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대통령도 묘수 없는 한국지엠의 위기 진단

입력 2018-02-08 08:44   수정 2018-02-0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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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회사의 가장 큰 위기는 판매 부진
 -먹고 사는 문제가 죽고 사는 문제 될 수도

 연간 14만대 판매로 위기를 극복해가고 있지만 과거 쌍용차 판매가 지금의 절반인 7만대에 머물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가 2005년이다. 이후 9만대로 올랐지만 2000년대 후반 국제 경유 가격이 휘발유에 맞먹을 정도로 오르며 SUV 시장이 크게 위축되자 디젤 SUV가 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다. 디젤 SUV가 대부분이었던 쌍용차에 엄청난 위기가 닥쳤던 셈이다. 이후 ‘구조조정 vs 고용유지’가 팽팽히 맞서며 극심한 대립을 겪었고, 훗날 회사가 정상화되면 우선 복직을 조건으로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각 자의 시각에서 ‘상하이차의 먹튀’, 회계부정 등을 언급했지만 이는 모두 부수적인 해석일 뿐 80% 정도에 달하는 근본적으로 이유는 바로 국제 경유 가격 인상에 따른 디젤 SUV 판매 부진이었다. 제조물이 안 팔리니 손해는 당연했고, 이 과정에서 신제품 개발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래서 제조업은 어떻게든 물건을 팔아야 공장이 돌아가고 임금과 일자리가 유지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갑자기 과거 쌍용차 얘기를 끄집어 낸 이유는 지금의 한국지엠 상황이 그 때와 다르지 않아서다. 다만 쌍용차처럼 기름 값 직격탄을 맞은 것은 아니지만 제조물, 즉 자동차 판매가 부진한 만큼 돈이 부족하고 이런 상황에서 출고만 기다리는 제조물이 야적장을 가득 메웠으니 공장 가동은 중단될 수밖에 없다. 애써 생산해봐야 더 이상 쌓아 둘 공간조차 부족할 뿐이다. 

 그렇다면 해결의 실마리는 "왜 판매가 부진했을까?"에서 찾는 게 정답이다. 이유는 내수 시장의 포화다. 승용 기준 150만대 시장에서 한국지엠의 비중은 10%를 넘지 못했다. 실제 지난해 승용 시장 점유율은 8%에 머물렀다. 10%도 모자를 판에 2016년 대비 오히려 2.8% 줄었다. 신제품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가격도 매력적이지 못했다. 

 -선택은 '박리다매(薄利多賣)'와 '다리박매(多利薄賣)'
 -내수 승용차 시장 규모, 150만대 내외 한계

 그럼 가격을 내려 판매를 늘리면 됐던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선택은 '박리다매(薄利多賣)'와 '다리박매(多利薄賣)'로 나뉜다. 단적인 예로 1,000원짜리 자동차를 정상 판매해 100원을 남길 수 있다면 100대를 팔았을 때 1만원의 이익이 발생한다. 그런데 가격을 980원으로 내리면 대당 이익은 80원이 되고, 똑 같이 1만원의 이익을 내려면 25%가 증가한 125대를 팔아야 한다. 시장 규모가 1,000대일 때 100대를 팔면 10%, 125대는 12.5%로 증가하지만 이익은 같다. 그런데 경쟁사가 앉아서 점유율을 빼앗길 수는 없다. 그래서 가격을 비슷한 수준으로 내리면 경쟁사 또한 그만큼 판매가 늘기 마련이다. 이 경우 점유율은 다시 10%로 떨어질 수 있고, 한번 내린 가격은 다시 올리기 어려운 만큼 980원으로 100대를 팔면 오히려 이익은 8,000원으로 줄어든다. 따라서 누구든 1,000원을 받고 100대를 팔아 1만원을 남기는 방법을 합리적인(?) 선택으로 여기기 마련이다. 그간 한국지엠이 공격적인 가격 전략을 쓰지 못했던 것도 결국은 둘 가운데 후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현대기아차의 시장 방어력이 워낙 높아 팔 걷고 싸워봐야 얻어갈 실익이 크지 않았던 것이다. 내수보다 오랜 기간 수출에 주력한 것도 이런 국내 시장의 포화가 한 몫 했다. 공장 가동의 유일한 희망은 수출이었고, 덕분에 한 때 생산은 연간 100만대에 육박했다.  

 그런데 GM 본사에 고민이 하나 생겼다. 글로벌 곳곳에 지분을 보유한 공장 가운데 유럽이 삐끗했다. 그래서 오펠의 적자 병을 치유하기 위해 '선택과 집중' 전략을 세웠다. 오펠과 쉐보레 차종이 브랜드만 다를 뿐 유럽 시장에서 겹치니 오펠을 선택하고 쉐보레를 빼버렸다. 그 탓에 유럽 쉐보레 물량을 생산하던 한국지엠에 빨간불이 들어왔고, 생산은 반토막 났다. 이를 두고 한국지엠은 미국 본사에 생산 물량 보전을 요구했다. 


 하지만 GM은 전 세계 모든 공장이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선회한 만큼 한국지엠도 예외는 아니어서 내수 증대라는 돌파구를 원했다. 집중하지 못하는 공장은 모두 폐쇄하면서 내수 증대 구원 투수로 지난해까지 한국지엠 경영을 맡았던 제임스 김 사장을 보냈다. 그의 역할이 내수 증대였다는 점은 많이 알려져 온 사실이다. 그런데 내수 확대는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GM이 원하는 것은 판매 증대에 따른 수익 개선이었던 만큼 가격을 깎아 판매를 늘리는 것은 효과적인 방안이 되지 못했다. 이 경우 판촉비용이 많은 기업일수록 유리해지는 매우 단순한 작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쉐보레가 100만원을 내리면 현대기아차는 120만원을 내렸고, 이 게임에서 쉐보레는 결코 국내에서 현대기아차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게다가 소비자들이 국내 생산보다 미국 생산 제품을 원한 점과 국내 생산 비용도 높았으니 완제품 수입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미국적인 상품성이 국내 소비자 취향을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데다 수익 중심의 가격 전략을 유지해야 했던 만큼 판매 증진은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해결책을 찾던 GM은 가격을 내리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했다. 부품 조달비용을 줄이고, 생산 과정에서 불필요한 요소도 제거해 나갔다. 하지만 생산 비용은 계속 증가했고, 적자 폭은 커져 갔다. 물론 적자 폭이 커진 데는 국내의 상황 변화도 이유로 꼽힌다. 일부에선 통상임금 소송과 GM 본사에 주는 차입금 이자를 원인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이는 과거 쌍용차의 위기 원인을 판매 부진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회계 관련 비용이 판매 부진을 일으킨 원인은 아니라는 의미다. 설령 해당 비용을 차 가격에 녹여 제품 가격을 낮췄다면 내수에서 판매가 폭발적으로 증가했을까? 이와 관련, 자동차미래연구소 박재용 소장은 "자동차 판매는 네트워크 규모와 신차 투입이 점유율을 좌우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단적으로 최근 판매 확대로 주목받는 쌍용차의 경우 소형 SUV를 선호하는 흐름에 잘 올라탔고, 경쟁사가 없는 픽업이 선전해 지난해 내수에서 9만6,000대를 팔았지만 점유율은 6.8%로 전년 대비 불과 0.2% 증가했을 뿐이다. 그 사이 현대기아차의 승용 점유율은 꾸준히 60%~62%를 유지해오고 있다. 다시 말해 제조물을 많이 팔 곳도 없고, 만들어봐야 팔리지 않는 상황에서 차입금 이자와 통상 임금 등의 비용 문제는 2차적인 원인일 뿐 근본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상황임에도 생산 비용은 계속 증가했다. 임금이 지속적으로 상승했기 때문이다. 물론 생활 물가도 오르니 임금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그러자 한국지엠은 올라 간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 공장 가동 시간 축소를 선택했다. 어차피 야적장에 산더미처럼 재고가 있으니 근로 시간을 줄이는 게 최선이었다. 

 그리고 이제 공장도 기로에 서 있다. 부분 가동 중단이 자칫 완전 중단이 될 위기에 처했다. 판매 증대 방안은 마땅치 않고, 강력한 항생제처럼 쓸 수 있는 가격 할인 카드도 없다. 오로지 제품력으로 승부해야 하는데 한국에는 현대기아차라는 강력한 내수 챔피언이 결코 공격을 허용하지 않는다. 물론 노조는 GM이 빌려 준 차입금의 투자금 전환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그 자체가 판매 부진의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투자금 전환으로 가격 결정에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인다 해도 미국 시장 주력 제품이 국내 소비자 만족을 시키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과 미국의 소비자는 취향이 다르고 자동차 생활 자체가 달라서다.  

 -내수보다 수출 배정에서 해답 찾아야
 -전기차 생산, 사태 해결 묘수 될 수도

 그럼 다시 국내 소비자 취향을 고려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만 GM 내에서 한국지엠은 연간 10만대가 간신히 판매되는 한국만을 위한 공장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 내다 팔 제품의 생산 기지다. 연간 150만대 내외 시장에서 한국지엠이 가져갈 내수 판매가 적으니 한국 전용 제품 개발은 그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는 이 같은 현실을 모두 직시하지 않으려 한다는 점이다. 각 자의 입장에서만 목소리를 낼 뿐 근본적인 진단은 애써 외면한다. GM은 아무 가이드 없이 한국지엠 노사가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는 입장이고 노조는 GM을 향해 목소리를 높인다. 또한 한국 정부는 미국 GM보다 한국지엠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제 아무리 머리를 써봐도 판매 부진은 한국형 제품 개발 외에 답이 없어서다. 

 지금의 상황은 역으로도 생각해볼 수 있다. 현대차 미국 앨라배마 공장이 미국 내 판매 부진으로 위기에 빠졌을 때 현대차의 선택은 어떨까? 선택은 두 가지다. 먼저 고비용 구조인 미국 공장을 폐쇄하고 그나마 판매되던 물량을 한국 공장에서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다른 방법은 미국 공장에 대규모 자본을 투입, 가격 할인을 앞세운 판매 증대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일시적 만회는 가능하지만 그 때만 반짝 후 다시 떨어지면 밑 빠진 독에 물 부은 셈이 된다. 그렇다고 연간 10만대 판매도 쉽지 않은 미국 시장을 위한 별도 제품을 개발해 투입하는 것도 부담이다. 게다가 미국에는 GM과 포드 등 쟁쟁한 안방 주인들과 토요타 및 혼다 등의 강력한 견제 세력도 많아 할인 공격을 하면 반격 또한 거세게 들어온다. 결국 미국 생산, 해외 수출이 정답이지만 멕시코 등에 이미 공장이 있어 미국 이외 지역으로 내보낼 곳도 마땅치 않다. 이런 상황에서 앨라배마 미국 노조는 해마다 임금을 높이는 중이다. 현대차 뿐 아니라 한국의 시각에서 미국 앨라배마 공장은 어떻게 해야 정답일까. 대부분 '폐쇄'를 선택할 것이다. 

 그럼 한국지엠의 회생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방법은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앞으로 생산이 늘어날 제품을 배정 받으면 된다. 대표적으로 쉐보레 볼트 EV다. 국내 시장에서 EV의 성장 가능성이 크고, 중국 이외 지역에 공급하는 것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게다가 오펠이 PSA에 매각된 만큼 쉐보레가 유럽 시장에 다시 진출할 때 볼트 EV는 주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 한국지엠이 공급 역할을 한다면 금상첨화다. 

 하지만 쉬운 문제는 아니다. 볼트 EV는 미국 내 GM 공장에서도 결코 물량을 빼앗기지 않으려 하는 인기 차종이다. 심지어 GM 노조는 미국 및 중국 이외 지역에서 볼트 EV 생산을 하지 말라고 경영진에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한다. 나아가 트럼프 정부도 해외로 생산 물량 빼지 말라는 무언의 압력을 넣는 중이다. 따라서 해결책은 GM 본사가 한국에 볼트 EV를 배정할 수밖에 없는 실리 명분을 주는 게 최선이다. 그리고 명분은 한국지엠 노사가 만들어야 한다. 기본적으로 볼트 EV에 들어가는 주요 부품이 한국에서 개발돼 시너지가 높다는 점은 유리한 측면이니 비용의 가치 명분을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노조가 먼저 일정 기간 임금 동결을 선언하는 것처럼 말이다. 물론 노조 집행부는 조합원들로부터 융단 폭격을 받을 수 있겠지만 누구의 말처럼 지금의 한국지엠은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죽고 사는 문제'에 직면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비용이 동결돼 물량을 얻으면 어려워도 먹고 살지만 실리적 명분을 주지 못해 공장이 문을 닫으면 이는 대통령도 해결 못하는 '죽느냐 사느냐'가 될 뿐이다.  

 권용주 편집장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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