'Elegance)'의 시작이다.
물론 부호들의 모임이었던 만큼 콩쿠르 델레강스에는 그들 생리(?)에 걸맞은 경제 논리도 적극 도입됐다. 최고의 클래식카로 선정되면 수집가 사이에서 가격이 크게 뛰었으니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한 관리는 기본이었고, 17마일 드라이브 코스를 거침없이 주행해야 했다. 움직이지 않는 자동차는 의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해마다 관람객이 늘어나자 '그들만의 리그'를 외쳤던 참가자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사람들이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게 이유였다. 그래서 관람객 숫자를 제한하기 위해 구경하는 것조차 유료를 결정했다. 그럼에도 미국을 비롯한 세계의 대부호와 수집가, 그리고 클래식카를 보려는 사람들은 해마다 페블비치 골프코스의 18번홀을 찾았다.
명실상부한 부호들의 자동차 파티로 자리 잡자 페블비치를 주목한 곳은 자동차회사다. 고가의 최고급 차를 만드는 사람에게 콩쿠르 델레강스 참가자들은 곧 타깃 소비층이자 컨셉트 제품의 최고 평가자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페라리와 람보르기니는 물론 파가니와 AMG, BMW 등이 페블비치를 찾아 비밀리에 컨셉트카를 보여주기도 했다. 컨셉트만 모아 둔 공간의 입장료만 40만원이 넘지만 각 제조사의 새로운 비밀병기(?)를 보고 싶은 이들에게 입장료는 문제되지 않았다.
지난주 2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 페블비치에서 막을 내린 2017 콩쿠르 델레강스도 예외는 아니다. 캐딜락, 렉서스, 페라리, 인피니티, 애스톤마틴, 메르세데스 벤츠 등이 불과 이틀의 쇼를 위해 전시 무대를 만들었다. 이외에 폭스바겐도 미래 친환경 제품을 싣고 와 주목을 끌었고, 현대차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도 페블비치를 놓치지 않았다. 한 마디로 최고급(?) 소비자가 모여 있으니 여러 제조사도 이들을 따라가는 형국이다.
그러나 페블비치가 수많은 프리미엄 브랜드의 각축장으로 변할 때 독일에서는 2017 프랑크푸르트모터쇼 참가회사가 줄었다는 소식이 날아들었다. 특히 완성차회사의 발 길이 점차 잦아들기 시작했다는 소식은 미래 모터쇼의 위상을 가늠할 만한 잣대로 다가왔다. 모터쇼를 방문하는 100만명이 판매에 별 다른 영향을 주지 못하는 만큼 막대한 비용 지출의 필요성이 떨어진다고 여긴 셈이다. 대신 이들은 라스베거스 CES와 베를린의 IFA 등의 전자박람회를 주목하고, 페블비치와 같은 소비층이 명확한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모터쇼의 미래 자체가 암울해지는 형국이다.
물론 이런 흐름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다. 브랜드 차별화를 추구하려는 기업의 욕망(?)이 많아질수록 맞춤형 박람회의 선호도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터쇼도 점차 세분화되는 시대이고, 참가하지 않는다고 핀잔을 들을 사안은 아니라는 의미다. 국내 모터쇼의 참가 기업이 자꾸 줄어드는 것도 같은 맥락이니 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