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터뷰]"전기차? 기름 회사는 결코 죽지 않는다"

입력 2018-03-09 07:00  


 -전기차 시대, 석유 회사에게 기회될 수 있어
 -주유소 거점 활용한 다양한 공유 사업도 가능

 "자동차 시장이 급변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고, 미래엔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하지만 전기차의 등장이 정유 업계에 위협이 될 것으로 생각하진 않습니다.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자동차의 전장화(electrification)는 반드시 경량화를 수반하는데, 석유화학분야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등 경량 소재 판매가 급증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죠."

 일반적으로 정유 업계는 변화의 속도가 느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규모 설비가 필요한 사업인 만큼 변화의 한 걸음을 옮기는데 천문학적인 비용이 필요해서다. 그래서 GS칼텍스 위디아팀의 발족은 에너지 업계는 물론 자동차 업계에서도 주목했다. 위디아팀은 2016년 발족한 GS칼텍스 내 미래 성장동력 발굴 전담팀이다. 기존 사업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분야에서 신규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추진하는 게 이들의 업무다. 

 지난달 23일 본지와 만난 김남중 GS칼텍스 위디아(WE+DEA) 팀장(사진)은 "와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 어디서 나올지 고민하고 미래전략을 실행에 옮기는 곳"이라고 업무를 소개했다. 팀 이름은 아이디어(idea)에서 'I'를 우리를 뜻하는 '위(We)'로 바꾼 조어다. '우리가 함께 만드는 아이디어, 우리가 더하는 아이디어'란 의미를 담았다는 설명이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 속에서 경쟁자가 어디서 어떤 혁신을 가지고 등장할지 아무도 모르는 시대입니다. 넓은 분야에서 다양한 사례에 주목하고, 현재 우리가 시행 중인 사업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합니다. 특히 자동차 등 모빌리티 분야가 어떻게 변화할지, 변화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변화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김남중 팀장의 대답에서 위디아팀의 방향성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현재 GS칼텍스가 보유 중인 자원을 바탕으로 외부 혁신 사례를 접목, 시너지 효과와 유연성을 최대한 끌어내자는 게 위디아팀의 목표다.

 자동차관리 스타트업 카닥과의 협업은 대표적인 사례다. 카닥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자동차 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위디아팀을 통해 카닥과 지분 투자 등의 형태로 협업 관계를 구축했다. 그의 설명은 이렇다.

 -전국에 산재한 주유소, 편의점 활용한 이동 서비스에 주목
 -모빌리티, 제조보다 이용 편의성 확대에 집중 

 "카닥은 온라인 플랫폼을 구축하고 소비자들을 유입시키는 데 강한 업체입니다. GS칼텍스는 자회사인 GS엠비즈에서 운영하는 정비 프랜차이즈 오토 오아시스를 통해 오프라인에서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를 통한 시너지를 낼 수 있기 때문에 (카닥을) 첫 번째 투자 대상으로 선정한 배경입니다"

 언론에 알려진 위디아팀의 행보는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가 두드러진다. 카닥 이후 커넥티드카 솔루션 스타트업 오윈, 빅데이터 분석 기업 N3N 등과의 협업했다. 오윈과는 주유소 비대면 서비스 구축을 진행 중이다. 여성 소비자를 중심으로 비대면 서비스에 대한 소구가 늘고 있다고 판단해서다. N3N과는 주유소 등 오프라인 접점에서 발생하는 풍부한 데이터를 분석,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활용할 방침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위디아팀의 행보는 자칫 대기업의 스타트업 인수로만 비춰질 수 있다. 그래서 김남중 팀장은 조심스럽게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지분투자 자체에 목적이 있는 건 아닙니다. 혁신에 대응하기 위한 이종업체간 연합(alliance)에 주된 목적이 있습니다. 또, 반드시 스타트업만 (협업 대상으로) 고려하는 건 아닙니다. 최근 팀원들과 함께 CES를 참관했는데, 모빌리티 분야에선 연결성(Connected)과 자율주행(Autonomous), 공유(Sharing), 전장화(Electrification) 등이 주요 키워드란 걸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분야를 잘 알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스타트업 뿐만 아니라 대기업과도 파트너십을 맺을 준비가 돼있습니다. 현재 GS칼텍스의 사업 분야(주유 및 자동차 관리)에서 미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면 구글이나 네이버 등 글로벌 IT 기업과도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추진할 수 있습니다"

 최근 산업계 전반을 관통하는 단어는 '빅데이터'다. IT업계 뿐만 아니라 자동차, 가전, 유통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데이터 확보를 위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대표적인 에너지 업체인 GS칼텍스는 데이터 확보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 그에게 물었다.

 "GS그룹은 주유소 3,000곳, 정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오토오아시스 500곳, 편의점 GS25 1만3,000점 등 국내 어떤 기업보다도 풍부한 오프라인 소비자 접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프라인 접점이 필요한 온라인 강자들과 함께 협업한다면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할 것이고, 실제로 관련 문의도 활발합니다.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확실히 파악하고, 서로 상승 효과를 낼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함께 사업을 추진하는 게 가장 좋은 그림이라고 판단합니다"

 자동차 업계에선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고 다자간 협업이 심화되는 최근 추세를 기회이자 위기로 보는 시각이 공존한다. 테슬라, 구글, 다이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전기차 시대엔 기존 완성차 업체뿐 아니라 신규 플레이어가 새로운 경쟁자로 부상할 수 있어서다. 반대로 대표적인 자동차 제조사인 토요타는 100년 뒤 에너지회사를 지향한다는 암묵적인 목표를 드러내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그룹인 GS칼텍스가 직접 자동차를 비롯한 이동수단을 생산, 판매할 가능성도 충분할 것이란 예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김 팀장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이야기지만 에너지 회사가 이동 수단 자체를 직접 제조한다는 건 가치가 떨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오히려 모빌리티 산업을 둘러싼 시스템에서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가 더 중요한 화두가 아닐까요? 분명한 것은 미래에는 자동차 등 이동 수단 자체보다 소비자들이 '이동성' 자체에 가치를 둘 것이란 점입니다. 사람이나 물자가 이동하는 서비스 자체가 중요하지 어떤 차, 어떤 이동 수단을 소유하는지는 점차 의미가 희석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미래 모빌리티 시장에선 우버와 같이 이동경로에 대한 정보를 가진 회사나 스마트시티의 관리 솔루션을 가진 업체가 주도권을 가질 가능성이 높겠죠"

 그럼에도 미래 에너지 소비 행태의 변화는 자명해 보인다. 화석연료의 사용은 점차 줄어들고, 신재생에너지에서 뽑아낸 전력이 사회를 움직이는 에너지로서 비중을 점차 늘려갈 것이다. GS칼텍스 역시 석유 외 다른 에너지 분야 진출도 고려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에너지 분야에서 믹스(Mix)에 대한 위디아팀의 고민은 무엇일까.

 "전기차가 확산되면 전체 에너지 사용 비중에서 전기가 화석연료의 일정 지분을 가져갈 것이란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전기차 충전 사업을 주유소에서 진행해야 할지, 이 경우 경쟁자는 누가 될 지를 고민해야 합니다.

 주유소에서 전기차 충전 사업을 하게 될 경우 무서운 상대는 다른 주유소나 충전 사업자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차장, 쇼핑몰 등이 훨씬 더 무서운 경쟁자가 될 수 있어요. KT는 전봇대와 전화부스를 활용해 전기차 충전 인프라를 보급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습니다. 경쟁자가 더 다양해지고, 산업이 훨씬 더 복잡하게 변화한다는 이야기죠.

 -충전 분야 경쟁은 한국전력, KT 등이 될 수 있어
 -주유소 활용 강점은 이미 확보된 넓은 공간

 그렇다면 GS칼텍스의 강점은 무엇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우리의 경쟁력은 접근성이 뛰어난 지역을 주유소란 오프라인 거점으로 점유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전기차 충전 외에 다른 가치도 제공할 수 있다면 주유소가 의미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과 화물의 이동에 지금보다 화석연료가 적게 쓰일 것이란 건 정유 업계도 잘 알고 있다. GS칼텍스는 어떤 대비를 하고 있는지 물었다.

 "정유사는 원유를 가지고 다양한 제품을 생산합니다. 휘발유와 디젤, 다양한 석유화학 제품 등이 그것이죠. 최근 내부에선 '모개스 제로 리파이너리(Mogas 0 Refinery)'에 관한 논의도 활발합니다. 모개스(Mogas, Motor gas의 준말. 수송용 가솔린을 의미함)의 수요가 극단적으로 줄어들 경우 원유 정제 과정에서 석유화학 원료만을 생산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내연기관을 위한 에너지 소스로서 정유 제품의 수요는 줄겠지만 석유화학 원료는 현재 대체재가 없죠. 결국 정유사 입장에선 원유를 정제해서 어떤 물질을 뽑아낼지 비율을 조정하는 양상이 전개될 것입니다"

 인터뷰 말미에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어찌됐든 전기차가 보급되면 정유사 입장에선 판매처가 줄어드는 것이 아니냐고. 김남중 팀장의 대답은 명쾌했다. 전기차 시대가 오히려 정유회사에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기차가 많이 보급될수록 정유사에게 위기라고 흔히 말합니다. 직접적인 수요가 줄어들기 때문이죠. 그런데 전기차가 보급되는 게 과연 정유사에 위기일까요? 오히려 가벼운 소재로 바꾸려는 자동차회사가 철강 사용을 줄일 겁니다. 자동차의 전장화(electrification)는 결국 자동차의 경량화와 연결되죠. 여기에 자율주행차가 보급되면 사고율이 줄면서 경량화에 대한 수요가 더 강화될 것입니다. 이 경우 석유화학 분야에서 나오는 플라스틱 등의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겠죠. 위기보다 기회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대담=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co.kr
정리=안효문 기자 yomun@auto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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