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빔]영국이 전기차에 올인하는 이유

입력 2018-03-20 17:42   수정 2018-03-20 17:47


 -전동화(Electrification)로 영국차 산업혁명 부흥
 -정부 주도 기술 개발, 모든 기업에게 무상 제공

 18세기 영국의 물리학자이자 화학자였던 마이클 패러데이(1791~1867)는 전기분야에서 획기적인 공을 세운 인물로 꼽히고 있다. 현재 사용하는 전기모터의 원형을 만들었고, 이른바 발전(發電)을 시도한 덕분에 인류는 다양한 전기시대에 돌입할 수 있었다.
  

 패러데이가 현대적으로 부활한 건 영국의 자동차산업 지속 프로젝트 덕분이다. 화석연료의 종지부를 찍으려는 영국 정부가 자동차부문에서 새로운 주도권을 갖기 위해 '전기화'를 선택했고, 그 중심에 바로 영국 정부의 '패러데이 챌린지' 프로젝트가 자리하고 있는 것. 

 패러데이 챌린지의 산실은 런던에서 2시간 정도 떨어진 미들랜드주 코번트리에 위치한 워릭대학교에 있다. 영국 정부가 이른바 C.A.S.E.(Connected, Autonomous, Sharing, Electrification)로 표현되는 미래 모빌리티분야를 집중 육성할 때 워릭대학교를 배터리 및 자율주행 등의 중요 거점으로 선정, 'WMG(Warwick Manufacturing Group)'라는 독특한 기술 기업을 출범시켰다. 

 글자 그대로 WMG는 워릭대학교에 기반을 둔 기술그룹이다. 소속은 대학이지만 운영은 전적으로 기업 방식이다.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선장이라면 석·박사 학생들은 WMG에 고용된 테크니션이자 워릭대학교 연구자다. 한 마디로 기업 소속이면서 학위 과정을 동시에 수행하는 형태다.

 WMG 리사 바윅 홍보 담당은 "연구업무가 중요한 학교에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사람은 곧 WMG의 직원이자 학생"이라며 "워릭대학교만의 독특한 대학기업 운영방식이 영국의 기술 기반 구조를 새롭게 바꾸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패러데이 챌린지는 WMG가 추진하는 가장 큰 프로젝트 중 하나다. 전기차가 산업혁명에 버금갈 만큼 사회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믿음에서 출발했다.

 페러데이 프로젝트를 이끄는 데이비드 그린우드 교수는 "전기차는 미래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질 분야이고, 다른 분야로의 파급효과가 크다"며 "영국은 자동차산업을 중요하게 보고 있어 배터리 기반의 전기차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WMG가 전기차분야에서 주도권을 노리는 건 배터리다. 셀은 한국이 주도하지만 충전과 에너지 밀적도 향상 등은 영국 또한 앞서 있다. 기존보다 5배 빠른 충전이 가능한 기술을 최근 개발한 건 패러데이 챌린지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배터리 내부에 온도 측정 센서를 삽입, 리튬 이온 배터리의 과충전에 따른 파손을 막은 것. 이 경우 충전시간을 5배 줄일 수 있다. 5시간 충전이 1시간이면 된다는 의미다.

 연구를 주도한 그린우드 교수는 "18650 원통형 셀에 센서를 넣고 실험한 결과 배터리 손상 없이 5배 빠른 충전 가능성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 산학 기술회사가 미래 첨단 기술 개발
 -영국 진출 기업은 무상으로 기술 활용 가능

 영국 정부가 이동수단 전기화에 집중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점차 늘려 가는 신재생에너지 비율이다. 미래 모빌리티 전동화는 각 국가별 에너지 발전방식에 따라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

 이런 질문에 그린우드 교수는 "에너지가 빠르게 변한다는 점에 동의하면서 영국은 해상 풍력이 가장 많은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비용이 높아도 신재생 에너지 발전 비율을 높이는 목표를 국가와 민간기업이 공유하고, 그에 따른 배터리 발전은 이동수단의 전기화뿐 아니라 가정 및 산업부문의 에너지 공급 문제도 해결 가능한 대안으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밝혔다. 시작은 미래 모빌리티분야의 전기화이지만 궁극은 이른바 '전기에너지 혁명'인 셈이다.  


 영국은 정부가 새로운 미래 모빌리티 에너지부문에 무려 47억 파운드, 우리 돈으로 6조 원을 투자했다. WMG를 이끄는 바타차리야 회장 겸 워릭대학교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 "미래는 기술이 이끌어 가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 새로운 기술을 완성하면 필요한 기업이 관심을 보이고, 이들이 기술 상용화를 위해 영국에 일자리를 만드는 선순환 구조가 중요하다는 점을 주목하라고 그는 충고한다.  

 영국 정부가 자동차산업 부흥을 위한 과감한 결정을 내리게 된 배경은 바타차리야 교수의 조언이다. 철의 여인으로 알려진 대처 전 총리가 1970년대 이후 만연한 이른바 '영국병'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과학기술의 부흥을 진언한 인물이 바타차리야 교수다. 인도 공과대학 출신으로 1960년 영국으로 건너와 과학기술과 교육의 협업을 줄기차게 지속해 왔으며,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또한 영국의 산업 발전을 위해 그의 조언을 들었을 정도다. 덕분에 영국에서 귀족 작위를 받았고, 현재도 영국 과학기술 산업 발전의 중요 인물로 여겨진다.

 위기에 직면했던 재규어·랜드로버가 인도자동차그룹 타타모터스로 인수된 것도 그의 아이디어였다. 나아가 정부 지원으로 워릭대학교에 기술개발그룹이 둥지를 트게 된 것도 바타차리야 교수의 역할이 컸다. 왕립과학회원이자 영국 정부의 과학기술자문이며 WMG그룹의 회장을 맡고 있다. 


 -정권 바뀌어도 장기적 관점에서 기술 지원은 지속돼야
 -자동차 부문 일자리, 생산으로 늘어나려면 기술 기반 있어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바타차리야 교수는 산업 발전에 있어 기술 기반이 왜 중요한지 조목조목 짚었다. 그는 "영국은 산업혁명을 주도한 경험이 있어 기본적으로 산업적인 펀더멘탈이 강한 나라"라며 "그에 따라 향후 도래할 새로운 모빌리티시장을 산업 변화의 기회로 삼아 국가 산업구조를 바꾸는 중"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의 산업 구조를 유지하면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는 만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선 산업 구조가 새로워져야 한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자면 더 많은 기술 투자가 이뤄져야 하고, 그랬을 때 기술 매력을 느낀 기업이 영국으로 몰려든다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자동차부문에서 일자리를 만드는 건 과거의 것을 지키는 게 아니라 새로운 기술 기반 구조로 정부가 앞장서 바꿔야 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일부 갈등이 있겠지만 이를 극복하지 못하면 오히려 산업 경쟁에서 뒤처지는 결과가 나온다는 의미다.

 영국은 과거에 이미 이런 경험을 했고, 이를 토대로 대처 및 토니 블레어 총리까지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동차부문의 지원정책이 이어졌다. 그 사이 정권이 바뀌어도 기술 개발 지원은 결코 중단된 바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뜻이다.
 

 그의 기술 관점은 패러데이 챌린지 전체 과정에서 그대로 묻어난다. 배정한 6조 원의 예산은 체계적으로 짠 단계별 전략에 따라 집행한다. 1단계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실현 가능성을 타진한다. 실례로 WMG에선 최근 전기차 배터리의 소재 변경, 소재 비율 구조 변화 그리고 에너지 밀적도 향상 연구에 집중한다. 영국 정부가 오는 2020년부터 전기차의 본격 활성화를 예정한 만큼 배터리 기술을 선점하는 전략이다.


 아이디어의 타당성을 검토한 후 제품 실현 단계로 넘어간다. 실제 만드는 과정에서 부딪칠 장애물 극복은 물론 생산과정의 효율성도 함께 연구한다. 3단계는 자동차회사 등에 새로운 기술을 연결하는 과정이다. 자동차회사가 필요한 연구개발 과정을 생산단계까지 완료한 만큼 적용했을 때의 부작용을 찾는다. 마지막으로 최종 설계에 반영, 소비자에게 건넨다.

 배터리부문의 책임자인 그린우드 교수는 "각 단계별로 지원금액을 투입하는데, 여기서 완성한 기술은 영국에 있는 모든 기업이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영국 정부가 산업구조 혁신을 위해 자금을 투입한 만큼 완성한 기술은 곧 영국에 소재한 모든 기업이 공유할 수 있어서다. 예를 들어 에너지밀적도가 높은 배터리를 완성하면 재규어랜드로버와 같은 영국기업뿐 아니라 영국에 투자한 닛산 등의 외국기업도 동일한 조건으로 활용할 수 있다.
 

 제이 내글리 영국 무역투자청 자동차담당은 "일반적으로 특정 국가가 다양한 해외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선 세제지원 등을 내놓지만 영국은 그 보다 기술적 지원이 우선"이라고 전한다. 즉 WMG가 개발한 고성능, 고효율 배터리가 필요하면 무상으로 기술을 사용하되 완성물 제조는 영국에서 하라는 뜻이다. 영국 정부로선 공장 설립에 따른 일자리가 중요한만큼 기술 제공을 앞세워 적극 유치하는 셈이다.

 바타차리야 교수는 "모든 산업에서 이동부문, 특히 자동차는 매우 중요하다"며 "그러나 기술혁신을 주도하지 못하면 지속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조언한다. 그는 이어 "영국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전기차 등의 기술혁신에 나서는 건 산업혁명의 부흥을 이루겠다는 단호한 의지"라며 "영국 투자에 관심있는 자동차관련 기업은 영국 정부 지원으로 개발한 모든 미래 기술을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결론적으로 영국이 전기차에 올인하는 이유는 새로운 산업시대를 대비하는 차원이다. 여기에는 이동수단뿐 아니라 에너지를 통해 사회구조마저 바꾸려는 장기적인 관점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야 새로운 일자리를 만든다는 의미다. 현재 자동차산업의 위기를 겪는 한국으로선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바타차리야 교수는 "자동차부문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거나 유지하려면 제품 개발뿐 아니라 생산기술까지 고도화 과정을 거쳐야 한다"며 "판단은 한국 정부 스스로 하겠지만 확실한 건 과거와 같은 단순 생산 위주의 일자리보다 기술 기반 일자리의 필요성이 높아지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워릭(영국)=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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